1
아버지의 요청으로 홍어를 구입했다.
홍어회와 초고추장이 소분되어 낱개 포장된 것으로,
총 1kg 구입한 것이다.
도착한 식품 포장 한 팩을 뜯어서 맛보았다.
적당히 먹기 좋게 삭힌 정도로 초고추장도 맛있어서
아버지는 탁주에 안주 삼아 흡족하게 드셨고,
나는 술 없이 그냥 홍어만 초고추장에 몇 점 찍어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면, 아버지는 막걸리 2컵에 적당량의 안주가 되고,
나에게는 초저녁의 잠시 잠깐의 간식이 되어 적당량의 홍어회 한 팩이 사라졌다.
2
근데 나에겐 문제가 있었다.
홍어회가 한 팩으로 포장되면서 냄새가 새지 않도록
뚜껑에 해당하는 비닐 재질이 강력하게 접착되어 있어
웬만한 힘으로 잘 떨어져 분리되지가 않는 것이었다.
대략, 식탁에 젓가락, 컵을 놓는 것은 물론,
마지막 상차림인 포장 뜯기를 누가 하겠는가?
내가 한단 말이다.
어렵지 않다.
포장이 단단히 접착되어 있다 한들 손힘으로 뜯을 수 있다.
문제는, 조심을 해도 그 과정에서 홍어회의 습기가 손에 묻는다.
첫날엔 조심을 안 해서 옷에 살짝 묻었는데,
빨래통에 넣었고 그럼에도 어디선가 꼬릿한 냄새가 자꾸 나서
손 냄새를 맡아봤다.
잠들기 전까지 화장실을 두세 번은 갔다 왔고
그때마다 비누로 손을 씻었음에도
손톱 끝에서 홍어회 냄새가 빠지질 않았더라.
3
다음번에 아버지가 탁주를 꺼내실 때 상을 차리면서
또 한 팩의 포장을 내가 뜯었고 조심했어도 습기가 손에 묻었다.
그날도 여러 번 비누로 씻어냈지만 냄새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더라.
이렇다 보니 나는 심통이 나버렸다.
그래서 그 다음번엔 아버지께,
-냄새나서 못 살게쏘, 나는 안 먹게쏘....-
대충 저렇게 하소연을 하니 아버지가 뜯으시더라.
그래서 그날은 그냥 먹었다.
4
어제 전시회 두 개 보고, 이동해서 뭣 좀 하다가 돌아오고...
집순이가 갑자기 장시간 움직이면 고장이 난다.
오늘 피곤에 쩔어서 입맛도 없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또 해야 할 것은 있어서 들입다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어느새 초저녁,
슬며시 방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뭔가 수줍게 고백하시듯이 말씀하셨다.
"홍어 안 먹을래?"
딱 잘라 거절을 하려고 하는데 아버지의 진짜 고백 같은 말씀이 들려왔다.
"내가 뜯을게. 먹자."
음? 크흣...
5
속으로 '무슨 아버지가 저렇게 귀여우셔?'라고 생각하며 엄청 웃었다.
진짜 안 먹고 말려고 했는데, 키보드에서 당장 손을 떼고
주방으로 가서 젓가락과 컵을 챙겼다.
아버지는 진짜 당신이 포장을 뜯으셨다.
키득키득 웃음이 나서 혼났다.
6
내가 재미있는 술동무를 못 해드려서 죄송했다.
같이 건배도 해드리고 대화도 나눠야 좋았겠지만,
난 내 일정이 있으니까 그러질 못했다.
죄송했다.
아버지가 귀엽게 요청하시니, 무심한 딸이었던 게 반성되며
자청하여 석고대죄를 올리고 싶을 지경이다.
다음에는 '아부지, 제가 뜯을게. 주세요.'해야겠다.
아웅. 우리 아부지 너무 귀여우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