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엔 컴퓨터를 하다가 슬며시 책상에 엎드려 졸았는데
방문이 똑똑, 열리더니
"져니야 나와서 먹고 자라."
...라고 하시고는 어머니가 문을 닫으셨다.
근데 나는 너무 졸렸던 거다.
졸다가 깬 김에 아예 좀 더 잠 자보려고 일어나
침대에 풀썩 누웠다.
다시 똑똑, 소리가 나더니 누워있는 나를 확인하신 누구신가가
되돌아가시는 듯, 다시 들어오셔서
"너... 이건데, 정말 안 먹고 잘 거야? 함 봐봐, 봐봐!"
...라고 아버지가 장난을 거시는 거다.
실눈 떠서 보니, 내가 좋아하는 딸기.... 그러나 졸리웁다.
"안 먹어요..."
분명 대답했는데 아버지는 장난치시는 재미를 붙이셨는지,
딸기 상자를 내 코앞에 아른아른 흔드시며 두세 번 장난치셨다.
"안 먹어? 나중에는 없다, 우리가 다 먹는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상관없었다.
분명 남겨두실 게 확실했으니까.
그날 늦은 밤에 일어나 나는 냉장고를 열어보고
여지없이 예쁘게 놓인 딸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2
오늘은 늦은 오전에 일어났다.
식탁 위에 김밥이 있었다.
보니까 어머니가 만들어놓으신 김밥이다.
어머니께서 가끔씩 김밥을 만들어주시는데
단무지와 다른 재료들을 아주 적절하게 조합하여
정말 맛있게 만들어 주신다.
한번 만드실 때에 한 10줄 정도 만들어 놓으시는데,
당연하게 오늘 아침 나는 식탁 위의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딱 생각하기에도 점심 끼니까지는 김밥으로 식사하겠구나 생각했다.
지금 점심시간이 되었고,
아버지께서 똑똑 내 방문을 여시더니,
"점심밥 안 먹어?"
"김밥을 아까 늦은 아침으로 먹어서, 아직 배불러서요."
"그럼, 김밥 내가 다 먹는다. 진짜 다 먹는다? "
...라고 하시고는 문을 닫고 가버리신다.
내가 아까 주방에서 들춰보니 김밥 5줄쯤이 남아있던 걸 봤는데...
그걸 다 드시겠다고?
불가능하실뿐더러, 나는 안다.
만약 지금 잠들어서 밤 11시에 일어난다 하더라도
김밥이 2줄 남아있을 것이다, 내 몫으로.
3
먹을 거로 자꾸 장난치시니 약간 황당하기는 한데,
또 그것만큼 가볍고 산뜻하고 재미있는 농담이 없는 것도 같다.
아버지가 즐겨드시는 안줏감이 떨어졌는지 확인했다.
1~2회 소비량이 남은 것 같다.
나도 어떻게 해야 아버지께 장난을 칠 수 있을지 생각 중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숨겨놓고 찾으시게 할까, 아니면 없다고 농담할까 궁리 중이다.
으음? 지금.... 나도 궁리만으로 즐거워지는뎅?
이래서 아부지가 자꾸 농담을 하시는가?
4
날이 화창하고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하다.
마음속은 번잡하고 머릿속은 혼란하지만,
아버지가 던지시는 농담이 모든 걸 담백하고
화사하게 만드는 것 같다.
역시 아버지는 가정의 햇살.
근데... 이제 쫌 있으면 5월인데...
부모님이 나에게 뭔가 기대하시는 바가 계신가?
왤케 다정하게 대해주시지?
흠... 음...
...나도... 부모님이 좋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