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고에서 선풍기 3대를 옮겨왔다.
3대중 한 개가 크고 무겁길래,
내가 그걸 들어옮겼고
나머지 2개는 아버지가 양손에 들고 옮기셨다.
옮기는데 숨이 턱턱 막히고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선풍기에 비닐포장을 해서
1년 보관 동안 먼지 묻는 걸 방지해놨는데
옮기다 보니 도저히 한 팔로 못 들겠기에
양손으로 비닐포장을 부스럭거리며
잡아들어 옮겼다.
먼지가 폴폴...
현관에 들어서기 전에 아버지께서
비닐을 벗겨주시며
"네 방 선풍기가 제일 무거운데
네가 자기 것 알아보고 들고 올라왔네."
...라고 하시며 껄껄 웃으신다.
옮기는 4분 내외의 시간 동안...
그 사이 팔뚝에 알이 배긴 것 같다.
2
아버지께서 선풍기 옮기기 전에, 그냥 슬쩍
묻는 기색으로 나를 떠보셨다.
"빨리 더워졌으면 좋겠지?"
"네!"
고개까지 열렬히 끄덕이며 천진난만할 정도로
정직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웃으셨다.
뻔히 아시면서 물어보신다.
"왜?"
"이번에 설치한 에어컨 켜고 싶어서요.
5월인데 왜 이렇게 날이 서늘하대요?
아, 빨리 더워졌으면 좋겠다.. 아! 씬나!"
정직하다 못해, 전기세 소비를 아랑곳 안 하고 본색을 드러내니
아버지께서 마지막엔 어이가 없으신지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그렇게 물어보시고는 무언의 압박을 주시는 걸까?
창고에 선풍기 꺼내러 갔다 오자고 하신다.
에어컨은 선풍기와 병용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심어주시는 것 같달까. 그렇다면...
아부지 고단수!
3
아버지께서 핸디 청소기 어댑터가 고장 났다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핸디 청소기가 워낙 오래된 것이고 전용 어댑터를 구해야 되는 제품인데,
알아보니 어댑터가 비싸다.
어댑터 가격에 몇만 원 얹으면 새 핸디 청소기를 살 수 있을 정도.
슬쩍 새 제품 구입을 건의해 볼까 했으나, 그냥 말았다.
어댑터가 고장인 것이지, 핸디 청소기는 고장이 안 난 상태이니까.
우리 집에 들여온 가전제품은 고장이 안 나면 절대 고물로도 팔지 않는다.
어댑터를 봐라, 콘센트 꽂는 데가 깨져서, 고장이 나서,
이제야 오랜 활동을 벗어날 수 있었다니까.
우리 집에서 일하는 가전제품들은...
... 물에 떠있는 오리의 발.... 직장인...
쉴 수가 없지.
4
팔에 알 배기고 힘들어서... 너무 힘들어서
왜 이러지 싶었는데... 일어난 후 밥을 안 먹었네그려.
밥 먹고 힘이 좀 생기니까 이제.... 뭘 좀 해볼 생각이 든다.
역시 사람은 밥심!
방 정돈부터 해야겠다.
그럼 이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