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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스토리 8 - 078 - 지끈지끈 미열

by 배져니






1


머리가 복잡할 때에는

몸을 움직이는 게 정답일 경우가 많다.


그걸 알면서도 꼼짝하기 싫다.




2


부모님이 옥상에 백합이 피었고 향이 좋으니

한 번 가서 향을 맡고 바람을 쐬라고 하신다.


컴퓨터 앞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으므로 손사래 쳤으나,

3~4일을 두고 여러 번 권하시니,

두 분의 의견을 존중하는 표시로, 옥상에 갔다 오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더라.




3


올라가니 과연 꽃이 피어 있었다.

꽃 향이 매혹적이고 아찔했다.

잠시 향을 맡고 시선을 두었다가

마침 바람도 불어서 공기의 이동 결도 느꼈다.

올라오는 시늉만 하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오래 머물러서 바깥 느낌을 살폈고

더 있고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지만

그 생각보다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정오 즈음이라 열기가 후끈후끈해져서

땀이 날 참이라 재빨리 내방으로 복귀했다.




4


몸무게가 인생 최고수치를 찍었다.

보통 여름이면 더위에 시달려서 살이 좀 빠졌었는데,

내방에 에어컨 장착, 더우면 시원하게 작동,

몸이 시달리지 않고 편하니 살이 붙는가 싶다.


이상하지 않은가?

머리가 복잡하고 힘든데 왜 빠지지 않고 살이 찌는지 말이다.

제일 효과적인 다이어트로는

마음고생만 한 게 없다고 하던데,

나 지금 마음고생하고 있는데 대체 왜 살이 붙느냔 말이다.

살이 붙는 것으로 보아 내 마음고생이 대단치 않은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 격하될까 봐 섭섭하다.

나, 진짜, 굉장히 마음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뭔가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펑펑 울어볼까 생각도 해봤다.

근데 '펑펑' 울기엔 남우세스럽다.

정 눈물을 흘려 감정의 정화를 얻고 싶다면,

새벽에 문 잠그고 손수건으로 눈물 찍어내가며

진하게 남몰래 울어야 하지 싶다.


근데 진짜 힘들다면, 문득 슬퍼져서

눈물이 절로 쪼르륵 흘러 주체할 수 없어야 한다.

나는 지금 울 계획을 세우는 걸 보면,

아직 좀 덜 슬픈 것 같다.


아... 근데 진짜 마음고생 심한데...

수분이 땀으로 증발돼서 눈물이 안 나오는 건 아닐까?

근데 또 왜 살은 찌고 난리래, 내 몸이지만 섭섭해.




5


머리가 지끈 지끈, 미열이 오른다.

방 정돈을 하면서 몸을 좀 더 움직여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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