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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스토리 8 - 079 - 한 줄기의 맥락

by 배져니






1


이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도통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던 중이었다.


어머니는 더위를 피해 내방 침대에 누워서

폰으로 유튭영상을 시청 중이셨는데,

물론 나는 편하게 영상을 보시라고 했었지만,

들려오는 영상의 소리가 쩌렁쩌렁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거의 1시간째 한 자도 쓰지 못했다.




2


그런데 좀 재미있기 시작했다.

나야 늘 내 관심사 영상만 시청했지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알지 못했었는데

어머니의 관심사를 알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유튭에는 스타의 이름이 나오곤 했다.

내가 시청하는 유튭영상에서는 아이돌의 이름이 나오는 반면,

어머니의 유튭 영상에서는 옛 스타의 이름이 거론되거나

아니면 요즘 핫한 트로트 가수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 이게 어머니의 취향이 반영된 알고리즘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그런가 하면 공통점도 있었다.

나와 어머니가 시청하는 영상의 이야기성이 비슷했던 것이다.


가끔 짧은 이야기? 단막극성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볼 때가 있는데,

그 내용이 주로, 어떤 착한 사람이

허름한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약간의 호의를 베푼다.

그런 후 다음 어느 순간 그 착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주로 불한당, 무뢰한, 사기꾼 같은 나쁜 사람에게 당하는 내용이다.


그때 도와줬었던 허름했던 그 사람이 나타난다.

나타날 때에도 그 사람은 소박한 차림으로 나타나는데

수행원이나 비서 혹은 직원 등이 그를 알아보고서

사장님 혹은 회장님 아니면 사모님

또는 실장님 그도 아니면 아가씨 등등,

사회적 위상을 알 수 있는 정중한 호칭으로 부르며

짜잔~ 하고 정체가 드러난다는 설정이다.


그 사람은 알고 보면 재력과 위상이 대단하지만

평소에는 소박하게 차림하고 다니던 부자였고

그 사람이 도와줘서 불의한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4


고전에서부터 지금 이 시대까지 명맥을 잇는 이야기 주제의 핵심,

착한 사람이 복받고 나쁜 사람은 징벌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주제가 살아있는 그러한 설정이다.


사회가 무리 없이 부드럽게 돌아가기 위해서

대중에게 권장되는 덕목은 화합, 배려, 이해, 선행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회가 건재하기 위해서

도덕, 올바름, 정의 등은 살아있어야 할 터이다.




5


요즘같이 다분화 세분화된 이야기의 세상에서

그래도 한줄기의 맥락, 권선징악의 심지가

이야기들 속에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불의한 사람들을 제압하는 사람이

꼭 재력과 위상이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감정과 지식과 기술에서 위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선량한 이들을 돕는, 그런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6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여기까지 썼을 때,

어머니가 커피를 타오셔서, 내 침대 위에서 호록 드신다.

나는 기겁하며,


"어무니, 침대 위에서 드시면 어떡해요~~?"


...라고 애걸하듯 말했다.

어머니는 들은 척을 안 하시고 다시 호록 마시신다.

나는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어훗...뭐...빨래는 어무니가 하시는 거니까..."


...라고 혼잣말처럼 내뱉고는 속으로는 생각했다.


'뭐... 오늘 글감은 어무니가 주셨으니까...'


이로써 글은 드디어 다 썼다.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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