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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스토리 8 - 083 - 불타오르는

by 배져니






1


화장실 전등이 고장 나서 LED 등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아버지께서 손수 등을 구입해오셨고,

몇 차례 손수 등 교체의 경험이 있으셔서

자신 있게 작업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나사못 하나 박는 데에도 난관이었다.

망치로 박아도, 송곳을 달궈서 찔러도 뚫리지 않았다.

나는 건의했다.


"아부지...요즘시대 플라스틱이라서 소재가 옛날이랑

다른가 봐요. 전동 드릴을 사용해 보심이...."


그래서 전동 드릴을 찾아꺼내었는데...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였다.

드릴 본체에 송곳 드릴 날을

착장 시킬 줄 아는 사람도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계속 욕실 천정 뚫을 궁리를 하시는 동안

나는 드릴 날을 이래저래 본체에 물려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른 웹에서 방법을 찾아보면 될 것을,

그냥 '난 감이 좋지.'라고... 대책 없는 자신감으로

열심히 만져보고 마침내 착장 시켰다.




2


그러나 나도 안전하게 장착시켰는지 확신을 할 수는 없어서

코드를 꽂고 시험 작동해 봤다.

짧은 시간 돌려봤을 때에는 제대로 작동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께 드릴 날을 끼웠다고 사용해 보시라고 드렸는데

아버지의 한마디 말씀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드릴 날 튀어나오는 거 아니냐?"


뭔가 영 못 미더워하시는 뉘앙스이시라서,

섭섭함과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


'백퍼 안전하게 착장 시켰다고 저도 장담 못 하니까요, 뭐.

그래도 앞으로 튀어나가지는 않더라고요....

이럴 갈등을 할 바엔 웹에서 방법을 알아보고 할 껄...쩝.'


어쨌든 정말 튀어나가지는 않았으니까 드린 것이긴 한데,

'불의의 사고가 생기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한껏 겁이 나더라.




3


드릴은 잘 작동하여 나사못이 들어갈 공간이 뚫렸다.

나사못 하나 박는 것에서부터 애를 먹어서

시간을 잡아먹고 땀을 뻘뻘 흘리고

진을 빼고 있자니 슬슬 풀 데 없는 화가 나더라.

옆에서 보좌하는 나도 짜증이 나는데

아버지는 오죽하셨겠는가, 팔이 저리다고 툴툴 심술이 나셨다.


근데....

내가 아버지 전등 교체하실 때마다 보좌를 했단 말이다.

그것도 일반 등을 LED 등으로 바꾸는 것만 5번쯤 본 것 같다.

그래서... 오늘까지 6번을 보니까...

이제 나는 전동 드릴만 다룰 줄 알면

내가 교체하는 것도 가능하겠더라.


다만 우리 집 의자는 그냥 보통 높이이고

내 키는 꽤 작으므로 의자를 밟고 올라가도

천장에 손이 편하게 닿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으로 전등이 고장 나서 교체를 해야 하더라도

나는 손끝 하나 까닥하지 않...까닥해서...보좌만 할 것이다.

아버지가 잘 하시니까 굳이 내가 할 필요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지만, 불시에 필요한 지식일 수도 있으니

머릿속에 입력은 해두었다.




4


더위와 습기와 긴 신경 씀으로 지친 아버지에게,


"아부지... 이런 거 자주 해보겠어요? 재밌네요~.

그래도 이렇게 보좌하면서, 전등 교체하는 걸 몇 번 봤더니,

이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힘은 들었지만, 아부지, 우리 팀워크가 좋은 거 같아요.

아부지가 저거 하면 내가 드라이버랑 못을 터억 집어드리고

떨어뜨리면 휙 주어서 올려다 드리고 그럼 아버지가 작업하시고...

팀워크가 좋죠? 그죠? 그죠?"


굉장히 예민해지신 상황이었는데, 아버지가 기분 전환 스위치를 누르셨는지

날카로운 기운이 확 누그러지시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역시 나는 아버지의 '겁나 예쁜' 딸이구나....'


...라는 자각으로 내 기분도 절로 전환되었다.




5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완전하게 교체했다.

끝내고 난 후, 너무 진이 빠져서 밥도 못 먹겠더라.

그래서 흑맥주를 마셨는데 근래에도 마셨던 그 맥주가

오늘 유달리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다.

아버지께도 한 캔 드렸다. 아버지도 드시면서 흡족해하셨다.




6


운동 가셨다가 귀가하신 어머니가 화장실의 스위치를 켜보시고


"호오~ 훤~ 하네."


...라고... 나는 훗 웃었다.

오늘은 등 교체 보좌를 하느라 지쳐서

다른 건 거의 아무것도 못했지만,

생각보다 하루가 알찼던 느낌적인 느낌이다.


불타오르는 듯한 더위, 불타올랐던 팀워크, 불타오르는 환한 전등.


뭐가 이렇게 타나?

여름 아니랄까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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