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문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물품을 수령했다.
주문한 여러 가지 품목 중에 나무 재질의 소품이 한 개 있었다.
그 소품을 사기 위해 다른 품목도 겸사겸사 구입했던 것인데,
포장을 열어보니 찍혀서 갈라진 듯한 흠집이 있었다.
어차피 사용하면서 생활 흠집이나 사용감이 많이 생길 물품이어서
웬만하면 그냥 사용하려고 했으나
안쪽을 살펴보니, 이건 마감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지,
말도 못 하게 지저분하고 얼룩이 있었다.
2
잠시 잠깐,
'험하게 사용하게 될 물건인데 그냥 사용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돈 내고 샀는데 왜 헌것 같은 걸 써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교환 신청을 했다.
그냥 사용할까?라는 생각을 한 이유는,
수령까지 1주일이 걸렸는데 다시 반품하고 교환품을 받는 데에
또 1주일이 걸린다면, 뭔가, 너무 오래도록 기다리는 형국이 되어서
그 소품이 너무 귀하게 여기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깔끔한 소품이 도착해서 너무 기분이 좋아지면,
그 물건을 애지중지하게 되면서
편하게 막 사용하지 못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적 느낌.
3
들인 시간이 길면 대부분 가치가 상승하는 것 같다.
상품을 만들 때 제작 시간이 많이 걸리면 가격이 상승한다.
전문가가 만들면 다시 가격이 상승한다.
그 사람이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노력과 들인 시간이
능숙한 기술로 발현되는 것이니까, 장인의 제작품은 가치 상승의 요인이 된다.
돌도 시간 들이면 값어치가 높다.
땅속에서 긴 시간 동안 열과 압력을 받으면서 형성된 돌들은
보석이라 불리며 보통 값어치가 높아진다.
기다림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소품을 기다리면서 기대하는 마음이 커지면,
그 물건 가격의 값어치는 그대로일지언정
마음의 애정도나 소중한 느낌은 높아지는 것 같다.
기다림도 시간 들임이라 심리적 가치의 상승 요인 같달까.
어디 물건만 그러하겠나?
사람에 대한 기다림이나, 다른 종류의 시간 들임이 길어지면,
그 인물에 대한 여러 의미가 자라나서
어느 순간 마음자리를 꿰차고 들어앉는 것 같다.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4
사물이 시간이 들여지면 값어치가 올라가고,
사람이 자신에게 시간을 들이면 성취가 높아지고
사람이 사람에게 시간을 들이면 의미가 쌓여올라가는 것 같다.
요즘 저 세 가지에 시간을 들이고 있다.
과거부터 들이고 있었으니 어느 정도 높아지고 올라가고 쌓여지긴 했다.
더 올라가고 쌓여질지는 두고 봐야 알 듯하다.
5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시간을
기왕이면 '어디에다'가 혹은 '무엇에다'가
아무튼 '들여'보면 쌓이거나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어 즐겁다.
지켜보며 기대하는 것은 또 '기다림','시간 들임'의 일종이니
심리적으로 다시 적립되는 게 있고 말이다.
사념은 돌고 돌아,
소품을 기다린다는 것은
곧 그 물건에 대해 애정이 쌓일 것임을 각오하는 것이며,
사람을 지켜보며 기대한다는 것은 역시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마음자리를 마련해 내어주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나는 지켜보고 기대하고 마련하며 각오하고 의지를 다진다.
소품, 사람, 둘 다에 대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