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에 한 달 내내 하루 3시간씩
전화를 걸어오던 지인이 있었다.
그리고 3시간 내내 자기 이야기만 했다.
처음엔 새로운 지인이라 듣는 재미가 있어서
즐겁게 들었다.
그러나 매일 3시간이었다. 듣다 보면
지인의 이야기에 허점이 있어서, 짚어서 그 점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자신의 이야기에
허점이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변명인 듯, 방어인 듯,
이야기를 길게 계속했고, 그렇게 내가 허점을 짚는 날이면
통화는 4시간을 넘어섰다.
짚어 말해주면 4시간이 되니
나중에는 그냥 호응도 안 하고 듣기만 했다.
2
그 지인에게는 하루에 쏟아내야 하는 말의 양이 있는 것 같았다.
지인은 화자 입장에 능했고,
나는 거의 늘 청자의 역할을 했던 터라,
어찌 보면 3시간이 긴 통화가 가능했던 건,
일종의 궁합이 맞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듣는 재미를 느꼈을 시기에는 말이다.
3
수년이 지나자 나는 뭔가 노예가 된 느낌이었다.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줘야만 하는 '귀 노예' 같았달까.
그 수년의 시간 동안 지인의 이야기 주제도
자신의 유년 시절,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이성, 직업, 사회적 관계 내용에서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대해 토로하다가
결국 신세한탄을 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게 단기간 동안 일어난 변화이면
좀 더 빨리 알아차리고 관계를 끊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5년도 넘는 긴 기간 동안 서서히 일어났고
나는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속절없이
침해당하고 있었다.
4
지인은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수년간 매일 3시간 동안 지인은 그냥 떠들었고
나는 마냥 들어줬다.
지금 생각하면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루 3시간씩, 10년간 한 주제에 몰두하면
전문가가 된다고도 하는데... 무려 5년이었다,
내가 지인의 푸념을 들어주기보다, 그 시간에
다른 뭔가를 파고들었으면 지금쯤 또 다른 분야의
준전문가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참 허탈하다.
5
시간은 금이라고 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지인과의 통화 시간은
감정의 소진과 낭비였기 때문에 아깝기 그지없다.
그 지인은 '수다를 떨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은 금'이라고 생각할 때
지인은 나의 시간을, '금'을 빼앗은 것이고
그건 '수다를 떨었다'라고 하기 보다
'강도질을 했다'라고 봐야 한다.
6
물론 나는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였음을 인정한다.
속절없이 금을 강도 당했지만,
또 뭔가를 배울 때에는 수업료를 내야 하니까,
강탈당한 금덩이를 수업료 삼았다고 하련다.
그때 배운 내용을 공유한다.
-개구리가 되지 말자,
강도질하지 말자,
강도 당하지도 말자.-
긴 통화가 연결감을 깊게 해줄 것 같았지만
상대와 결이 비슷한 무엇인가가 없으면 대화가 부질없다.
겉도는 통화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강도가 되지도 말고, 강도 당하지도 말아야 된다고 본다.
모두 조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