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는 비과학적인 일이 많은데,
그 비과학적인 일들을 과학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를테면 일종의 초능력을 실현하려고 의도했었단다.
초능력, 그중에 텔레포트가 사례였다.
텔레포트는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인데
이 능력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려는 의지가 있었다.
과학기기로 물질을 분자 상태로 분해했다가
일정 좌표 지점으로 고스란히 입자를 전송해서
순서대로 재결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었다.
그럼 짜잔 하고 이동하게 되는 거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초능력은 신비로운 능력인데,
입자를 분해해서 전송한 뒤 재결합한다는 이론은
신비롭기보다 합당한 과학처럼 느껴진다.
2
텔레포트의 내용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비과학적인 내용을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다 읽었을 때쯤,
거절할 수 없는 소개팅 자리가 있어서
어찌저찌해서 상대를 만났고,
취미 이야기 나오고 해서 나는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고는,
그 비과학적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듣던 상대의 무던하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지며
"혹시 종교 있으신가요?"
...라고 묻기에
"아뇨, 무교인데요."
"그럼 점 보고 부적 같은 거 사고 그러나요?"
"아뇨, 종교가 없어요. 부적 같은 거 안 해요."
...라고 대답하면서 알아차렸다.
'아, 내가 지금 세상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고 있구나.
비과학적 이야기 때문에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부적 사들이고 점 보러 다니는 그런 이상한
여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도달하자 나는 쓱 다른 책 이야기를 했다.
그때 급하게 언급한 책은 한창 베스트셀러였던 여행산문책으로
그 책 내용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몇 개 이야기해주며
주제를 바꾸자, 그제야 좀 흥미롭게 귀 기울이더니,
'음... 정상인 것 같군.'
...라고 생각하는 듯이, 그 남자분의 눈빛이
무던하게 다시 바뀌던 것을 목도했다.
3
책을 3권 구입했다.
그중 한 권의 저자는 유튜브 영상으로 알게 되었다.
올해 영성, 명상 관련 동영상을 한두 개 눌러보고,
심심할 때 또 한 두 개씩 보다가 포옥 빠져버렸고
알고리즘 발동되어서인지 내 유튜브 화면에는 온통
심리, 철학, 영성, 신비주의자 들의 영상들이 꽉꽉 들어찼다.
그중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돌로레스 캐논이라는 여자분의
영상 속 텍스트가 좀 끌렸다.
그녀는 생전에 최면요법의 개척자이자 전생 연구의 대가였다고 한다.
잠시 고민했다.
명색이 이과생이었는데, 자꾸 초능력,
사주, 꿈, 심리, 광석물, 음악,
미술에 이어 이제 최면에까지,
이과적인 것 이외의 것들에 관심이 뻗치는걸,
참...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4
그때 그 남자분은 잘 살고 계신지 모르겠다.
당시 그 호의적이지 않던 눈초리가
나를 너무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당황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그분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주선자에게 소개팅을 부탁했다지만,
그래서 나온 여자가 나였고,
그분으로서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볼까 말까를 따져보려 하는데
갑자기 나온 여자가 영성 이야기와 비과학적 이야기를 하며 재잘대니,
'점 보고 부적 사다 나르면서 살림 축낼 여자라면?
그렇다면 소개팅 나온 게 후회되는걸...'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내가 너무 선량했다.
책 이야기했다가 미신 믿는 사람 취급받았으니
기분이 상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어서,
주선자 면도 있고 하니, 그 이후엔 남자분 취향에 맞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남이 끝날 때 즈음엔 바래다주시겠다고 하더라.
자연스럽고도 완곡하게 마다했고 얼른 돌아서서
혼자 신호등 깜박이는 건널목을 건넜고 소개팅은 끝났다.
5
책 상품 사진에, 홍보문구가 적혀있었다.
'최장기 베스트셀러',
'20여 개국 출간',
'최면요법의 개척자'...
뭔가 이 정도면 대중적인 책이지 않을까,
이걸 읽는 나도 이상하지 않은 거겠지, 하고
주저주저하는 마음으로 구입했다.
따지고 보면 어렵게 찾은 요즘의 개인적 기억들도
이과 외적인 것들의 덕분이 많았기에,
인문적이거나 예학적인 것이나 초현실적인 것들도
나에겐 이제 너무 의미가 크다.
과학의 시대에 너무 검증된 과학 지식에 몰두하느라
미래의 첨단의 과학지식으로만 이해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초과학적인 것들을 허투루 봐선 안 된다고 본다.
이과생이었으니 과학적 사고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스스로에게 과학, 미신의 판별을 강요하기보다,
그냥 포옥 빠져서 읽어볼까 한다.
오늘 내가 비과학이며 미신적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내일 세상에서 과학과 철학적인 것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혹은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일은 내 사고에
색다른 풍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것이니
너그러이 받아들여볼까 한다.
이상, 색다른 책의 구입으로 사념이 폭발하는 한때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