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관에 갔다.
웹에서 좌석을 지정하여 예약을 하고 간 터이다.
맨 뒷줄의 정중앙 좌석은 이미 두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고,
나는 차선으로 맨 뒷줄의 오른쪽을 예약했다.
벽에 가까운 좌석이었고 한갓지고
화면도 잘 보일 것 같아서 선택했다.
당일 가서 앉아보니 리클라이너 좌석은 꽤 안락했다.
내심 만족하고 있었는데 영화가 시작하자 곤란해졌다.
2
스피커가 영화관 벽 상단에 붙어있었는데,
나의 좌석이 벽과 가까웠고 끝 줄이라 벽의 상단과 또 가까운 형태였다.
영화 시작하고 우렁차게 음향이 흘러나오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 집순이다. 컴 스피커도 조용하게 켜놓는데
상영관을 가득 채우고도 넘칠, 호통치듯 쩌렁쩌렁한 소리에,
마치 무림고수가 악기를 촤랑 연주하여 음파 공격하는 걸
내가 귀로 받아내는 느낌이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아, 귀에서 피 나!'... 하는 느낌.
3
어쩔 수없이 잠시 귀를 살짝 손으로 막았다.
그럼에도 대사를 알아듣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 소리가 컸다.
근데 또 청각이 금세 적응해서 들을 만하게 되더라.
후반부에 다시 고막이 파괴되고 뇌까지 손상될 법한
음향이 있었지만 초반부의 충격만 하지는 않았다.
4
영화를 보고 나서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이 너무 조용하더라.
분명 철쿠덩~하는 소음이 거슬리게 들려야 하는데
이날 지하철은 나른하다고 할 만큼 평온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역기 들어 올리다가 바꿔서 아령 들어 올리면 편하듯이,
폭발 소리 듣다가, 입안의 땅콩 씹는 소리는 귀엽지 않겠나.
영화관에서 피나도록 귀가 혹사해서,
지하철 소음은 자장가 같더라.
5
사실, 또 그렇게 소리가 큰 게 아닐 수도 있었겠다.
더 큰 음향의 상영관이 따로 있던데,
그곳은 도대체 누가 들어가는지 궁금도 했지만,
아무튼 별도로 광음 상영관이 마련된 것으로 보아
영화의 몰입에 큰 음향이 한몫하는 것 같긴 하다.
그럼 아무래도 소리가 좀 큰 편인 게 맞을 것이고 말이다.
그래도... 난... 너무 소리가 커서 힘들더라.
6
상영관 입장 전, 대기공간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낯선 누군가가 다가와 자신의 표를 보여주며
"여기가 이 상영관이 있는 층이 맞나요?"
...라고 묻길래, 한번 보고,
"모르겠는데요."
...라고 답하니 그 사람은 별말 없이 쓱 가버렸다.
물어볼 사람을 보고 물어봐야지,
나도 영화관이 백만 년 만이라서 낯선데 말이야, 말이야.
왜 물어보고 그런다지, 놀랬자너, 흠.
7
이날의 첫 일정부터 다음 일정까지,
복잡 미묘한 일들이 아주 많았지만,
오랜만의 자발적 외출이 꽤 즐거운 편이었다.
하지만, 집이 편하다, 조용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