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스토리 8 번외 - 산타의 양말 색 [3/6]

by 배져니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시기 전에 방문 밖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있었는데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지여니가 줬어! 줬다니깐!”

어머니는 내게로 오셔서 물으셨다.

“오빠가 뭐라고 하고 가져갔어? 초콜릿 달래?”

“응, 내가 줬어.”

“…오빠가 엄마한테 ‘내가 줬다’라고 말하래?”

아닌 게 아니라 오빠는 그렇게 말단속을 했었다.

“응… 근데 내가 줬어.”

“…끝까지 줬다고 말하래?”

“응…근데 내가 진짜 줬어.”

어머니는 방문 밖으로 나가셨고 잠시 뒤 또 오빠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진짜야, 지여니가 줬어! 정말 줬다니깐!”

어머니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셔서 오빠에게 주었던 무더기에서 6개쯤 줄어든 더미를 들고 와 내게 놓아주셨다.

“네 거야, 오빠는 쫌만 주고 네가 더 많이 먹어, 알았지?”

저렇게 날 챙겨주시는 마음을 아는데, 인형이 아니어서 초콜릿 안 먹겠다고 ‘뗑깡’을 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6살 성탄절에, 내가 좋아하는 인형을 가져다주지 않고, 어머니가 가끔 슈퍼에서 사다 주시던 알파벳 초콜릿이 양말 속에서 나타나자, 어쨌든 선물이 온 것이긴 하지만, 산타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긴가민가했다.

그렇게 긴가민가하면서도 첫 선물의 배달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러모로 기쁘지는 않았던 성탄절이었다.




-3-


다음 해, 나는 7살이 되어서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여자아이여서 아기자기 예쁘게 키우시고 싶으셨나 보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아동용 팬티스타킹을 신었다. 어머니가 어느 날 스타킹을 가지고 오셔서, 나를 세워놓고 발을 꿰게 하시더니 발끝부터 스타킹을, 양쪽을 번갈아 가며 잡아 끌어 올리셨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데 그 이상하고 답답한 팬티스타킹을 입어야 했다.

착 달라붙는 촉감이 색달랐는데 허리까지 다 끌어올려 입혀지자, 살짝 죄이는 느낌이 이상했다. 그리고 스타킹의 흰색은 발목과 무릎에서 희었고, 종아리와 허벅지에서 흰색이 좀 흐려졌다. 그만큼 착 달라붙는 신축성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말인 데다가 어려운 단어였기 때문에 ‘신축성’이란 말을 몰랐다. 다만 어머니의 말씀으로 ‘착 달라붙는 성질’의 정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 잘 맞는다, 쫀쫀해서 됐다.”

그렇다, 그건 ‘쫀쫀’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불과 몇 달 전의 성탄절 아침이 생각났다. 잠에서 깨자, 어머니께서

“어머, 산타가 왔다 갔네, 봐라, 선물 봐라!”

…라고 하실 때가 떠올랐다. 내가 그리던 ‘빨간 양말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어야 할 선물 상자’ 대신에, 검정에 가까운 칙칙한 아빠 양말이, 초콜릿 봉지를 어느 곳은 짙은 남색, 어느 곳은 조금 덜 짙은 남색으로 찰싹 감싸안고 있던 것을.

내 생애 낭만적이어야 할 첫 크리스마스 산타의 배달 선물은, 짙은 남색 양말 안에 ‘쫀쫀’하게 들어있었다는 걸 강렬하게 기억한다.


그 이후 나는 ‘쫀드기, 쪼잔하다, 쫄쫄이,쫄보..’등등의 단어를 익히면서 ‘쫀’ 혹은 ‘쪼’의 어감이 뭔가 오그라들거나 수축하는 성질을 느낌이라는 것을 익혔고 그 이후에도 일정 기간 여파가 남아서 ‘짱구, 묵찌빠, 쫄병, 짜장면…’등등 수축의 의미가 전혀 없는 단어에서도, 쌍지읒만 들어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성탄절의 그 남색 양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내일 이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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