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스토리 8 번외 - 산타의 양말 색 [4/6]

by 배져니






-4-


유치원에 잘 다니다가 다시 가을이 되었을 때, 유치원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봉투에 넣은 알림지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보지 말고 어머니를 갖다드리라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그걸 전달하자 그 이튿날부터 어머니는 빨간 털실로 뜨개질을 시작하셨다. 무엇을 뜨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짙고 선명한 털실은 우리 집안 물건 중에는 보기 힘든 새빨간 색이었다. 어머니는 뜨고 계시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감추는 기색이었으나, 나중에는 내가 보더라도 바쁘게 계속 뜨셨다.

그때 유치원에서 아이들 사이에선 산타가 있느냐 없느냐로 한창 다툼이 일었고, 대부분 있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그중 조금 키가 큰 여자애가 나에게 그랬다.

“너희 엄마는 뭐 사셨어?”

“뭘?”

“산타는 부모님이잖아. 선생님이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해서 보내라고 알림장 보냈잖아, 보지 말라고 했던 거…. 난 봐서 알지. 넌 안 봤어?”

나는 보지 않았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산타의 존재에 대해 결론 내리고 싶지 않았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있다’라고 믿고 싶었다. 이미 쫀쫀 양말로 의구심은 있었으나 말이다. 일단 그 아이에게 주장해 봤다.

“선생님이 크리스마스 날 산타가 유치원에 온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그랬는데?”

“산타는 굴뚝 타고 들어오는데 유치원에는 굴뚝이 없어. 산타는 밤에 다니는데 유치원엔 한낮에 온다잖아. 산타는 없어.”

그 아이의 단호한 말에 나는 뭔지 모를 내상을 받았다.


마침내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고 오후쯤 되자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은 모든 아이를 줄 맞춰 앉혀놓고 산타가 올 테니 눈을 감으라고, 눈을 뜨면 산타가 안 나타난다고 했다.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어릴 적에는 휴지 한 번 안 버리고 질서는 꼭 지키는 등, 공중도덕과 어른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편이었다. 내 7년 인생에 첫 부도덕함이 발생했다.

유치원 마룻바닥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가 슬며시 눈을 떴다. 뜨지 말라고 했는데 어른의 말씀을 어기는, 금기를 깨는 첫날이었다.

유치원 단상 옆쪽의 문이 열리면서 산타 복장의 남자가 나타났다. 나는 한눈에 그가 산타가 아니라는 걸 알아봤다. 등장부터 산타스럽지 않았고 할아버지여야 할 존재가 자세부터 너무 꼿꼿했다. 배도 나오지 않은 젊은 어른의 마른 몸이었고, 모자 아래 흰 수염은 가짜 티가 많이 났으며, 드러나 있는 귀밑머리는 까만색이더라. 거기에 산타가 마이크를 들고 이름을 부르면서 덕담을 건네는데 그 말소리도 전혀 할아버지 같지 않았다. 음성이 굵고 젊었고, 힘이 넘쳐서, 그야말로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내 이름이 호명되어 단상으로 나가니, 배가 홀쭉하고 젊은 목소리의 산타는 내게 이런저런 당부의 말들을 했다. 그 ‘이런저런 말’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말들이어서 잠시 산타가 우리 어머니와 텔레파시를 하시는 줄 알았다. 선물 상자를 받고 보니 상자 한쪽에 어머니의 글씨가 빼곡히 적힌 메모가 붙어있었고 그걸 산타가 읽어주신 거였더라. 상자를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빨간 털모자와 목도리였다.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짙고 선명한 빨간색 털실로 짜여있었고, 정황상 보통의 눈치로도 그게 어머니가 뜨개질하시던 실과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상황, 오빠의 ‘산타는 부모님이다.’ 폭로와 알파벳 초콜릿, 키 큰 여자아이의 말, 유치원 나타난 허리 꼿꼿한 산타, 그리고 어머니가 떠주신 빨간실 목도리 선물… 모든 상황이 산타의 존재는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일 이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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