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스토리 8 번외 - 산타의 양말 색 [5/6]

by 배져니






-5-


겨울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는 8살이 되었다. 나에겐 갑자기 가방과 공책이 생겼고 정신 차려보니 학교에 앉아 있었다. 1학년이라는 명찰을 달았고, 1학년의 일정이 너무 빽빽해서 정신없는 나머지, 지난겨울의 산타 부존재에 대한 실망을 깊이 느껴볼 새도 없이 학교에 다녔다.

정신이 없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 혼이 쏙 빠지도록 복잡해진 일상 때문에, 나는 하교해서 집에 오면 피로한 나머지, 숙제를 하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가끔 곤히 자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오빠에게 내 숙제를 대신 하게 시켰다. 보통 단어 쓰기 숙제를 해주곤 했는데 일어나면 얼추 내 글씨와 비슷한 필체로 단어들이 적혀있었다. 오빠는 으쓱하며 내게 말했다.

“왼손으로 썼거든, 왼손으로 썼어도 네 글씨보다 잘 쓰지? 고맙지?”

“…… .”

어릴 때라 상황판단을 잘할 때가 아니어도 이상했다.

내 욕을 하면서 고맙다고 하라는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고마워…”

이해는 잘 안되어도 숙제하는 게 어느 정도 고역이었기에 화가 나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이 잘도 나왔다.

중간에 처음으로 여름 방학이라는 것도 맞이하고, 한 학기 동안 어린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시달리다가 자못 한적한 시간을 맞이하게 되니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정말 쏜살같이 다시 2학기가 시작되었고, 추석도 지나고 어슷하게 서늘해졌다. 어머니는 어느 날 내게 물으셨다.

“너 갖고 싶은 거 있니?”

“없어요. 왜?”

“…… 좀 있다. 오빠 오면, 오빠보고 갖고 싶은 거 뭐 있냐고 물어봐, 너도 생각해 보고. 오빠한텐 엄마가 물어보랬다고 하지 말고.”


오빠는 4학년이어서 나보다 몇 교시 수업을 더 받고 돌아왔다. 나는 오매불망 오빠만 기다리다가 오빠가 오자마자 말을 걸었다.

“오빠, 오빠는 갖고 싶은 거 뭐야?”

“왜?”

“그냥 궁금해서…”

“그러니까 그냥 왜? 네가 사주려고?”

“아니.”

“근데, 왜? 누가 시켰어?”

어머니가 간과하신 것이 있는데, 오빠는 파고드는 질문을 할 줄 아는 고학년이고, 나는 2타석 연달아 숨기는 걸 할 줄 모르는 저학년이었던 것이다.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엄마가 물어보래.”

“…….”

오빠는 생각에 잠긴듯하다가 중얼거렸다.

“… 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 사줄 생각인가 보다…넌 뭐 가지고 싶다고 했어?”

“없다고 했어…근데 산타 없잖아!”

“누가 그래?”

“나 6살 때 오빠가 그랬잖아, 엄마 아빠가 산타라고.”

오빠가 살짝 당황하더니

“엄마한테 말하지 마, 산타 없는 거 알면 선물 안 주신단 말이야. 난 로보트가 갖고 싶어. 산타 없다고 내가 말했다고 하면 안 돼! 알았지?”

그 시간 이후에 어머니는 바쁘셔서 나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고 며칠이 흘렀다. 약간 한가해지신 어머니가 나를 불러 물었다.

“너 뭐 갖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아니…. ”

“왜? 왜 생각 안 해봤어? 산타가 선물 갖다줄 텐데?”

“산타 없잖아!”

“…음?…산타가 왜…. 왜 없어? 있어….”

“거짓말, 없어!”

“…. 누가 그래?”

“어디서 들었어!”

“어디서?”

“유치원 때 산타가 너무 젊고, 유치원 여자애도 산타 없다고 하고, 산타 선물도 엄마가 짠 목도리잖아. 없는 거 맞지?”

“여자애 누구? 누구한테 들었어?”

“몰라…. 아무튼 들었어.”

어머니는 손을 턱에 괴고 생각에 잠기셨다. 그리고 신중하게 물으셨다.

“오빠는 뭐 갖고 싶대? 물어봤어?”

“로보트..”

어머니는 다시 생각에 잠기시며 심각해지셨다.

“져니아, 오빠한테는 말하지 말아, 알았니? 오빠가 슬퍼하는 거 싫지?”

나는 알았다. 내가 산타의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한 ‘그 느낌’을 보신 어머니는 오빠가 역시 속상하고, 실망할까 봐 걱정하시는 뉘앙스였다. 나는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게 괜스레 미안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계속 걱정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죄책감이 느껴졌다.

“……. 나 6살 때 산타가 없다고 오빠가 말해줬었어.”




*내일 이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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