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스토리 8 번외 - 산타의 양말 색 [2/6]

by 배져니






-2-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어머니는 긴장감을 주려 하셨다. 울기라도 할라치면,

“산타가 선물 안 준다.”

밥을 안 먹으면, “밥 안 먹는 아이에겐 산타가 선물 안 준다.”

가끔 찡얼거리면 “산타 할아버지가 보고 계신다.”…라고 산타의 존재를 인식시키셨다.

울지만 않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는 것에 뭔가 ‘속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두어 달간 선물을 받기 위한 조건을 맞추려고 노력했으므로, 그간 노력한 게 아까워서도 12월까지…밥 잘 먹고 얌전히…원래도 얌전했는데 진짜 죽은 듯이 얌전히 지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어머니는 내게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 말씀하셨다. 신나는 어조로,

“내일이 크리스마스네, 우리 머리맡에 양말 두고 잘까? 지여니 양말 어딨어? 가져와 봐…”

나는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어머니가 의아해하시며 물었다.

“왜?”

“선물이 작아?”

“응?”

“내 양말은 작은데, 그 양말에 넣어주는 거면 선물이 작은 거 아냐?”

어머니는 뭔가 움찔하셨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모르신 눈치셨다.

“큰 양말을 두면 되지, 아빠 양말 빌려서 놔두고 자자, 그럼 됐지, 그렇지?”

그렇게 말씀하신 엄마는 아버지 양말을 가져와서 머리맡에 두셨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 배려 어린 행동은 나를 더 혼란에 빠뜨렸다.

TV나 동화책에서는 양말목에 흰털이 달리고 빨간 천의 큰 양말을 걸어두더라. 산타가 다녀간 뒤에는 그 큰 양말 안에 예쁜 리본이 묶인 커다란 상자가 빼꼼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버지 양말이 내 양말보다는 크다 치더라도 색깔은?

어린이가 좋아할 법한, 밝고 선명한 빨간색에 새하얀 솜털이 달린 산뜻하고, 마음 설레게 하는 ‘예쁜 양말을 놓아두게 되겠지.’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양말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져다준 아버지 양말은… 그 당시 남자 어른들은 거의 단색의 양말을 신으셨고 그 색도 한정적이었다. 흰색, 검은색, 남색.

가져다주신 아버지 양말은 검정에 가까운 남색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발냄새도 없고 무좀도 없으셨지만, 색깔이 칙칙하고 흐물흐물한 양말의 모양새는 성스러운 성탄절과 너무 안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어린 나는 뭔가 삐그덕 어긋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어머니는 나에게 일찍 잘 것을 강요했다. 나는 잠이 많았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더 일찍 누워있으려니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주 오랜만에 자장가를 불러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신 거였다. 얼른 재우고 선물을 놓아두려 하신 거였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잠이 들었다.


원래 푹 잘 자기 때문에 그날도 꿈도 없는 잠을 푹 잤다.

보통 휴일에는 엄청나게 오래 자는데 그날은 어머니가 일찌감치 깨웠다. 그리고 즐거운 듯 말씀하셨다.

“누가 왔다 갔게? 양말 봐봐, 어서…. 누가 왔었나 봐~!”

나는 깜짝 놀랐다.

어두운 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까 남색 양말 안에 무엇인가가 들어있었는데 그 무엇인가를 감싸느라 양말의 형태가 사라지고 이상한 덩어리 모양으로 떡하니 변해있었다.

말했듯 크리스마스 양말은 큼직한 빨간색으로 넉넉한 공간 안에 예쁜 상자가 슬쩍 보이는 그림 같은 모습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칙칙한 남색 덩어리가…

내가 조금 놀라서 멍하니 보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어디 볼까~ 뭐를 두고 가셨을까~?”

그러시고는 내 무릎에 올려두고 양말목을 찾아 천을 뒤집어 까기 시작하셨다. 양말은 쉽게 뒤집어졌고, 조금 늘어지긴 했으나 본래의 양말 형태로 돌아왔다. 그때 양말에 대해 놀란 게 있었으나 6살이라 그걸 표현할 단어를 몰랐다.

아무튼 양말에서 나온 것은 초콜릿이었다. 요즘에도 판매되고 있는 알파벳 초콜릿 한 봉지였다. 따로 포장된 것도 아니고 상품 비닐 포장째로 턱 하니 나오는데, 나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양말과 포장에 대한 실망도 그러했지만, 나는 인형이 받고 싶었다. 그때에도 막연하게 먹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는 선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초콜릿보단 인형…음…. 혹자는 싼 거보다 비싼 거를 좋아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당시 마땅한 장난감이 없었기에 그리고 그때 아직 6살이었다. 인형이 좋을 나이였다.

오빠도 뭔가 선물을 받은 것 같은데 아마 먹을 것이었나보다. 자신의 선물을 다 먹었는지, 오빠는 내게 와서 친한 척하며 초콜릿을 달라고 했다. 오빠가 곰살맞게, 살갑게, 달라고 하니, 주었고, 또 나는 선물이 인형이 아니라는 것에 상심이 컸기 때문에 초콜릿 선물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탕처럼 낱개 포장된 초콜릿 무더기에서 두 움큼을 오빠에게 건네주었다. 그중 대부분이 다시 돌아왔다. 오빠가 동생 초콜릿을 뺏은 줄 알고 어머니가 수거해서 다시 갖다주신 것이다. 그 상황이…. 어땠냐면.




*내일 이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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