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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글쓰기 강좌에서 강사님은 A4 1매 분량의 글을 써오라는 자율적 숙제를 내주셨고, 나는 자잘 스토리에 올렸던 글 중 한 편을 대략 1매 분량으로 편집해서 프린트해갔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강사님은 글을 써온 사람은 제출하라고 하셨다.
간헐적으로 강사님이 써온 글을 읽어보라고 시키시는 경우가 있어서 뽑아오기는 했는데 그걸 제출해서 전 수강생에게 나누어주실 줄은 몰랐다. 내 지인은 알았나 보다. 써왔다고 했는데 어쩐지 제출을 안 하더라.
여하튼 당당하게 제출한 사람 3명과 얼떨결에 제출한 1명의 글은 낭독되었고 합평을 받았다.
첫 번째 분의 글은 무난하면서 진지했고, 두 번째 분의 글은 표현이 매끄럽지 못했으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냈고, 네 번째 분의 글을 휘갈겨 쓴 글씨체 만큼이나 어조가 강렬하고 빨랐다.
나는 세 번째로 낭독하고 합평을 받았다.
강사님은 앞서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느낌이 어떻습니까?"라고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긴장했다. 합평 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마음은 덤덤했는데 몸은 귀를 쫑긋 세우며 예민해지는, 그런 느낌.
침묵을 깨고 한 분이 말씀하셨다.
"재밌는데요."
또 다른 분이 말씀하셨다.
"소설 쓰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일화가 하나의 미니 픽션 같은 느낌이고 재미있었습니다."
강사님은 "이거~ 재밌으면 최고 아닙니까!"라며 호응해주셨다.
곧이어 "이 원고 아주 잘 가져오셨어요. 그런데 단락이 명확하지 않죠, 글이....."
처음엔 칭찬인 줄 알았다. 잘 가져오셨다고 하니까, 재밌다고 해주시려나 싶었다. 그러나 듣다 보니 '문단과 단락'에 대한 공부를 하는 이 시간에,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는 '잘못된 예'가 되기 때문에 잘 가져왔다고 하신 거였다.
"이런 글이 필요했어요."
라는 말씀도 하셨다. 잘 된 예는 고칠 게 없어서 설명할 게 없는데 내 글은 잘 못된 게 많아서 설명하기에 유용하다는 뜻이라는 게 유추 가능했다.
일종의 진담이면서 농담이셨는데 나는 웃지를 못했다. 제삼자의 입장에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본인이 당사자가 되면 상황이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었다. 그 시간에는 웃지 못하다가 막상 집에 와서 곱씹어 생각하니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강사님, 재미있으시네.
2
아무튼, 얼결에 받은 합평에 재밌다는 칭찬과 단락 구분이 안된다는 비평을 받았다.
블로그에 자잘 스토리를 올릴 때 가독성 좋게끔 하려고 문장마다 행갈이를 했었다.
그게 블로그에서는 보기 좋아도 지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가 보다. 마음에 새겨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봐야겠다.
3
한편, 재밌다는 칭찬에 나는 기분이 붕 떴다.
그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는 하더라.
나는 고래보다 몸무게가 가벼우니 춤 이상의 광란의 몸짓을 구사했어야 바른 것이었겠으나, 워낙 태생이 점잖고 침착하며 진중한 타입의 사람이라.... 응? 집어치우라고? 알았다.
4
사실, 성인이 되어서 무엇인가를 잘한다고 칭찬받아본 적이 드물다.
모든 것을 그냥 무난무난하게 해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얼 해도 또 무난하기만 할 것이라는 슬픈 확신이 있었다.
그런 내가 자그마한 칭찬을 받으니, 그것도 잘 해내고 싶어서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던 글쓰기에서 그런 칭찬을 받으니 '너어무우나' 기분이 좋다. "재밌는데요."라는 칭찬 한 마디에 벌써 3일째 쭉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나는 오래 살 것 같다.
먼 훗날 저승사자가 날 데리러 왔을 때 "어? 이 처자는 벌써 3일 전에 죽었어야 하는데 왜 아직 살아있지?"하며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나는 말하겠지. "칭찬의 힘으로 명이 길어졌어요."
그럼 저승사자 왈, "재밌다는 말로 명이 3일이나 길어졌다고? 긍정적인 처자일세~, 자 이제 같이 가자!"라고 하면 나는 "잠깐만요, 저한테 지금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잖아요. 저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서 명이 길어졌어요. 3일 후에 다시 오세요."
3일 후 다시 저승사자가 와서 "오래도 살았다, 가자"하면 "잠깐만요, 저한테 오래 살았다고 칭찬하신 거예요? 기분이 좋아졌어요. 3일 후에 오세요"
이런 식으로 꼬투리 잡다 보면 저승사자는 나중에 말 꺼내기가 무서워질 테고 그래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될 것이다. 그럼 '저승 가자.'라는 말도 못하게 되겠지. 그럼 나는 예정 수명에서 1년을 더 살수 있을지도. ㅎㅎ
5
작은 성취가 모여서 큰 성취가 된다고 한다.
큰 성취는 차치하고 나는 작은 성취로 뿌듯해하고 기뻐하는, 소박한 내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3일이 즐거웠고 앞으로도 며칠 더 즐거울 것 같다.
저승사자님. 제 수명 계산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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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를 필요 없어요.
반짝일 필요도 없어요.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어요."
-버지니아 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