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무엇이 있나?'
예전에 마음 안에 어떤 갈구가 있었다. 그 갈구를 칭하는 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 말을 검색창에 넣어보니 학술 용어로 '인정 욕구'라는 말이 아예 있었던 것이다. 법정 스님도 살아생전에 인정 욕구가 있어서 글을 쓰게 되셨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스님도 그러하실진대 일반인은 얼마나 강렬하게 인정 욕구에 시달릴까.
나는 내가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여겼다.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이 무얼 해서 인정받겠는가, 지탄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지, 적당히 적당히 흉 안 잡힐 정도만 해나가자, 욕심부리지 말고 튈 생각하지 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하자.'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데 인정 욕구가 누구나 가진 심리적 욕구라고 한다.
'그럼 나도 가져도 되는 것이구나. 누구나 잘하려고 해도 되고, 가능성을 높이려 노력해도 되고, 드러나기 위해 활동해도 되는 것이구나! '이 결론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을 너무 깔아봐서 불행했었다. 노력이라는 것 자체도 노력해도 되는 존재와 그럴 수 없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극빈자에서 벗어나 한 무더기의 동전을 가진 사람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고 든든했다.
그 이후엔 좀 열심히 살았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가 내 취미였는데 취미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림을 그리면서는 곧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은 기분이었고, 글을 쓰면서는 '언제쯤 노벨상을 수상하면 적당할까', 수상하게 될까, 가 아니라 수상하면 적당할까, 이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상을 탈 수 있을 것처럼 허세 가득한 상상을 했다. 지금은 정신 차렸다. 웬만큼의 재능과 시간, 노력이 있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물론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그리 호락호락 사라지는 욕구는 아니기에 나는 여전히 글과 그림으로 언젠가는 인정받는 날을 꿈 꾼다.
한편, 비뚤어진 인정 욕구가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에 집착하게 한다는 것을 안다.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아야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게 못된다. 나는 어머니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어머니면 타인이 아니라 혈육이기에 좀 더 나를 잘 인정해주실 줄 알았다. 천만에, 그렇지 않았다. 그림 그린 것을 보여드리고, 쓴 글을 읽어드려도 "모르겠다."라는 말씀뿐이었다. 사실 그때의 글과 그림이 좀 어설펐을 것이다. 그래도 약간 칭찬을 해주시면 나는 감지덕지 만족했을 것이다. 한결같이 모르쇠 하시니 나는 기가 죽고 슬펐다. 당최 인정받을 곳이 없었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것이나 인정받기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고달팠다. 나는 '에라이, 어차피 나 좋으려고 하는 건데, 엄마고 뭐고 필요 없어. 배 째! 나는 계속할 거야! 배 째, 배 째!'라고 승냥이가 울부짖듯 외치고는 그다음부터는 어머니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냥 그림 그리고 글 쓰고는 블로그에 올릴 따름이었다. 그렇게 블로그에 던져놓고 나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예상했겠지만 방문자 수에 연연하게 되었다. 방문자 수가 높아야 인정받은 것 같고 수가 저조할 때는 인정 못 받은 것 같고... 사람도 아닌 이 새로운 인정 욕구에의 대상이 나타나 마음이 많이 피곤해졌다. 번잡스럽고 정신없는 욕망에 다시 휘둘리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다시금 뇌와 감정을 재정비했다. 내 안에 있는 인정 욕구를 인정하고 그 폐해를 욕하겠고 자유를 구하겠노라고.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나?
엄청난 동력기처럼 의지를 부여해주는, 그리고 귀신처럼 사람을 겁먹게 하는 인정 욕구가 있다. 나는 자동차처럼 친근하게 이용하고 핵폭탄처럼 무서워하며 경계하고 있다. 내 안엔 인정 욕구와 그것을 의지하고 경계하는, 각성한 또 하나의 내가 있다. 내 안에, 그 둘이 항상 공존하길 바란다.
그렇게 계속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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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랑과 돈보다
더 바라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정과 칭찬 한 마디이다.
-매리 캐이 애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