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웃기고 싶다”

경직됨과 엄숙함이 계속되면 나는 마냥 웃기고 싶은 욕망이 앞선다.

by 삐딱한딴따라

직업 특성상 다양한 회의나 세미나에 참석하는 일이 많은데 성격상 참석한 자리에서 한번 이상은 발언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다. 이왕 벌어진 일이고 참석수당이 있건 없건 내가 보내는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으로 사안에 대한 발언을 아끼는 편이 아니다.


“웃기고 싶다”

지루하기 짝이 없고 쓸데없이 엄숙한 상황에 경련이 나는 스타일이라 지루한 회의나 세미나에 들어서면 그 엄숙을 보기 좋게 깨고 동석자를 웃기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회의지만 굳이 그렇게 지루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에 주어진 발언을 어떻게 재미있게 시작하고 마무리할까 고민하고 실행한다.


“실없는 사람”

웃기고 싶은 고민이 실행에 옮겨졌을 때 실패하면 매우 참담하다. ‘실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발언의 무게감마저 줄어드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다. 경직도가 매우 깊은 상황에서는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강렬한 임팩트를 주기가 쉽기 때문이다.


“말 잘하네”

성공했을 때는 상당한 이득이 있다. 일단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불리며 ‘유쾌한 사람’, ‘긍정적인 사람’등으로 좋은 기억이 남겨진다. 발언의 무게감도 더해져 요구사항이 관철되거나 주요 논쟁거리로 남겨지는 효과를 보게 된다.


“썩은 개그라도 웃기고 싶다”

웃기는 것에 대한 효과를 만끽한 이후부터는 욕심이 자꾸만 더해진다. 그런데 그 욕심이 끝없이 세련된 결과로 표출되지는 못하기에 ‘썩은 개그’, ‘아재 개그’가 남발되기도 하고 마치 전성기가 지난 개그맨처럼 웃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한창 피치를 올릴 때는 “개그맨을 했어야 했나”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살 정도로 인기 좋은 패널이 되기도 한다. 잘 나갈 때는 불러주는 곳도 많아서 온갖 사안에 전문가마냥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웃기지 않은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물론 그래도 웃기고 싶은 욕망은 포기하지 못한다.


“나는 계속 웃기고 싶다”

경직됨과 엄숙함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그것이 싫을 뿐이다.

물론 엄숙 주의에 찌든 사람들에게는 경박스럽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이득을 본 최고의 순간은 ‘제대로 웃겼을 때’다. 그냥 그때가 좋다.


145563985_3802776339760719_5249548117253169682_n.jpg 그림협찬: 짱새(https://www.instagram.com/semi_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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