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충분히 재미있었고 나름 의미 있었다. 그거면 족하다.
"그동안 뭐했는데?”
남들 다 들어놓는 주택청약 하나 없이 아파트를 옮겨보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닐 때 누군가 나를 이야기하며 “마흔이 넘도록 뭐하고 살았는데 여태까지 청약도 없고, 그 흔한 전세도 못살고 여태 국민임대 아파트 사는 거냐!”라는 험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슴이 매우 쓰린 건 사실이다.
한동안 이직을 준비하던 중에는 어느 선배에게 “대체 커리어 관리를 어떻게 한 거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지금 일하는 분야에서 나름 약간의 명성을 얻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일을 했건만 이직을 쉽게 하지 못한다고 그런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런 취급을 받을 정도로 자기 관리를 안 했던 것도 아니었기에 씁쓸한 마음은 더욱 크다.
모아 놓은 재산이 없다고 했더니 “주식도 안 하고 부동산도 못 굴리고 대체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냐?” 고 묻는다. 열심히 일했고 필요한데 쓰며 살았다. 주식에 자금을 굴려볼 여력을 가질 만큼 급여 수준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고, 1억짜리 아파트를 빚내서 사고 2억, 3억을 만들어 빚을 갚고 이득을 남겨 파는 게 정상인가 라는 생각에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다.
사실 ‘오늘을 위해 내일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라는 치기 어린 자신감도 있었다.
"그동안 뭐했는데?”
이른바 객관적 지표를 기준으로 그걸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날려주는 핀잔은 매우 편협하고 폭력적이다. 물론 일반적인 기준과는 약간은 다른 삶의 지표를 중시하며 사는 나 같은 ‘별종’에게 그런 폭력이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굳이 맞을 필요도 없거니와 인간이기에 피해 갈 수 없는 고민과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도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또 쓰라리다.
같은 시간에 공부를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당구를 치거나 술을 마시기도 한다.
같은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기도 하고, 즐겁게 소비를 하기도 하고, 기부를 하기도 한다.
범죄나 일반적인 사회규범에서의 일탈행위가 아니라면 정답은 없다.
다만 객관적인 시선에서의 이른바 ‘바람직한 방향’ 정도는 정해져 있는 게 현실이다.
객관적인 지표에서 벗어났던 ‘그동안 했던 일’들을 저평가하고 싶지 않다. 타자들의 박한 평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좀 특출 나긴 했어도 그것들이 그리 잘못되거나 모자라지 않았으며 그간 충분히 재미있었고 나름 의미 있었다. 그거면 족하다.
‘그래서?’
솔직히 요즘은 지표를 조금은 이동해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세월을 적당히 살아온 탓인지 적당히 현실과도 조율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고, 그런 현실 탓에 고민의 깊이가 깊어지며 더 이상 “그동안 뭐했는데”의 핀잔에 의연하게 대응할 자신도 없는 탓이다.
중요한 건 그러한 변화조차 스스로에게 즐겁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동안 뭐했는데?”라는 질문보다 “앞으로 뭘 하고 싶은데?”라는 질문을 더 많이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