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속 해파리가 되고 싶어

내 머릿 속 공상과 현실사이

by 작은경미

'분명히 여기 어딘데.'

예전에 갔던 기억이라면 이쯤에 있는 게 틀림없다. 떼를 지어 부드럽게 두둥실 떠오르는 모습이 마치 하얀 목련꽃이 흩날리는 것 같은 해파리 수족관 말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니모 물고기와 푸른 물결을 한가로이 날고 있는 가오리의 유혹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그들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길 몇 분. 몇 개의 터널을 더 지나가서야 저 멀리 살랑살랑 새하얀 쉐폰 드레스를 흔들어 보이는 해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겐 야심 찬 계획이 있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수족관 속 해파리로 태어나는 것이다. 다소 황당한 몽상에 사람들은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왜?'라고 되물어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걸 보면 수족관 속 해파리로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사람은 정녕 나 혼자인 것 같다.

바다에 사는 생명체들도 거대한 몸을 뽑내며 큰 바다를 자유롭게 가르는 향유고래를 부러워하는지 생각했던적이 있었다. 향유고래가 된다면 무서울게 없겠다고 아등바등 닮아가려고 노력할까. 먹이 피라미드에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 주어진 나를 애써 버리는 노력을 그들도 할까 궁금했다. 세상을 보다 악착같이 살고자 했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내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나에 대한 혐오로 바뀌어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모든걸 놓아버렸다.


우연히 방문한 아쿠아리움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해파리를 본 순간


얼마간의 방황은 나약한 자신에 대한 혐오로 바뀌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끊임없이 묻게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사람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과장된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이 말이다. 좁은 공간에서도 여유롭게 몸을 활짝 벌렸다가 안쪽으로 오므리는 해파리의 진동이 내 심장 박동과 닮았다.

해파리 수족관 앞에 도착하니 해파리들이 사뿐사뿐 내 앞으로 헤엄쳐 왔다. 마치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나도 그들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었다.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수족관 유리에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해파리의 하얀 살갗이 너무도 투명해서 영혼마저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태어나면 나도 너가 될 수 있을까?'

많은 해파리 중에 유독 하얀 살갗을 가진 투명한 해파리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자 수족관 조명이 푸른색에서 노란색으로 그리고 다시 보라색으로 바꼈다. 투명한 해파리의 몸도 조명색에 따라 아름답게 변했다.

'너는 왜 해파리가 되고 싶니?'

투명한 해파리가 유리 앞으로 바싹 다가오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수족관 유리에 기댔던 손을 떼었다. 투명한 해파리가 몽환적인 몸짓을 하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그냥 해파리가 아니라…… 꼭 수족관에 사는 해파리여야만해. 난 수족관 속 해파리가 되고 싶어. 바로 너 처럼…….' 어이 없게도 나는 해파리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어서와. 수족관 속은 고요하고 아름다워. 자연은 언제나 위험하지. 내 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기분을 상상할 수 있겠어? 우리는 그저 떠다닐 뿐이야. 바람이 이리로 가라고 하면 가고, 물살에 나를 맡기면 그뿐이야. 미미한 날갯짓으로 반항할 때도 있어. 그럼 우습다는 듯이 나를 더 멀리 데리고 가지. 그러다가 지금 여기에 도착한거야. 그날은 운명의 장난같은 날이었어. 태양이 뜨거운 해변가에서 뒹굴뒹굴 햇살과 노닐고 있었지. 그때 어느 보드라운 피부와 우연히 포개졌어. 인간은 꽥하고 소리를 지르고 수선스럽게 발을 첨벙거렸어. 내 몸은 정신없이 휘날렸어. 그들에게 나는 안중에도 없었지. 그렇다면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어? 내 안의 감춰 넣어둔 수많은 촉수를 처음으로 꺼냈어. 그리고 방아쇠 같은 돌기에 독소를 일발 장전했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내 본능은 사는 법을 알고 있었던 거야. 결국 백분의 일초만에 발사되었어. 이렇게 빨리 사단 날줄은 나도 몰랐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결국 몇 명의 인간을 기절시키고야 말았어. 그때부터 인간은 나를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그게 모두 내 탓이야? 나를 가만히 놔두었다면 공격할 의지도, 상처 줄 이유도 없었다고. 나에게 상처받았다고 우기는 인간은 그들이 가했던 위협은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아. 그러고 나서는 나를 잡아 매콤 새콤한 핫소스 뿌려 자신의 입맛대로 갈기갈기 찢어 씹어대지. 나는 유일하게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썼을 뿐인데 말이야.


자유가 없다고 단정 짓는 이곳엔 더없이 큰 자유가 있어. 개복치와 바다거북이 장난 삼아 벌린 입에 심장을 동동거릴 필요가 없지. 그리고 얼마 전에 친구들의 독침이 퇴화되기 시작했어. 상처 주거나 오해받는 일이 여기는 없기 때문이라나. 그것이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지 알지 못할 거야. 이참에 내 것도 아예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사방에서 비추는 인공태양이 투명한 몸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어 주면, 인간들은 명품관 쇼윈도 구경하는 것처럼 경이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이런 열렬한 호응은 밖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말미잘과 히드라 같은 하등동물로 취급받는 내가 여기에서는 신비한 여신이 된다니까. 분홍 빛을 쏘아주면 나는 사랑에 빠진 로맨틱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짙은 남색 빛이 나오면 우주를 나는 유에프오가 되어 세상을 항해하기도 하지.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 사람들은 가끔 지나가면서 이렇게 얘기해.

"갇혀있어서 답답하겠다."

아주 좁은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서 사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나를 걱정해주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그런데 너는 왜 내가 되고 싶다고 했지?



"언제까지 보고 있을 거야."

투명한 해파리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뺏겨 한참을 서있었다.

'그래. 넓은 세상에 존재해야 행복한 건 아니야.'

얼마간의 방황은 나약한 자신에 대한 혐오로 바뀌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끊임없이 묻게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사람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과장된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이 말이다. 좁은 공간에서도 여유롭게 몸을 활짝 벌렸다가 안쪽으로 오므리는 해파리의 진동이 내 심장 박동과 닮았다. 이제 안정을 찾을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빛 좋은 창가 자리, 어두운 구석진 자리. 어디를 선택하든 나로서 살아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선택에 성공과 실패는 없다고 믿고 싶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묻는다.

"괜찮아?"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응. 지금 행복해."


대 자연이든 수족관이든 이제 상관없다. 수족관 해파리의 삶도 충분히 가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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