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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경미 Nov 07. 2022

배꼽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배꼽실에 연결되어 있어

그가 내 손을 탁 뿌리쳤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인 양 한 발짝 앞서기 시작했다. 때가 왔구나. 그를 보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십일 년 전 겨울에 만났다. 내 새끼손가락 하나 잡기도 버거웠던 아기의 옹이 진 손은, 세월이 흘러 손가락 두세 개를 거뜬히 잡기 시작하더니 이제 서로의 손을 나란히 쥐고 갈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손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섞여 끈적했던 여름날에도, 패딩 주머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체온을 나누었던 한겨울에도 서로에게 매달리다시피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살짝살짝 밀고 당기는 손가락의 힘겨루기는 위험을 알려주는 우리만의 신호였고, 어쩔 수 없이 떨어진 손은 자석이 끌어당기듯 다시 찰싹 달라붙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통해 대화하고, 사랑을 고백했다. 손은 우리의 또 다른 언어였다. 

그랬던 우리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온전한 엄마가 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에게 엄마는 전부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사업이라는 거창한 자아실현에 아이는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날이 한참 저물어 집에 도착하면 어둠침침한 방에 벌러덩 누워 삶을 충전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이십 분의 시간은 내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신성한 시간이었고, 엄마만 기다렸을 누군가에겐 가혹한 시간이었다. 내 시간을 존중해준 남편과 달리 아이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곤 했다. 아이는 “흠. 흠.” 인기척을 하고 살금살금 걸어와 내 머리맡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여느 또래 애들처럼 왜 벌써 누웠냐고 따지지 않았다. 이불을 들썩이지도, 귀찮게 굴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가 꿈지럭거리는지 생사를 확인할 뿐이었다. 실눈을 뜨고바라본 아이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 있었다. 아이의 손을 끌어당겼다. 아이는 그제야 눈물을 닦고 나에게 폭 안겼다.

“엄마가 죽은 줄 알았어.”

아이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엄마의 부재로 인한 아이의 고통은 어른인 나는 잊은 지 오래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신발들 사이로 엄마의 오래된 갈색 구두가 보이는지, 반지하 창틀에 모가지를 길게 빼고 엄마를 기다렸던 어린 나의 아픔이 아이에게 투영되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으며 얘기해주었다.

“웅아. 엄마하고 웅이하고는 안 보이는 배꼽 실로 연결되어 있어. 그래서 어디에 있든 서로를 느낄 수 있고 마음도 다 알 수 있어. 웅이와 엄마는 연결되어 있는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는 항상 옆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안 보이는 배꼽 실은 없었다. 그저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지어낸 말일 뿐이었다.


그렇게 밤마다 미라가 되는 나는 아침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최대한 밝고 상냥한 ‘솔’ 음을 장착하고 자는 아이를 깨웠다. 전날 밤에 느꼈을 두려움에 대한 보상이었다. 가방은 잘 챙겼는지, 어설픈 세수로 눈곱이 그대로 있지는 않은지, 로션을 발라주고 마무리로 뽀뽀까지 하면 우리의 등굣길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나도 아이만큼 이 시간이 참 좋았다. 멀리 신호등이 바뀌면 아이는 내 신발을 힐끗 봤다. 높은 굽이 아닌 걸 확인하면 내 손을 꽉 잡고 냅다 달렸다. 꽉 잡은 손에서 ‘이제 엄마보다 내가 더 빨라.’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헥헥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면 리오스 사진관이 나오는데 우리는 유치원 기린반 선생님을 닮은 스튜어디스 사진을 꼭 한 번은 언급하고 지나갔다. 학교 길까지 부동산이 얼마나 많은지 세보자는 내 말에, 동원 부동산, 초이스 부동산, 황금 부동산, 하나 부동산, 조은 부동산까지 세다 보면 지겨워서 아이는 다른 얘기로 곧잘 넘어갔다. 전날 먹었던 할머니의 된장찌개 맛에 대한 찬사, 선생님이 왜 포켓몬 카드를 가져오지 말라고 했는지, 농구 코치님이 소리 지르는 게 혼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둥 아이는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걸 토해내느라 바빴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길 위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비가 오면 오른손에는 우산을, 왼손은 손을 잡고 비를 맞았다. 눈이 오면 몰래 차가운 눈을 한 줌 쥐어 놀라게 하기도 했다. 차가움에 놀란 아이는 바닥에 있는 눈을 한 줌 쥐어 내게 던졌다. 눈싸움의 끝은 서로의 옷에 묻은 눈을 털어주는 것으로 끝났다. 추운 날엔 내 목도리로 아이와 내 손을 돌돌 감아 체온을 나눴다. 유리문에 비친 그 모습이 우스워 서로 킬킬대며 웃기도 했다. 등굣길 십 분은 우리에게 하루였다. 엄마와 아들이 온전히 함께하는 하루 말이다. 오직 그 시간만이 나를 온전한 엄마로 만들었다.


어느 등굣길. 아이가 콧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식당에서 손에 닿지 않는 음식을 집으러 엉덩이를 들어야 할 때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콧노래는 속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을 때, 난처함을 가리려는 하나의 징표였다. 그 비밀을 안다는 걸 아이에게는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래야 콧노래가 들릴 때마다 아이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콧노래를 멈춘 아이는 잡은 내 손을 풀더니 어색하게 앉아 멀쩡한 운동화 끈을 매만졌다. 손가락이 어설프게 허공을 맴돌았다. 콧노래와 아이의 삐걱거림에 분명 뭔가 있음을 느꼈다. 저 멀리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는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사 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지윤이었다. 지윤이와 항상 손잡고 다니던 단발머리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지윤이는 혼자였다. 웅이는 여전히 나와 있었다. 

‘혹시…… 나 때문인가.’

아이는 신호등 색깔이 바뀌자 슬슬 일어났다. 전처럼 뛰어야 한다고 성화대 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지윤이를 보내고 신호등 앞에 섰다. 아이는 다시 내 손을 잡고 웃었다. 나는 애써 아이의 변화를 모른 척했다. 아직은 시간이 더 남아야 했다. 내 바람과 달리 아이의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고 확실해졌다. 또래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척, 머리를 다듬는 척,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는 척 내 손을 피했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내 손을 꼭 잡으면 나는 휴우 안심했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놓기를 반복했다. 이별 예행연습하듯이.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손 하나 잡아주는 걸로 엄마 역할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될까 두려웠다. 지나왔던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는지 깨닫고 후회하는 건 평생 가도 못 고칠 병이다. 벌러덩 누워 보냈던 나만의 시간은 아이가 변한 후부터 사라졌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더 안아야 했다. 카메라로 아이의 얼굴, 목소리,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지만, 통통한 손의 감촉과 아이의 살 냄새는 어디에도 저장할 수가 없지 않은가. 오직 내 피부와 가슴에 아로새겨야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처럼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한 아침은 계속되었다.

“오늘 점심 뭐 나와?”

“.......”

“어제 재미있었던 일 없었어?”

“…….”

아이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눈을 이리저리 굴려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조용히 가고 싶어.”

심장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이에게 버려진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입을 굳게 닫았다. 더 성가시게 하면 아예 떠나버릴 것 같았다. 엄마를 기다리던 그렁그렁 한 아이의 눈이 내 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아이와 나는 같이 또 따로 걸었다. 아이의 몸에서 미끄러져 나가떨어지는 내가 보였다. 아이가 크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손을 잡지 않았다. 아니, 가끔은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잡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놓았다. 그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놓아줬다. 아이는 나와 함께여서 안도했고, 함께여서 불안했다. 아이의 마음도 갈팡질팡했다.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 말해야 했다. 아이는 나를 위해 차마 ‘엄마와 학교 가는 게 창피해’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아이니까.


하루하루 미루고 미룬 어느 흐린 날, 이름이 촌스럽다며 함께 웃던 러블리 미용실 골목 앞에서 한걸음 앞서가는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은 입을 열었다.

“웅아. 네가 원하면 우리 여기서 헤어져도 괜찮아.”

아이가 고개라도 끄덕이면 어떡하나 마음에 태풍이 일었다. 아이를 쳐다보지 못했다. 아이도 그랬다. 정적이 흐르는 순간 아이가 죄책감을 느끼면 어떡하나 버럭 겁났다. 아이를 안았다. 엄마와의 포옹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가볍게.

멀어지는 아이의 뒤통수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아이도 천천히 걸으며 자리에 멈춰 있는 나를 힐끔힐끔 뒤돌아봤다. 지금 아이의 머릿속은 얼마나 많은 생각이 공존할까. 거대한 은하수가 나를 대신해 아이의 몸에 들어와 팽창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조용히 빠져나와 한 걸음 뒤에 있어줄 뿐이다.

‘우린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어. 함께 있어도, 그렇지 않아도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

아이에게 얘기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말로 그렇겠지?’

내가 만들어낸 배꼽 실 이야기는 이제 아이의 손을 담담하게 놓아줄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아이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나도 출근길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빗방울이 조용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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