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크리스마스 선물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였는지, 아니면 그 전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겨울의 찬 공기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던 건 분명했다. 엄마가 끓이던 김치찌개의 시큼한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고 있을 무렵, 창밖에서는 아빠가 흙을 털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턱, 턱— 익숙하고도 무심한 소리. 잠시 뒤, 문이 열리고 나는 그날 따라 멀뚱히 서 있는 그를 바라봤다. 아빠는 말없이 작은 상자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벅저벅 발소리를 남기며 안방으로 내려갔다. 아빠의 얼굴에 아주 옅은 미소를 본 것은 착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상자를 열었고, 그 안에 담긴 작은 인형을 보았다. 동글한 플라스틱 검은 눈, 까끌까끌한 촉감의 털, 약간 누렇기도 하고, 하얗기도 한, 어딘가 모르게 표정이 없는 인형. 나는 그 인형을 ‘토순이’라고 불렀다. 내가 이름 붙인 최초의 물건. 온전한 내 것. 전에도 후에도 없었던 아빠의 선물이었다.
그날 이후, 토순이는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내 품 안에는 언제나 토순이가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다투기라도 하면, 나는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 채 토순이를 꼭 끌어안았다. 어둠 속에서 혼자 울던 밤,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켜준 것도 늘 토순이였다. 외로울 때마다 나는 토순이를 꼭 안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인형에게 혼잣말처럼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유없이 나는 그 인형을 다독였다. 위로받을 일이 없는 인형이었지만, 조용히 나의 위로를 받아주는 존재. 말이 없는 존재가 주는 그 묘한 안도감. 그것은 말 없는 어른들에게선 느껴본 적 없는, 특별한 위로였다. 토순이에 대한 사랑이 커갈 수록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인형을 다독이고, 쓰다듬고, 지독하리만치 뽀뽀를 해댔다. 그럴수록 토순이의 털은 내 입김과 눈물, 자주 반복된 품의 열기로 인해 차츰 엉겨 붙었고, 형체는 찌그러졌으며, 솜이 점점 죽어 그 작은 몸이 더 야위어 갔다. 지독한 사랑의 결말이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내 머리카락이 싹둑 잘렸을 때쯤— 아니, 단정한 중학생이 되기 위해 단발머리를 하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토순이는 어느새 내 품에 없었다. 밤마다 끌어안고 잠들던 그 인형은 이제는 이불 더미 한구석, 혹은 방 구석 어딘가에 무심하게 던져진 채로 놓여 있었다. 나는 자랐고, 토순이는 그대로였다. 자란다는 건, 더 이상 그런 인형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사랑과 위로를 갈구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일까.
얼굴 주름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듯 표정을 지우고 살았던 아빠. 말수가 너무 적어 엄마가 죽어라 덤비고 다그쳐도 끝끝내 조용했던 사람. 그런 아빠가 크리스마스이브였는지, 아니면 그 전날이었는지 모를 어느 겨울날, 말도 없이 내게 생뚱맞은 인형 하나를 내밀었다. 아마 토순이는, 아빠가 나를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어린 나의 간절한 희망의 투영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그 인형을 붙들고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겨진 아빠의 마음을 끝없이 상상하고, 추측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교복을 입기 시작할 무렵,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갈구한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마치 무표정한 토순이의 플라스틱 눈알처럼, 아무리 애타게 바라봐도 아빠의 마음을 끝내 알 길이 없다는 것을.
한때 나는 토순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토순이는 내가 그토록 사랑했단 걸 알고 있었을까?
사라진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위로와 힘을 주는 존재. 그런 존재도 삭아 떨어져 나간다. 서서히, 무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