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 바흐 플러스 8.20 클래식 레볼루션 2022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미국에서 열린 각종 연주회 일정을 뒤로하고 기존에 잡혀있던 한국 연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들어온 임윤찬이 가장 먼저 공연한 것은 8.12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바흐 플러스'이다.
그 힘들다는 공연 티켓을 어떻게 구했냐고? 물론 공연 티켓팅이라고는 평생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근 마켓을 글을 올렸는데 바흐 플러스 공연과 클래식 레볼루션 공연 모두 공연 하루 전날 티켓을 입수할 수 있었다. 바흐 플러스 공연은 R석(티켓가 5만 원) 예매하신 금액 그대로 주셨고, 클래식 레볼루션은 R석(티켓가 9만 원)을 13만 원에 양도받았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봐야겠지? 앞으로 정말 착한 일 많이 해야지 다짐.
이후 9월 10월에 잡혀있는 국내 공연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공연 전날까지 열심히 당근 마켓을 뒤져보자. 열심히 갈구하는 자에게 길이 있나니.
유튜브로만 접하던 임윤찬의 실제 연주는 어떨까 너무 궁금했다. 실제로 듣고 나니.. 영상에서 왜 매 연주마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쳤는지 알겠더라. 저음부를 몰아칠 때의 사운드는 정말 우레와 같았고 타건은 명료했다. ( 그 웅장한 사운드는 직접 들어봐야 해. 심장을 마구 두드려. 심장 박동이 그의 타건에 따라 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문장력에 심한 자괴감이 들지만, 정말 은쟁반에 옥구슬이 데구루루 구르는 거 같았고 빗방울이 유리알처럼 바닥을 통통 튀어 오르는 느낌이기도 했다. 바흐 플러스에서는 바흐의 키보드 협주곡 5번 f단조를 연주했는데 웅장하고 비장하게도 들리는 1악장과 달리 2악장은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콧망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났다.
총 120분 공연에서 그가 연주한 곡은 10분 내외로 짧아 다소 아쉬웠지만 앙코르곡(바흐 | 파르티타 1번 사라방드/ 브람스 | 발라드 2번)을 두 곡이나 들려주었고 반 클라이번 우승곡이기도 한 라피협 3번이나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연주와는 또 다른 치유와 위로의 힘도 보여주었다.
8.20 클래식 레볼루션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지휘를 맡은 KBS 교향악단과 함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한예종 선후배이기도 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아서인지 스승인 손민수 교수와 함께 한 '바흐 플러스'공연 때보다 한층 가벼운 표정이었다.
다만 12일 바흐 플러스 공연이 끝나자마자 그는 폴란드에서 열린 쇼팽 페스티벌 연주회에 참가하고 다시 입국해서인지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팔목을 잡는 모습도 괜스레 눈길이 갔다. 그럼에도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경쾌했고 화려했고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멘델스존은 유태인 금융 재벌 가문의 아들로 다방면의 예술적 재능을 가진 작곡가였고 이번에 임윤찬이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한눈에 반한 여성 피아니스트를 구애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율은 아름답고 피아니스트가 부릴 수 있는 기교의 극치가 과장되고 화려하게 그려진 곡이다.
임윤찬의 빠른 손놀림은 숨을 멎게 만들었고 고음부의 타건은 정신이 맑아지도록 또렷하고 경쾌했다. '바흐 플러스'에서는 경건하고 숭고한 느낌의 연주였다면 '클래식 레볼루션'에서는 본인이 가진 스타성을 한껏 뽐낸 연주였다.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끝나고 사람들은 그의 스타성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큰 환호성으로 그를 다시 불러냈다. 여러 차례 나와 관객의 박수에 화답했다. 임윤찬은 연주할 때와 달리, 커튼콜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가 보다.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공연 영상을 보았는데 커튼콜 인사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수줍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바흐 플러스 공연 때는 스승인 손민수 교수보다 자신이 더 환호받는 것을 매우 당황해하는 거 같아 커튼콜 때도 긴장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앙코르곡을 연주한 뒤 다시 인사를 하러 나온 임윤찬이 돌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로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노신사분이 갑자기 기립해 환호를 하셨던 것. 찐으로 감동을 받은 듯 한쪽 손을 가슴에 올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후 여러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임윤찬을 통해 클래식을 알게 되고 영상이나 음원이 아닌 실제 공연이 주는 감동을 알게 된 이후로 2번의 다른 클래식 공연을 포함해 8월에만 총 4번의 공연을 관람하고 느낀 사실. 우리나라 클래식 관객들은 대체로 젊다는 것.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리액션이 열정적이라는 것.
임윤찬 신드롬을 소개하는 언론매체에서는 여전히 임윤찬 피아니스트에게만 쏠린 팬심을 경계하며 한국 클래식은 여전히 불모지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공연을 보고 나서 느낀 내 생각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주 클래식 공연을 찾는구나' '관객 리액션 때문에 공연 볼 맛이 난다'이다.
사실 해외 공연 실황을 보면 희끗한 백발의 관객들이 많고 연주가 끝난 뒤 리액션도 박수가 다다. 나는 찐으로 감동받았는데 막상 함성이 없는 박수소리만 들으면 흥이 깨지기도 했는데, 내가 본 4번의 공연에서 우리 관객들의 반응은 열정적이었다. 단지 임윤찬 공연만이 아니었다. 임윤찬이 아닌 다른 공연에서도 관객의 호응은 열광적이었다.
물론 내가 사는 서울, 그리고 롯데콘서트홀 근처에 살고 있다는 지역적 메리트도 있겠지만, 다양한 국내 연주자들이 다양한 방식의 독창적인 기획으로 클래식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라는 말처럼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가진 클래식의 매력에서 당분간 헤어나오지 못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