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olescence: 소년의 시간

제이미는 왜 엄마가 아닌 아빠를 선택했을까

by 단상

영국 총리가 10대를 둔 가정이라면 교육용으로 반드시 보아야할 드라마라고 언급한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


모든 에피소드의 원테이크 촬영과 열세살 제이미의 소름끼치는 감정연기로 이미 입소문이 났고 글로벌 시청순위 1위까지 올랐던 화제작.


원제< Adolescence>는 10-19세 사이의 청소년기를 의미하는데 한마디로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뜻한다.


실제로 사춘기에 접어들면 이성적 사고와 자기조절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은 지연되고 성호르몬 증가와 편도체의 발달로 감정적으로 예민해지고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사춘기를 겪는 아이 자체를 나무랄 순 없다.


자연스런 신체 변화니까.


하지만 청소년의 비행이 그저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수위가 점점 난폭하고 위험해지고 있다.


사춘기가 범죄의 면죄부는 될 수 없다.


A child accused.

Everyone left. to an answer.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은 살인을 저지른 열 세 살 소년을 통해 학교의 부재, 왜곡된 남성성, sns를 통한 괴롭힘과 낙인 효과,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아이를 둔 부모의 자책과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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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열 세 살 제이미는 같은 학교 여학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새벽에 집을 쳐들어온 경찰에 의해 체포 연행된다. 제이미의 부모, 그리고 누나는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제이미가 곧 풀려날거라 확신했지만 살해하는 CCTV 영상이 존재해 결국 제이미는 소년범 신분으로 구속된다.


경찰은 제이미가 왜 살인을 했는지 그 동기를 추적하다 제이미가 학내 동급생들 사이에서 '인셀'로 놀림을 받고 있었고 죽은 여학생 케이티는 친구들만 알 수 있는 언어로 sns상에서 제이미를 괴롭혀왔음이 밝혀진다. 가해자로 지목된 제이미는 실제로는 sns 상 괴롭힘의 피해자이고, 괴롭힘의 가해자는 케이티였던 것이다.


인셀 Incel. Involuntary celibate(비자발적 순결주의자 또는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의 약자로 자신을 독신으로 간주하고 성적 활동을 하는 이에게 적대적인 사람을 일컫는 영미권 신조어로 주로 남성에게 쓰이며, 넷상에서는 주로 이성혐오 활동을 하는 남초커뮤니티 남성 이용자를 뜻하는 멸칭으로 사용된다.


재판부는 제이미의 나이를 고려해 감옥이 아닌 치료보호센터 (정신병원)으로 보낸 뒤 재판을 받게 한다.

강력한 증거영상이 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제이미의 아빠와 제이미는 범행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제이미의 범죄심리보고서 작성을 위해 투입된 임상심리학자 애리스턴이 제이미의 마음속 생각을 읽기 위해 상담을 진행한다. 몇 차례 면담을 통해 라포가 형성된 두 사람. 재판부에 제출해야하는 보고서 기한 마지막날을 앞두고 애리스턴은 제이미의 범행 동기와 범행 사실을 서서히 압박한다. 놀랍게도 제이미 역시 이 사실을 눈치채고 애리스턴의 질문을 교묘히 빠져나가며 오히려 애리스턴을 조롱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이미가 케이티를 죽이게 된 결정적 동기가 밝혀진다.

케이티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친구로부터 상반신 노출사진 요구를 받고 사진을 전송했고 이 남자친구는 이 사진을 학내 남자 아이들과 함께 돌려본다. 이 남자친구는 이러한 수법으로 다양한 여학생의 노출 사진을 받아 친구들끼리 공유해왔다. 이러한 피해 여학생들은 '걸레'라고 놀림을 당했고 케이티 역시 그 피해자 중 하나다. 제이미는 '걸레'라고 조롱받는 케이티가 '인셀'이라고 놀림받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병상련의 마음보다는 '인셀'이라는 낙인을 벗을 기회로 케이티에게 사귀자고 제안한다. 왜? 케이티의 약점을 자신이 알고 있으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케이티를 이성으로 좋아했던 것 아니다. 하지만 영원히 여자의 pick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어떻게든 풀고 싶었고 약점이 있는 케이티가 거래 대상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 것 뿐이다.

하지만 케이티는 화를 내며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걸레'인 케이티에게마저 pick을 받지 못하게 되자, 마치 케이티의 저주로 자신의 인셀 운명은 영원히 족쇄처럼 남아있을 것이라는 절망과 분노가 결국 케이트를 무자비하게 살해하게 만들었다.

애리스턴의 이러한 날카로운 질문에 제이미는 폭발했고 완벽하게 그 사실을 부정한다.

뭐든지 다 들어줄 거 같았던 상냥한 애리스턴을 순진한 말과 태도로 구워삶으면 자신에게 유리한 보고서를 써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제이미는 자신의 적나라한 살해동기가 애리스턴에 의해 밝혀지자 부끄러워하거나 참회하기는 커녕 케이티와 마찬가지로 ' 여자는 다 믿을 것이 못되는' 부류라는 사실을 깨닫고 애리스턴에게 강한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낸다.


한편 1년 넘게 재판이 이어지는동안 남아있는 가족은 열 세살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로 고통받는다. 일상적인 생활을 꿋꿋이 이어나가려하지만 이미 sns상에서 가족의 신상은 모두 공개되었고 대놓고 가족을 저격하는 일까지 생겨난다. 그럼에도 제이미의 아빠는 아들이 곧 풀려날 것이라고 믿는다. 이 믿음은 어쩌면 실제로 믿어서라기보다는 그렇지 않으면 이 삶을 도저히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빠의 생일날 제이미가 치료센터에서 걸어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아빠의 믿음은 깨지고 만다.

'죄를 인정하겠다'는 것. 그러면서 제이미는 아빠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걸까. 살인을 한 것이 미안하다는 걸까. 아니면 살인자가 되어서 미안하다는걸까.

아빠는 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살인자를 키운 부모임을 자각하고 통한의 눈물을 쏟아낸다.



제이미는 왜 엄마가 아닌 아빠를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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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서 제이미가 유치장에 갇힐 때 경찰은 미성년자의 경우 수감 절차시 보호자의 동석이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일반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큼 두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아이는 아빠보다는 엄마를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이미는 엄마가 아닌 아빠를 선택했다. 왜 아빠를 선택했을까... 내내 이 질문이 마음 속에 남았다.


제이미 아빠 에디는 어릴때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컸다. 자식에게만은 절대 손찌검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그렇게 키워왔지만 일에 바빴고 자식이 원하는 물건을 토달지 않고 사주는 것이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열 세살 제이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아내가 밤새 방 안에 쳐박혀 게임만 하는 제이미를 혼낼때 에디는 그저 아들이 방 안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제이미는 자신이 잘못할때 혼내는 엄마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를 속이기 더 쉽다고 생각했을까.

cctv 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 필요했던걸까.

남자란 자고로 스포츠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주말 축구교실에 참가했지만 저질체력으로 남들에게 조롱받는 아들의 모습을 외면하던 아빠에게 '나도 화나면 이런 폭력성이 있어!'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 인셀 #이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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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에서 임상심리학자 애리스턴과 제이미의 대화 장면을 두고 인셀의 여성혐오가 반영되었다고 하는 해석이 있다.

글쎄..나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 우아하고 나긋한 음성으로 우회적이지만 제이미의 살인 동기를 분석한 해석에 굴복하기 싫은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의 반항으로 보였다.

자신에게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와준 고맙고 친절한 선생님. 그러나 그 뒤에는 어떻게든 아이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게끔 만들려는 검은 속셈이 드러났다고 생각한 제이미가 선생님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그 분노를 억제하지못해 폭발하고 말았다.

물론 애리스턴이 제이미에게 지속적으로 남성성에 대해, 아버지에 대한 제이미의 생각을 집요하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제이미는 '청소년 범죄= 불우한 성장환경, 아버지의 영향'으로 결부시키는 단순화를 거부한다.


'가정이 불우해서 내게 폭력성이 생긴게 아니라구!! 이 바보야! 아직도 모르겠어? 케이티를 내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누군가의 손에 죽었을거라고! 그러니 내가 죽였든 누가 죽였든 상관없어. 대체 왜 나보고 케이티를 죽였다고 인정하라는 거야? 도대체 니가 무슨 자격으로?'

애리스턴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제이미의 속마음은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사춘기 딸 아이 방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낙서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


분노한 제이미가 나간 뒤 애리스턴에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는 장면에서 그때 나의 표정이 오버랩됐다.

여자애였으면 반항이고, 남자애가 그러면 여성혐오인가? 그건 아니잖아.


#편식 #교육이 사라진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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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스턴에 직접 싸온 샌드위치.

제이미를 고마워하며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물어본다.

'치즈와 피클 뿐이야.' '야채는 없어.'

-다행이네요. 하지만 먹어야할지 조금 고민해볼게요. 피클을 싫어해서요.


유치장에서 혈액샘플을 체취할때 아빠는 간호사에게 주의를 준다.

'우리 아이는 주사바늘 공포증이 있어요.'


과거와 달리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좋고 싫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편식을 고치기 위해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주사바늘 공포증 등으로 타인에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한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

하기 싫은 것을 강요받을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또 저항한다.

모든 아이가 어떤 환경에 있든 다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특성을 남을 위해 버리거나 참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괴로움은 온 우주의 괴로움이다. 나의 고통은 참기 힘들지만 남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

하기싫은 것도 공동체 속에서는 꼭 해야할 때가 있지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당위성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제대로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제이미의 학교를 보면 절망적이다.

교육은 부재하고 아이들은 개인화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매너는 사라졌다.

친구를 조롱하는 말을 그저 킬킬대는 농담처럼 여기고 선생은 그런 아이에게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지를 교육시키기보다 윽박지르고 입을 막는데 급급하다.

소중하고 특별한 아이에게 훈계는 하지마라. 그게 부모의 반응이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잘 알지 못하셔서 그러는데, 우리 아이가 그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부모의 컴플레인이 많아지면 선생은 그저 눈을 감고 회피하거나 순간 입을 막는 것으로 끝내버린다. 학교가 충족시켜주지못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아이들은 온라인에서 소비한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해서 고르다보니 가치관은 왜곡되어 개인주의는 더 강화될 수 밖에 없다.


#제이미 아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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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아들이 살인혐의를 인정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오열한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제 아들의 범죄를 맞이해야할 시간이 왔다.

자신은 살인자 아들을 둔 아버지다.

'나는 그저 어릴 적 나의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아 열심히 일했고 제이미를 때리지도 않았어. 사달라는 게임기를 군말없이 사주고 가끔은 아들방에서 함께 게임도 했지. 이정도면 좋은 아빠 아닌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아내가 말한다.

'그래도 그 아이가 방문을 닫고 있을 때 한번쯤 들어가봐야했어. 그건 우리 잘못이야. 그걸 인정해야해.'


아이의 사춘기적 특성은 이해하되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부모가 들여다봐야한다. 아이의 개별적 특성은 인정해주면서도 사회적 윤리와 공동체 의식을 길러주는 것 학교가 제 역할을 할 때까지 비난만 하지말고 자기 아이부터 부모가 관심을 가져야한다.


<소년의 시간>이 끝나고 나에게 건넨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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