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없는 영화 시나리오작가가 포기하지 않는 법

1. 시나리오 작가

by 정권영

꿈이 시나리오 작가는 아니었다. 나도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에 간 거였다. 연출전공으로 들어온 동기들 다 처음에는 영화감독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3학년 정도 되면 달라진다. 특정 기술에서 두각을 보이는 친구들은 촬영, 조명, 사운드, 편집 등의 기술직으로 빠지고, 돈 좋아하고 입 털어서 남 속여먹기 잘하는 놈들은 프로듀싱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결국 죽기 전에 짱질 한 번 제대로 해봐야겠다 하는 녀석들이 연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종합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질 종합지옥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진다. 아, 연출전공인데도 연기전공 못지않게 혹은 더 잘생기고 이쁘거나 유난히 연기력이 뛰어난 애들은 배우가 되기도 한다.


그럼 시나리오작가는?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시나리오작가는 '시나리오만 쓰면서 먹고 사는 작가'를 말한다. 다시 돌아와서, 시나리오작가는 누가 하냐? 영화감독은 하고 싶었는데 현장 싫어하고 기계 싫어하고 갈등 싫어하는 인간들이 시나리오작가가 된다. "나는 시나리오작가가 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들어왔습니다!"라며 자기소개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현장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컴퓨터와 카메라는 물론 '한글' 외에 그 어떤 소프트웨어도 다루고 싶지 않고, 조직을 싫어해서 아주 자연히 시나리오작가가 되었다.


나는 이 직업을 사랑한다. 합법적으로 영화를 많이 볼 수 있고, 출퇴근을 안해도 되고, 적지만 돈도 벌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 장점이 이 세 가지 말고 없다는 것이다. 시나리오작가라는 직업에 좋은 호기심을 품고 있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정말 장점이 이 세 가지밖에 없다. 그래도 낙담하실 필요도 없다. 단점도 세 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길어서 문제지.


하나, 업계에서 쩌리 취급 받는다.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께 한 가지만 물어보겠다. 영화를 하나 만들 때, 그 안에서 돈을 가장 많이 받아야하는 직종이 뭐라고 생각하나? 제작자 제외하고, '고용'을 당하는 직종중에서. 설마 배우일까, 감독일까 고민하고 있진 않겠지? 답이 단호하게 나와야 하는 질문이다. 시나리오작가다. 왜냐고? 잡(JOB)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제작자든, 감독이든, 배우든, 스텝이든 시나리오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위상으로 따지면 당연히 시나리오작가가 돈을 가장 많이 가져가야 한다. 근데 돈을 제일 못 벌뿐 아니라 돈도 제일 못 받는다. 이걸 영화업계가 모를까? 제작자가 모르고, 감독이 모르고, 배우가 모를까? 다 알고 있다. 시나리오작가의 역할이 우리가 이해하는 상식대로 존중된다면 본인들이 가져가야 할 파이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나리오작가들이 내려치기를 당하는 것이다. 근데 또 내려치기 당하는 근거도 아주 상식적이다. 시나리오는 감독도 쓴다는 거, 그리고 일하는 과정이 눈에 안보이고 글만 쓰고 빠진다는 거. 한국은 영화감독이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는 비율이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시나리오작가는 시나리오만 쓰는데 감독은 시나리오도 쓰고 현장까지 나가니까 당연히 작가가 감독보다 적게 벌어야 한다는 '천연 가스라이팅'은 피할 길이 없다. 그리고 메이킹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스텝과 배우들에게도 소외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집 지은 사람보다 지어놓은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돈과 명예를 다가져가는 구조다. 이보다 정확한 비유가 있을까?


둘, 집 안팎에서 괄시받는다. 앞서 언급한 단점은 일종의 헤게모니라서 박찬욱 감독님의 최신작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다. "그래, 영화 망하면 사람들이 감독이랑 배우탓하지 시나리오 작가탓은 안하잖아!"라며 위안을 삼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데 무시를 당하고 산다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다. 기성작가도 그런데 나처럼 무명이나 크레딧이 없는 신인작가 어떻겠나. 누가 어떤 영화 썼냐고 물어보는데 대답 못하면 그냥 백수 한량으로 찍히는 거다. 더 나아가 나처럼 못생긴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백배는 더 못생겨보이는 너프 효과까지 경험하게 된다. 집에서는? 돈을 못 벌고, 결혼을 못 하고, 끝내는 나이값을 못하게 되니 가족으로부터 증오와 멸시를 당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여기서 오는 억울함과 죄책감은 이루말할 수 없다. 그래서 시나리오작가들이 우울증으로 병원에 간다. 정신과는 병원비도 비싼데 말이다.


셋, 품위 유지가 안된다. 유명해지기 전까진 푼돈밖에 못 받거나 고료가 체불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나가서 사람 만날 돈이 없으니 밖에 안나가게 된다. 세상에 나가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데 골방에서 글만 쓰니 데뷔는 늦어진다. 데뷔만 늦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사회성이 떨어지면서 말은 어눌해지고 행동은 어설퍼진다.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니 일과 연애의 난이도가 대폭 상승한다. 그냥 악순환이다. 옘병 씹창 나락이다.


단점만 보면 진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작가는 열등감을 먹고 사는 괴물이라는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괴물이 되야 유지 가능한 직업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재능 없는 시나리오작가인 내가 포기하지 않은 법 한 가지가 나온다. 건강한 체념이다.


영화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혼자 일하는 거 좋아하는 나는 애초에 작가가 될 운명이던 것이다. 업계에서의 처우와 무명 시절에 타인에게서 받는 마음의 상처는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분노하고 뒤집어 엎을 생각은 안하냐고. 그런 생각 안한다. 부러지는 것보단 흔들리는 게 낫고, 정신병원에 실려가는 것보단 적당한 기간 동안 통원치료를 하는 게 낫다. 작은 영화로 데뷔하는 데 걸린 10년 동안 나는 수없이 흔들렸고, 알콜중독과 우울증으로 1년 반 동안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그러나 포기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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