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끼익」
문이 열립니다. 무언가 바닥에서 뛰어올라 저만큼 뒤에 있는 의자 위로 떨어집니다. 문이 닫히고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와 의자에 앉았습니다.
「풀썩」
의자 위로 떨어졌던 무언가가 다시 바닥을 구릅니다. 하지만 하나도 아프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는 빨간색 보풀이니까요. 보풀은 종이나 헝겊에서 부풀어 일어나는 몹시 가는 털이 뭉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무척 가볍기 때문에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휴우~.”
바로 지금처럼 누군가 한숨을 쉴 때도 말입니다.
빨간 보풀은 데굴데굴 어두운 옷장 밑 구석으로 굴러 갑니다. 다들 누군가에 한숨에 날아온 걸까요? 옷장 밑에는 다른 보풀들이나 머리카락 뭉치, 작은 구슬 같은 친구들이 잔뜩 먼지화장을 하고 모여 있습니다. 빨간 보풀은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안녕, 친구들아?”
아무도 대꾸하지 않습니다. 그저 눅눅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습니다. 보풀은 다시 한 번 제 소개를 했습니다.
“흠흠. 친구들아, 안녕? 난 빨간 보풀이라고 해.”
여전히 아무도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몇몇 보풀들이 감았던 눈을 뜨고 빨간 보풀 쪽을 쳐다보긴 했지만 졸린 듯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빨간 보풀은 기운이 빠집니다.
“오늘은 내가 보풀이 된 즐거운 생일날인데….”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안쪽 구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빨간 보풀은 반가운 마음이 들어 얼른 고개를 돌려 인사했습니다.
“누구야? 어느 쪽이니?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
“이쪽이야, 이쪽.”
빨간 보풀은 폴폴 먼지를 날리며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말을 걸어준 것은 잔뜩 먼지를 묻히고 있는 오백 원짜리 동전입니다.
“동전아, 말 걸어줘서 고마워.”
“바보 같은 말 때문에 신경이 쓰였을 뿐이야.”
“바보 같은 말이라니?”
“네 생일인데 우리가 왜 즐겁니? 생일이 뭐 특별히 대단한 것도 아니고….”
“아니야, 생일은 굉장히 즐겁고 좋은 날이야! 오늘이 세 번째로 태어난 생일인데 생일은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웠어!”
“그게 말이 되니? 생일이 어떻게 세 번이나 있을 수 있어?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이 아니야! 내 처음 생일은 빨간 털실로 태어난 날이야.”
“털실?”
“응. 털실 가게에 다른 털실들과 함께 진열되었었어. 그때는 주변에 나같이 금방 태어난 실들이 무척 많았어. 다들 태어났다는 흥분에 반짝반짝했었지. 사람들이 날 볼 때마다 ‘너무 예쁜 빨간색이야’라며 감탄을 했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넌 모를 거야.”
“그럼 두 번째 생일은 언제였니?”
“두 번째 생일은 내가 목도리가 된 날이야.”
“목도리?”
“응,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가게에서 나와 내 친구들을 사가셨어. 그리고 기다란 바늘로 우리를 한 코, 한 코 떠주셨지. 작게 노래도 불러주셨던 것 같아. 노래를 듣고 있으면 너무 졸려져서 끝까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 헤헤.”
얘기를 하던 빨간 보풀은 신이 나는지 제자리에서 폴폴 거립니다.
“그만 둬, 먼지가 나잖아!”
동전 옆에 있던 머리카락 뭉치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간 보풀은 갑자기 난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바로 사과를 했습니다.
“앗, 미안해. 얘기하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혼자 들떠가지고…. 그 수다도 그만두지 그래. 너 때문에 쉴 수가 없잖아!”
“미안해….”
“머리카락 뭉치, 넌 매일 쉬기만 하면서 조금만 참아 줄 수도 있잖아. 꼭 그렇게 화를 내야겠어?”
동전이 얼른 끼어들어 빨간 보풀의 편을 들었습니다.
“맞아, 난 지금 저 빨간색 보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뒤편에 있던 작은 구슬도 빨간 보풀의 편을 들어줍니다. 언제부터 얘기를 듣고 있던 걸까요?
“우리들도 더 듣고 싶어”
어느새 부터인지 주변에 눈을 감고 있던 다른 보풀들도 다들 눈을 뜨고 머리카락 뭉치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