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가오다
멧매네 집 창가 너머로 비가 옵니다. 며칠째 내린 비 때문에 벌써 한참이나 나가 놀지 못해 심심한 멧매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만 쉽니다.
“아, 심심해….”
멧매네 집안은 아주 조용합니다. 엄마는 며칠 전에 먹을 것을 구하러 숲 밖으로 가신 뒤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찾으러 매일 외출하십니다. 멧매네 숲에는 멧매또래의 멧돼지 친구가 없습니다. 다들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사라지거나 더 깊은 숲으로 이사 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톡, 토독, 톡, 토도독]
누군가 멧매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누구세요? 아빠야?”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날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멧매는 창문으로 내다봤지만 문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톡, 토독, 톡, 토도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 납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개미 친구가 문을 두드리는 지도 모릅니다. 멧매는 문을 열었습니다.
“안녕? 멧매!”
“멧매, 안녕? 같이 놀자!”
멧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멧매는 누가 자기를 부르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누구니?”
“우리는 빗방울이야! 멧매 같이 놀자!”
문을 두드린 것은 멧매에게 놀자고 조르는 빗방울 친구들이었습니다.
“좋아. 잠깐 준비하고 나올 게.”
엄마는 멧매에게 비 오는 날 외출하는 법에 대해 늘 말씀하셨습니다.
“멧매야, 비 오는 날에 나가 놀고 싶으면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우산을 써야 한다.”
멧매는 엄마의 말을 생각하며 연두색 나뭇잎 우비를 입고, 노란색 호박꽃 장화를 신고, 초록색 토란대 우산을 썼습니다. 모두 멧매의 아빠가 만들어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자, 준비 끝!”
멧매가 문 밖을 나섰습니다. 오랜만에 나온 바깥은 습기로 가득했습니다. 멧매는 놀고 싶어 온 몸이 근질거렸습니다.
“멧매, 그동안 세수 안 했니? 얼굴이 꾀죄죄해.”
“어, 그래? 그러고 보니 오래 되긴 했네….”
멧매를 둘러싼 빗방울들이 얘기합니다.
“그럼, 우리랑 놀다 보면 세수가 저절로 될 걸?”
“그래. 재미있을 거야. 난 머리도 감겨줄게!”
“좋아! 근데 난 어떻게 하면 되니?”
“흐음. 일단 그 우산 좀 내려놔봐.”
“어, 우산을? 엄마가 비 오는 날에는 꼭 우산을 챙기라고 하셨는데….”
“하지만 네가 우산을 쓰고 있으면 우리가 너랑 같이 놀 수가 없잖아.”
“그래, 누가 보지도 않는데 우산은 옆에 놔두고 우리랑 놀자, 응? 멧매야~.”
멧매는 잠깐 고민하다가 우산을 옆에 놔두고 빗방울들에게 말합니다.
“좋아! 알았어. 진짜 재미있게 놀아줘야 해, 알았지?”
“그~럼!”
멧매는 우산도 없이 빗방울 속을 뛰어 다닙니다. 내리는 빗방울로 시원하게 세수한 후에도 빗방울들은 계속해서 멧매 위를 구르며 멧매를 간질이기도 하고 옷 속으로 들어가 멧매를 깜짝 놀라게도 하면서 재미있게 놉니다.
“하하하, 너희들과 노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 에취!”
멧매는 갑자기 재채기를 합니다. 몸이 약간 차가워졌습니다. 비를 맞고 놀다온 날이면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멧매야, 비 맞으면서 놀았니? 감기 걸리겠다. 이리와, 빨리 따뜻한 물에 씻자.”
엄마가 안아주던 따뜻한 품이 그리웠습니다.
“엣취, 너희들과는 이제 그만 놀래. 너무 몸이 차가워.”
“얼마나 놀았다고 벌써 가니? 더 같이 놀자!”
“엣취, 아니야. 엣취. 나는 그만 놀고 싶어.”
“멧매야~. 멧매야~.”
멧매에게 빗방울들이 달려듭니다. 멧매는 빗방울을 피해 우산도 미처 챙기기 못하고 숲 안으로 달렸습니다.
“헉, 헉. 여기까지 오진 못하겠지?”
한참을 달린 멧매가 도착한 곳은 넓은 풀밭이었습니다. 거세게 달려들던 빗방울들도 조금씩 안개로 변해 얌전해졌습니다.
“안녀엉, 멧매야아?”
누군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멧매를 부릅니다.
“누구니?”
“발 밑으을 보려엄.”
고개를 숙여보니 멧매에 발 아래서 풀들이 부르고 있었습니다.
“너어 지그음 너무우 추워 보인다아.”
“응, 좀 추운 거 같아.”
“우리가아 안아줄게에.”
풀들은 계속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멧매에게 얘기합니다.
“우리가아 이 풀잎들로오 너르을 부드럽게에 감싸줄게에.”
풀들이 싱그러운 풀잎들을 멧매쪽으로 활짝 펼쳤습니다. 무척 부드러워 보이는 풀잎들이 멧매를 안아주려고 기다립니다. 멧매는 풀들이 멧매를 안아주는 상상을 했습니다. 엄마의 품 만큼 따뜻하진 않아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습니다.
“좋아, 나 좀 안아줘.”
“잠까안.”
멧매가 몸을 누이려고 할 때 풀들이 멧매를 불렀습니다.
“왜 불렀니?”
“장화느은 벗고오 누우려엄. 우리느은 장화가아 싫어어. 매이일 우리르을 밟고오 지나간다안 말이야아.”
“엄마가 비 오는 날에는 장화를 꼭 신고 다니라고 하셨는데….”
“그러엄 우리인 너얼 안아주지이 않으을 거야아.”
“아, 알았어! 금방 벗을게.”
멧매는 장화를 벗고 풀밭에 누었습니다. 풀잎들은 부드럽고 상상한 대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