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매의 외출

2. 무지개

by 장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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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애? 좋니이?”

풀들이 속삭이며 멧매에게 묻습니다. 그때 풀잎 하나가 멧매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에에에엣취!”

“괜찮니이? 멧매야아?”

풀들이 호들갑을 떨며 멧매에게 속삭입니다. 멧매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풀들이 속삭일 때마다 풀잎들이 누워있는 멧매의 콧구멍과 귀와 눈과 목을 마구 찔렸습니다. 멧매는 풀밭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난 가야겠어!”

“왜애 가지마아.”

이번에는 풀잎들이 장화를 신지 않은 멧매의 맨발을 간질입니다.

“안녕, 잘 있어!”

멧매는 장화를 챙길 틈도 없이 얼른 풀밭을 빠져나왔습니다. 비는 아직도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지만 우비에 달린 모자를 쓰니 우산이 없어도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장화를 벗은 발은 따끔따끔 거렸습니다.

“앗, 따가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풀밭에 가면 간지러우니까. 장화를 가져올 순 없겠어.”

멧매가 물웅덩이 근처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발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주변을 빙빙 돌며 발을 굴러 봤습니다. 조금 끈적거리긴 했지만 어떤 곳을 밟아도 발은 아프지 않았습니다.

“아, 기분 좋다!”

“정말 부드럽지?”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발밑을 내려 보니 진흙 속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개구리가 보였습니다.

“개구리야, 너 지금 뭐하니?”

“진흙찜질 하고 있지.”

“진흙찜질?”

“부드러운 진흙에 푹 잠겨 있는 거야. 너도 그 우비를 벗고 누워보지 그래?”

멧매는 잠시 망설여졌습니다.

“엄마가 비 오는 날에 꼭 입고 다니라고 하셨는데….”

“이봐, 진흙찜질은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거야. 우비를 입고 어떻게 피부를 촉촉하게 해?”

“그런가?”

멧매는 우비를 벗고 진흙 위에 누웠습니다.

“와아, 정말 부드럽고 매끈매끈하다!”

“어때? 근사한 기분이지?”

“응, 굉장히 좋은데?”

“자, 날 따라 해봐. 그러면 기분이 더 좋아질 거야.”

개구리는 진흙 위를 뒹굴기도 하고 폴짝거리기도 하며 멧매 앞에서 뽐을 냅니다.

“와, 재미있겠다. 나도 한 번 해볼래!”

구경하던 멧매도 몸을 굴려 진흙 위를 뒹굽니다.

[철-벅]

진흙 위를 구르던 멧매의 얼굴이 진흙탕 한복판에 빠졌습니다.

“에퉤퉤. 이게 뭐야!”

멧매는 얼굴에 붙은 진흙을 떼어내려고 앞발로 얼굴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앞발에 붙어있던 진흙이 다시 얼굴에 묻어 얼굴은 점점 지저분해졌습니다. 다른 쪽 발로도 닦아봤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멧매는 얼굴을 닦으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하지만 미끈거리는 진흙더미를 밟고 또 한 번 넘어집니다.

[철-벅]

멧매의 얼굴은 다시 진흙투성이가 됐습니다.

“에퉤퉤퉤! 진흙 때문에 앞이 안 보여.”

“멧매, 너 지금 뭐해? 진흙찜질 안 할 거야?”

“응, 나 이제 그만 할 거야!”

“그래? 알았어.”

개구리는 진흙 속에 다시 잠겼습니다. 겨우 진흙탕 밖으로 나온 멧매는 눈에 붙어있는 진흙이라도 먼저 닦아내 보려고 비벼댔습니다. 하지만 앞발에 묻은 진흙 때문에 겨우 실눈을 뜰 수 있는 정도가 다였습니다. 벗어놓은 우비도 챙겨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어떡하지?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집에도 못 돌아가겠어!”

멧매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습니다. 자꾸 빙빙 돌기만 하니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아, 어지러워. 으악! 엄마야!”

휘청거리던 멧매는 어딘가에 발이 빠지며 미끄러졌습니다.

“멧매야!”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엄마 목소린데?”

“멧매야, 엄마야. 너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니?”

“엄마~.”

멧매는 엄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가 엄마에게 안겼습니다. 며칠 만에 맡는 엄마 냄새는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멧매는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멧매, 왜 울어. 어디 얼굴 좀 보자.”

“나 눈에 진흙 때문에… 어? 보인다!”

멧매의 눈물 때문에 눈에 붙은 진흙이 녹아서 멧매는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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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눈이 보여!!”

“당연히 보이지. 어휴, 너 꼴이 왜 이래. 우리 잘생긴 멧매 얼굴이 엉망이네. 비 오는 날은 우비도 입고, 장화도 신고, 우산도 쓰고 다니라고 했잖아.”

“처음에 집에서 나올 때는 엄마 말대로 우비도 입고, 장화도 신고, 우산도 쓰고 나왔어, 그런데….”

멧매는 빗방울이 문을 두드렸을 때부터 있던 일에 대해 엄마에게 얘기했습니다. 엄마는 멧매의 이야기를 들으며 ‘후후’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 여긴 어디야? 왜 집에 안 와?”

“먹이 구하러 나왔다가 사람들이 파 놓은 구멍에 빠졌어. 엄마 힘으로는 이 구덩이를 나갈 수 없었단다.”

“그럼 이제 엄마랑 나랑 둘 다 못 나가는 거예요? 어쩌지?”

“그런데 멧매, 넌 어떻게 여기 들어왔니? 엄마가 빠졌던 구멍은 바로 이 위쪽인데….”

“난 어지러워서 빙빙 돌다가 미끄러졌어요. 저쪽에서….”

멧매의 엄마는 멧매가 떨어진 곳을 보았습니다. 오래 내린 비 때문에 약해진 탓인지 바닥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멧매야! 나갈 수 있겠다. 네가 미끄러진 곳에 돌들로 계단이 생겼어!”

“와아~ 진짜요? 엄마, 집으로 얼른 가요!”

“그래, 멧매야!”

조금 뒤 멧매와 엄마는 구덩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멧매는 엄마와 나란히 걸으며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근데 엄마, 아빠는 못 만났어? 아빠가 엄마 찾으러 매일 나갔는데….”

“글쎄, 여기가 너무 찾기 힘든 곳에 있어서 못 찾은 게 아닐까? 비가 와서 냄새도 다 없어지고….”

“여보, 멧매야!”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엄마와 멧매는 깜짝 놀라서 아빠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빠,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러게 여보. 어떻게 알았어요?”

아빠는 나와 엄마에게 코를 비비며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계속 오니까 멧매도 걱정되고 해서 집에 들렀는데 멧매가 없잖아, 찾으러 나와 보니 우산이 떨어져 있고, 조금 더 가니 장화가 떨어져있고…. 이렇게 하나씩 떨어져 있어서 따라온 거야. 당신은 어디 있었어?”

“구덩이에 빠져서 나올 수가 없었어요.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멧매가 와서 구해줬어요. 고마워, 멧매.”

엄마가 멧매를 향해 싱긋 웃었어요.

“엄마를 만나게 돼서 다행이에요. 무사해줘서 고마워요, 엄마!”

그런 엄마와 멧매를 바라보던 아빠가 멧매에게 물었어요.

“멧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온 거니?”

“그건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엄마, 아빠, 빨리 집으로 가요!”

멧매는 아빠와 엄마 사이로 나란히 걸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새 도착한 멧매네 집에는 창가 너머로 예쁜 무지개가 걸려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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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매의 외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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