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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키바 문정엽 Oct 18. 2019

#001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을까

호모 애스쿠스_질문하는 인간_프롤로그

"저, 질문 있어요!"거의 모든 사람이 어린 시절에는 이 말을 자주 했습니다. 하늘이 왜 푸른지, 밤하늘의 별은 왜 밝게 빛나는지가 궁금했으니까요.
질문은 호기심을 가진, 생각하며 살아가는, 성장을 원하는 인간에게 내재된 삶의 태도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삶, 그리고 세계를 질문합니다. 질문을 통해 인간은 이해하고 방향을 정하고 선택하며, 행위하고 경험합니다. 즉, 인간은 질문하는 인간입니다. 호모 애스쿠스(Homo Askus)!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질문을 잃어버립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실용적 필요가 모든 것에 앞서기 때문이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어디에 살까?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삶의 영역이 정해지면서 변화보다는 안락함을 추구하는 탓이기도 합니다. 실용성을 넘어서는 질문은 점차 삶의 도구함에서 사라집니다. 삶의 경이로움과 가능성, 미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필요가 아니라 확실한 앎을 얻기 위해,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해결하는 발견을 위해, 삶의 의미와 나를 넘어서는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질문을 합니다.   
저는 가능한 한 넓고 깊게 다양한 차원에서 삶을 경험하는 과정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곧 충만한 삶 말이지요. 이를 위해 인간은 질문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왜 우주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일까?"를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은 우주가 작용하는 법칙에 대한 기존 설명을 뛰어넘는 가장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법칙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충만한 삶을 위해 인간으로서 물어야 하는 질문을 찾아봅니다. 질문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이끄는 힘이기 때문이죠.


'호모 애스쿠스, 질문하는 인간' 첫 번째, 프롤로그입니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을까?  


당신이 왜 지금 이 곳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이 만나는 사람, 당신이 하고 있는 일과 직장, 당신이 성취하고 이룩한 것들…… 마음에 드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진 나의 삶......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삶을 이끌어 간 '무엇'을 찾는 질문입니다. 곧 당신 인생의 여정을 이끈 원천을 묻는 질문입니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일까?


삶은 선택의 여정이다.

삶은 선택이 이어지는 여정입니다. 상황은 우연이기도하고 필연이기도 하지만, 선택은 내가 했습니다. 선택에 따라 내가 살아가는 영역이 만들어졌고, 성취, 기쁨과 만족 혹은 슬픔과 불만족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진짜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요?


무엇이 선택을 이끄는가

선택을 이끈 것은 욕망입니다. 인간의 선택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욕망입니다. 욕망이란 무엇인가를 하고 싶고, 얻고 싶고, 누리고 싶다는 동기이자 행동을 이끄는 힘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볼까요? 같은 욕망이 같은 인생의 여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성공을 생각해 보죠. 어떤 사람은 부를, 어떤 사람은 명예를, 또 어떤 사람은 예술에 헌신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봉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왜 이렇게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요?

욕망을 선택으로 이끄는 다른 원천이 있습니다. 욕망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욕망. 육체적 욕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합니다. 욕망의 대상도 비슷합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위험하면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정신적 욕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직 인간만이 가진 욕망이기도 하죠. 개성, 자기실현, 삶의 충만함에 대한 욕망입니다. 정신적 욕망을 실현하는 대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욕망을 실현하는 대상이 바로 찾아지지 않습니다. 행복이 대표적이죠.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행복이 무엇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무엇이 행복인가?'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복을 얻기 위한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은 사람마다 다른 삶을 만들게 됩니다. 바로 질문이 욕망을 선택으로 이끕니다. 질문이 선택을 만들고, 그 선택이 삶을 직조합니다.  


"인간에게 최선의 삶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는 성찰하는 삶을 온몸으로 살아간 현자입니다. 그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인간에게 최선의 삶은 무엇일까?'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자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세계는 물 불 흙 공기의 4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말하거나, "아니다,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에 주목했습니다. 인간에게 최선의 삶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아테네의 광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지금 보고 있고 지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삶의 진리를 찾으라고 외치는 삶을 걸어가게 했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의 길을 열었습니다.


"왜 인간과 세상이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찰스 다윈은 이 질문을 했습니다. 다윈의 질문은 놀라운 질문입니다. 그는 인간과 세계의 기원을 질문했습니다. 19세기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세상은 창조주가 만들었다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당시에는 진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인간은 위대한 신이 위대하게 만든 존재로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윈은 이 믿음을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정직한 질문을 통한 탐구 끝에 진화론을 주장합니다. 진화론은 인간이 이런 존재로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어떤 위대한 이유도 없다. 이것은 우연이다, 우연이 모인 자연의 선택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이 제시한 인간의 기원은 진실로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라는 생각은 창조주가 인간 존재의 근원과 의미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다윈은 인간이 존재하는 된 것에는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합니다. 유일한 신이 만든 위대한 존재인 인간! 이것은 인간의 자부심, 삶의 의미, 그리고 목적이었습니다.  진화론은 이 모든 생각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무너짐은 새로운 인식을 엽니다. 신을 잃어버린 인간은 이제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야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진화론이 진정으로 놀라운 사상인 이유입니다. 더 이상 신에게 인간의 삶을 돌릴 이유는 없습니다. 인간은 신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계는 어떻게 가능할까?"
오늘날의 세계는 자유와 평등, 평화로 향하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는 자동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차별과 대립, 갈등과 싸움, 희생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인도가 아직 영국의 식민지로 지배를 받던 20세기 초에 마하트마 간디는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인간이 서로를 돕고 평화로운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간디의 답은 비폭력 평화의 정신을 전달하고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부유한 변호사로 안락한 삶을 살던 간디는 인도 독립과 세계평화를 위한 운동에 투신합니다. 평화로운 세계, 호혜의 세계에 대한 꿈을 인류에게 나눠줬습니다.


질문이 선택을 이끈다

인간은 선택을 통해 삶의 테라피스트를 만들어 갑니다. 이때 질문은 인간의 선택을 이끄는 원천이 됩니다. 모든 인간의 삶 속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탁월한 삶 속에는 탁월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반면 불행한 삶 속에는 질문이 없거나 잘못된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은 저마다 삶의 단계에서 질문, 그것도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질문하지 않는 삶

아마도 당신도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었을 텐데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저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상하면서도 재미있었죠. 그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앨리스가 낯선 곳에 떨어졌는데요, 그곳에 길을 안내하는 많은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앨리스는 어느 표지판을 따라가야 할지를 모른 채 헤맵니다. 그때 재밌게 생긴 고양이, 체셔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화면 캡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월트 디즈니) 화면 캡처
엘리스가 물었습니다."여기서 나가는 길 좀 알려줄래?"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갖고 싶은 가에 달렸지."
앨리스가 다시 말합니다. "어디든 상관이 없는데, 나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이 없어."
고양이가 대답하죠."어딘가 도착하기만 한다면야, 그럼 넌 분명히 어디든 도착하게 되어 있어, 오래 걷다 보면 말이야."

앨리스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지?", "어디로 가야 할까?"를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디로든 가지 못하죠. 삶에 대해 질문이 없다면 진심으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질문이 인생에 필요한 이유


질문은 주의할 대상을 정해준다

질문이 삶의 원천이라는 것을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질문은 주의할 대상을 정해줍니다. 질문 속에는 발견할 무엇이 있습니다.'내가 얼마나 많이 가져야 할까'라고 질문한다면 소유에 집중하게 됩니다.'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라고 질문한다면 인간됨에 주목하게 됩니다. "내가 남겨야 할 유산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한다면 타인과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하게 됩니다.


질문은 생각을 이끈다

두 번째로 질문은 생각을 이끌어 갑니다. 좁은 질문은 좁은 생각으로, 넓은 질문은 넓은 생각으로 이끌어 갑니다. 과거를 묻는 질문은 성찰로 생각을 이끌고 미래를 믿는 질문은 상상으로 이어집니다.  근원을 믿는 질문은 본질로 생각을 이끌고 결과를 묻는 질문은 목표로 생각을 이끌어 갑니다. 질문하는 것은 세상과 마주하는 방법과 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왜 이렇게 우주가 아름다운가?"를 질문했습니다. 뉴턴이 수백 년간 떠받힌 근대 물리학을 바꾼 혁명이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주가 작용하는 법칙에 대한 기존의 설명을 뛰어넘는 가장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법칙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은 넓고 깊고 새롭게 됩니다. 그리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을 이끕니다.


질문은 미래의 삶을 이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의 비밀입니다. 질문이 인생을 이끌어 온 것처럼 앞으로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죠.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 간 사람들은 올바른 질문을 찾고 질문에 따라 삶을 선택했습니다.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질문을 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인생 여정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올바른 질문을 하지 않았거나 잘못된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인이 되려면 가장 먼저 올바른 질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올바른 질문을 한다


호모 애스쿠스!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삶에 대해, 타인에 대해, 세계에 대해 늘 질문합니다. 질문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의 여정을 발견하거나 가꾸지 못합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선택을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올바른 질문을 하십시오. 당신은 주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고유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은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이끄는 나의 질문을 찾는 것입니다.

<호모 애스쿠스>에서는 그 질문을 찾으려고 합니다. 프롤로그에서 첫 번째로 당신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내 인생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질문은 무엇일까?"

바로 지금 찾아보기 바랍니다.


다음 글:

호모 애스쿠스 #002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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