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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키바 문정엽 Dec 09. 2019

#007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호모 애스쿠스_질문하는 인간_일곱 번째

"저, 질문 있어요!"거의 모든 사람이 어린 시절에는 이 말을 자주 했습니다. 하늘이 왜 푸른지, 밤하늘의 별은 왜 밝게 빛나는지가 궁금했으니까요.
질문은 호기심을 가진, 생각하며 살아가는, 성장을 원하는 인간에게 내재된 삶의 태도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삶, 그리고 세계를 질문합니다. 질문을 통해 인간은 이해하고 방향을 정하고 선택하며, 행위하고 경험합니다. 즉, 인간은 질문하는 인간입니다. 호모 애스 쿠스(Homo Askus)!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질문을 잃어버립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실용적 필요가 모든 것에 앞서기 때문이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어디에 살까?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삶의 영역이 정해지면서 변화보다는 안락함을 추구하는 탓이기도 합니다. 실용성을 넘어서는 질문은 점차 삶의 도구함에서 사라집니다. 삶의 경이로움과 가능성, 미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필요가 아니라 확실한 앎을 얻기 위해,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해결하는 발견을 위해, 삶의 의미와 나를 넘어서는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질문을 합니다.   
저는 가능한 한 넓고 깊게 다양한 차원에서 삶을 경험하는 과정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곧 충만한 삶 말이지요. 이를 위해 인간은 질문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왜 우주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일까?"를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은 우주가 작용하는 법칙에 대한 기존 설명을 뛰어넘는 가장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법칙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충만한 삶을 위해 인간으로서 물어야 하는 질문을 찾아봅니다. 질문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이끄는 힘이기 때문이죠.

호모 애스쿠스 질문하는 인간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나는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할 것인가?'


삶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만일 죽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답은 진실이 아닙니다.

죽음이 삶의 끝, 종말이기는 하지만요.

왜냐고요?

생명체인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연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에는 마지막 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마지막 날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가요?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야기


인류의 디지털 라이프를 이끌어 가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1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 정신의 탁월함을 보여준 그는 췌장암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어느 날 병실에서 잡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잡스가 병실에서 한 이야기>
나는 비즈니스계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다. 타인의 눈에 내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 병들어 누워 과거의 삶을 회상하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자부심에 빛나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죽음 앞에서는 희미해지고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나는 어둠 속에서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삶을 이어나갈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차를 운전해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돈을 벌어줄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신 아파해 줄 사람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잃어버린 물건은 되찾을 수 있지만 ‘삶’은 한번 잃어버리면 절대 되찾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삶의 어느 순간에 있던,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삶이라는 연극의 커튼이 내려오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가족 간의 사람을 소중히 여겨라. 배우자를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하라.
너 자신을 배려하라, 타인과 더불어 (스티브 잡스, 전 애플사 CEO)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나는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바로 지금 당신이 원하는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질문의 의미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나는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할 것인가?",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 하고 있는 일은 분명히 당신이 선택한 길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선택은 당신이 꿈과 열망을 온전하게 담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만족하지 않는다면 선택은 당신의 모습을 담은 것이 아닙니다.

때로 당신의 현재는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라, 혹은 불가피한 상황이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당신의 존재는 당신의 일과 당신이 있는 곳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은 시간을 정해 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질문은 묻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현재에 충실한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삶에 대한 선택권, 주체성을 박탈하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유한하지만 이 유한함 속에서 최선의 무엇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때로 이 주체성을 연기하는 사람을 종종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기꺼이 희생하는 부모의 삶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모의 삶은 일방적 희생이 아닙니다. 물론, 보상을 얻기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베풀기로 한 선택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진실한 삶입니다. 부모라면 이 마음을 알 것입니다. 자식을 기르는 모든 순간순간이 행복한 것임을.

때로 미래의 보상을 위해서 현재를 인내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삶의 이상을 위한 인내와, 자신의 이상을 접고 다른 것을 위해(부, 명예, 지위...) 바치는 삶은 현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참아낼 수 있지만 자신의 이상과 다른 삶, 이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행복은 연기되거나 저축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닙니다.  

세 번째 의미는, 삶은 늘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늘 원하는 대로 삶을 살기는 어렵습니다. 때로는 상황이 안 맞아서, 혹은 가족과 이웃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만의 이상을 연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포기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은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저는 다양한 삶의 재창조를 목격했습니다. 기업 임원으로 수십 년간 일했던 사람이 은퇴 이후 예술을 배워 나름의 경지에 오른 경우, 노인이 되어 홀로 남은 사람이 책을 쓰고, 원예를 하고, 전혀 해 보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 많습니다.

부모님의 뜻대로 법대에 진학했지만 법조계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계에서 최고의 보이밴드를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삶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택이 삶을 만들고, 선택에 따라 삶은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늘 시간이 있고 수백 년을 살 수 있다면 선택의 여지는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삶이기에 더욱더 삶은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물론, 당신의 이상과 재능, 상상력이 재창조를 만드는 에너지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나는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묻습니다.  

바로 현재에서 자신이 원하는 충실한 삶을 발견하고 살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 나서


이 질문을 받은 것은 제게 매우 기쁜 경험이었습니다. 진지하게 삶의 전 과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항상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앞은 불과 수년간의 시야에 머물렀던 것이죠. 길게 생을 생각해 보고, 언젠가는 나의 생을 마쳐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받아들였습니다. 두려움은 있지만 크지는 않았습니다. 유한함은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언제든 나의 삶은 재창조될 수 있고 재창조되어야 하니까요. 문제는 내가 무엇을 꿈꾸는가? 나의 상상은 어떤 것일까입니다.

 이 질문을 받고 난 뒤로는 저는 늘 '상상'합니다.


조언


당신도 이 질문을 해보세요. 쉽게 답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질문에 잘 대답하는 방법을 조언하고 싶지만, 어렵습니다. 가장 은밀하고 정직한 자신과의 대화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 분 혹은 몇 시간의 고민이 답을 내려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수년간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주인으로 살아갈 나의 삶을 묻는 질문이기에 계속 묻고 답을 찾아 나가기를 조언드립니다.


오늘날의 시대를 big me라고 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 개인의 이상이 가장 중요한 시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도 나의 꿈, 나의 열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분명히 신분과 계층, 사회적 관습이 개인을 강제하는 낡은 시대는 지나갔는데 말이죠.

big me 시대 속에서 오히려 많은 사람(아마 당신도 그럴지 모르겠네요)이 small me를 느낍니다.

제 생각으로는 부와 명예, 권력, 인기 등 외부에 존재하는 소유의 대상과 진실한 나의 이상 간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얻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은 욕망의 대상이지만 그 자체로 불평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많다고 해서 만족감이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얻더라도 더욱 많은 것을 가진 사람과 비교되는 물질적 대상입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부자이고 힘센 사람은 늘 있는 것이지요. 이것들이 진정한 삶의 이상에 다달았다는 상징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삶의 이상은 내가 능력으로  얻어 낸 것이 증명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와 다 빈치, 모차르트, 마틴 루터 킹은 삶의 이상을 달성하지 못한 실패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가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이성과 상상력, 감성을 최고조로 발휘한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잊히지 않고 오늘날까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삶을 최선의 경지에서 멋지게 산 사람들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나는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가장 원하는 삶의 이상을 찾고 그대로 실현하라고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 보세요.

당신 자신을 새롭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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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서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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