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로 살기(9)
시니어의 인생을 생각하는 마지막 질문은 유산에 관한 것이다. 재산이 아니라 시니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무엇을 의미한다. 이 질문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충만한 인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다소 철학적인 성찰로 들릴 수 있지만 삶의 본질에 관한 내용이라 이런 방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시니어는 인생의 출구에 곧 다다르기 때문이다. 출구라는 말이 끝이라는 뜻은 아니다.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출구라는 표현을 하는 이유는 그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인생은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 뒤에 펼쳐질 무엇을 우리는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살고 있는 삶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언젠가는 다른 무엇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경험했다. 그것은 커다란 상실이었고 슬픔이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토대가 무너지는 아픔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죽음은 곧 나의 인생에도 출현하는 사건이다.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의 대화와 교류, 나눔은 이제 끝나게 된다. 나는 나의 인생이 어떠했음을, 그 의미와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하고 싶다. 이것은 내가 사람으로서 살아왔음을 나타내는 흔적이고, 나의 감정과 마음이 존재했다는 증거와도 같다. 사후에도 화려한 명성이나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왔음을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유산을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가족이나 친구들은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는가? 또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재미있고 유쾌한 친구야......" "꽤 능력 있고 믿을만한 사람이야....." "함께 있으면 따뜻한 사람이야....."
아마도 당신에게는 사람들이 인식해 주기를 바라는 당신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원하는 당신의 모습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 질문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세 가지 의미를 묻고 있다.
첫째, 이 질문은 모든 인간은 세상을 떠난다는 삶의 진실을 말해준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서 살다가 결국은 떠나는 유한한 존재다. 삶은 한 번뿐이다. 이 질문은 모든 인간의 인생은 그래서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 번째로 담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또한 한계를 넘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서로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서로를 기억한다. 부모를 기억하고, 친구를 기억한다. 스승을 기억한다. 혹은 자신과 동시대를 살지도 않았던 오래된 사람을 기억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사람을 통해 기억될 때 생명을 얻는다. 어떤 사람은 예술가들이 그렇게 창작에 자신을 불태우는 이유가 영원한 기억을 얻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진실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 질문이 묻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이 질문은 궁극적 가치를 묻고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이다. 내가 보내는 시간이 헛되지 않고, 내가 땀 흘리는 일에 보람이 있으며, 내가 고민하고 추구하는 그 무엇을 말한다. 인간에게는 삶을 관통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에게는 겸손, 배려, 평화가, 존 레넌에게는 자유, 열정, 창작이 떠오른다.
두 번째 의미는,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이다.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어떤 존재에게서 그것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어떤 것을 뜻한다.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것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회사의 임원, 팀장, 팀원.... 가족의 일원, 태어나고 자란 고향... 혹은 사회단체에 속한 회원...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다. 정체성은 당신이 믿는 당신의 개성이자 당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임을 느끼도록 하는 요소다. 나는 관대하며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열정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이다.....
세 번째 의미는 당신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유산을 묻는 것이다. 유산이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인간은 서로가 영향을 미치고, 서로에게 배우면서 살아간다. 가장 가까운 영향은 가족과 나눈다. 모든 사람은 부모를 통해 탄생한다. 우리 모두는 부모님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태어났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만나고 접촉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부모, 형제, 자매, 자녀, 친구, 스승, 후배, 동료, 고객..... 영향에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있다. 그것은 당신의 선택, 당신이 살아가는 삶이 결정한다. 당신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고, 또한 남기고 싶은가? 가족에게 많은 재산을 남기는 것, 유용한 지식과 학문의 진보를 남기는 것,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한 변화를 남기는 것, 혹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소망을 남기는 것.....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 질문은 궁극적 가치, 정체성, 유산을 묻는다. 이 질문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을 새롭게 하도록 촉구한다. 당신 자신을 다른 누가 아니라 '당신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묻기 때문이다.
대답을 바꾼 슘페터.
현재도 탁월한 경제학자로 인정받는 슘페터도 이 질문에 대답했다.
다음은 드러커의 저서에 나온 이야기다.
“나는 유럽에서 최고의 기수이자, 가장 훌륭한 애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25살의 슘페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슘페터는 이 질문을 다시 받습니다. 드러커의 아버지와 청년 드러커는 중병이 들어 입원한 60대의 슘페터를 문병합니다. 그때 드러커의 아버지인 아돌프 드러커가 슘페터에게 질문합니다. “자네 그 질문을 아직도 기억하나? 젊은 시절에 우리가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얘기했지 않나. 나는 아직도 자네가 한 대답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일세." 죽음을 앞둔 60대의 슘페터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뛰어난 경제학자를 몇 사람 배출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네.”
오스트리아가 배출한 뛰어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는 청년시절에는 이 질문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청년시절은 심장이 약동하고, 친구가 즐겁고, 세상일이 무궁무진하게 느껴진다. 이제 죽음을 앞둔 슘페터는 자신은 '뛰어난 경제학자를 배출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드러커는 어린 시절에 이 질문을 들었다. 드러커가 초등학교 시절 종교를 가르치던 신부님이 13살의 학생들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너희들은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니?” 물론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고 나서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대답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단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50살이 될 때까지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인생을 낭비한 것이란다.”.
피터 드러커의 대답
그렇다면 이 질문을 전해 준 드러커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드러커는 말년(2001)에 Inc. 지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박사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셨나요?
나는 “다른 사람의 목표 달성을 도와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당신도 이 질문을 해보라. 쉽게 답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질문은 당신이 드러내는 당신의 메시지를 찾는 작업이다. 두 가지 방법을 조언한다.
1. 피터 드러커의 조언
당신은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첫째,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지 질문해야 한다. 둘째, 사람은 늙어 가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것은 사람이 성숙해가면서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하나는 인간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 사실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2. 당신의 묘비명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의 묘비명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라. 당신은 어떤 묘비명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생의 마지막에 당신이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일생을 통해 당신이 누구인가를, 그리고 당신이 추구했던 가치를 드러낼 것이다.
몇몇 위대한 인물은 이렇게 묘비명을 지었다.
<아서 코난 도일 1859~1930>
"강철같이 진실하고 칼날같이 곧았다. 아서 코난 도일, 기사, 애국자, 의사이자 문인"
<버지니아 울프 1882~1941>
"너에 맞서 자신을 던지리라, 물러서지 않고 꿋꿋하게, 오 죽음이여!"
<앤드류 카네기 1835~1919>
"여기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알았던 사람이 누워 있다”
<김수환 추기경 1922~2009>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
<마르틴 루터 킹 1929~1968>
"드디어 자유가, 드디어 자유가! 전능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1706~1790>
"출판업자 벤 프랭클린의 시신이 여기 벌레의 먹이로 누워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늘 새롭고 더 우아한 판으로 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BC356~323)>
"용기 있게 살고 영원한 명성을 남기고 죽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도다!"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1745~1827)
"모든 일을 남을 위해 했을 뿐, 그 자신을 위해 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토마스 에디슨(1847~1931)>
"상상력, 큰 희망, 굳은 의지는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1564)>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만이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 질문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 보라. 당신 자신을 새롭게 보라.
시니어가 남은 인생을 생각해 보는 일은 청년기에 미래의 꿈이나 야망을 정하는 일과는 다르다. 인생에서 경험한 여러 삶의 경로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런 경로들이 현재 삶의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충만한 삶에 대한 의지와 의미를 찾는 일은 충실한 삶을 이루는 빠질 수 없는 과제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미를 재확인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았던 삶의 변화를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니어는 충만한 삶에 대한 기대를 다시 할 수 있는 인생의 시기에 있다.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삶을 온전한 전체로 성찰하는 마음의 문을 열게 돕는다.
돈키호테는 자신을 미치광이로 부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기사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기에 돈키호테는 자신의 신념대로 기쁘게 생을 살았다. 시니어는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를 인식하고 대답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에 들어 선 사람이다. 행복한 나이듦은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