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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키바 문정엽 Apr 11. 2021

90을 넘긴 사람들의 비밀

시니어로 살기(6)

깊게 숨을 쉬라. 모든 일이 한 번에 일어나리라고 기대하지 마라. 당신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고 한 번에 한 걸음씩 당신의 충만한 인생을 향해 움직여라.
(피터 드러커)       


인생, 덧셈과 곱셈     


 시니어로서 달라진 삶의 자세라고나 할까, 그중 하나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 살 더 먹었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점이다. 팔팔했던 10대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했으면서 말이다. 나이 듦은 성숙의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바람을 느꼈다. 그래서 아름답게 늙어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인생에 새로운 맥락을 만들고, 시니어로서 행복한 삶을 재구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인식한다. 더욱더 아름다운 나이 듦을 보여 준 인물에게 더욱 관심이 간다. 40대 초반부터 존경하던 고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님이 '90을 넘긴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책을 쓰고 싶다는 말씀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 아름다운 노년이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 공짜는 없다. 그런데 노년기는 더욱더 그러하다.  

 90을 넘어서까지 충만하고 아름다운 생을 펼친 사람들은 특별하다. 이들은 나이를 그저 채우는 덧셈의 삶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풍요롭고 활기찬 인생을 열어가는 곱셈의 삶을 살아갔다. 


 곱셈의 삶이란 '아름다운 나이 듦'이란 필자 나름의 기준을 충족한 삶이다.

그 기준은 건강한 상태로 깊고 충만한 경험을 계속하는가에 있다.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정신과 육체 모두가 우선 건강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은 삶의 순간순간, 살아가는 여러 영역에서 깊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삶이다. 이런 삶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름다운 나이 듦은 오랜 시간 의미 있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삶을 향한 기대와 희망이 있고, 경험하고 싶은 감정이 있고, 함께 교류하는 친구와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사별한 남자와 여자 중에서 대부분 남자가 먼저 죽는다는 사실은 인생에서 기대와 희망, 감정을 나눌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말해 준다. 할아버지들보다는 할머니가 우정을 나눌 친구가 더 많고, 보다 더 개방적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삶에서 채우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삶이 지속되는 것이다.

 

 90을 넘기까지 충만하게 삶을 산 사람들은 이런 삶을 실제로 보여준다. 이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1909~2005     


 드러커라는 이름에 생소함을 느낄 분이 많겠지만 경영학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분이다. 필자가 평생의 멘토로 존경하는 드러커는 20세기에서 21세기를 살아가신 분이다. 그는 경영학을 발명한 사람이거나, 현대 경영의 정신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런 표현은 드러커가 현대 경영학의 핵심 아이디어와 사상의 체계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러커는 학자에 국한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기에는 삶의 영역이 넓고 다채롭다. 드러커는 매우 많은 리더들이 존경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잭 웰치, 빌 게이츠 같은 기업가나 조지 부시 같은 정치인, 헤셀바인,  릭 워렌 같은 사회단체의 리더 등 사회 각계에서 드러커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활동한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드러커는 분명 탁월한 인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했을까가 궁금해진다.


 드러커는 사상가, 저술가로서 뛰어난 분이었지만 필자는 드러커가 오래 살았기 때문에 깊은 영향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드러커는 젊은 천재의 요절 같은 운명을 이겨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마주쳐야 했고 선택했던 삶의 역경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전적인 자유와 함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꿈 

    

 드러커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유년시절에 세계 1차 대전(1914~1918)을 맞았고, 10대 시절에는 히틀러가 지배하는 전체주의의 등장을 격했다. 그는 전체주의가 인간성을 파괴하고 사회를 무너뜨리는 엄청난 비극과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생명을 희생시킨 전쟁을 청년시절에 겪어야 했다. 결국 드러커는 전체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로 고국을 떠난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꿈은 그가 평생에 걸쳐 간직한 꿈이었고, 경영학을 공부한 이유도 자유로운 사회기관으로서 기업의 성공을 통해 사회가 풍요롭게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또한 기존 사회가 제공하던 삶의 영역-지역공동체, 학교, 직장, 사회단체 등-을 강제로 떠나야만 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통계수치로 이 사실을 인지할 수는 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간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드러커의 청년시절을 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고향을 떠나 불안한 탐색을 하는 드러커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속에서도 드러커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영역을 발견한다. 자신은 인간에 관심이 있으며,  인간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회, 보람과 지위를 얻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연구하고 그 결과를 저술하고, 또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다. 꿈이 있는 한 사람은 선택할 수 있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      


하나의 세계 이상에서 살아간 사람

    

드러커는 18세가 되던 해에 비로소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삶을 시작한다. 상류층 자녀로서 당시에도 유망했던 법률가, 관료, 의사로의 길을 거부하고-드러커의 부친은 장관급 관료였고 어머니는 의대를 나왔으며 일가친척 중에는 의사들이 매우 많았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수습사원 일을 시작했다. 이후 청년기를 보내면서 언론사, 금융회사 직원으로 일했고 히틀러가 집권한 독일이 유럽을 침략하면서 미국으로 이주한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드러커는 막 결혼한 부인과 함께 자유를 선택했고 자신의 인생을 열어갔다. 이후 39권의 책을 저술한 저술가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92세까지 강의함), 수많은 기업가와 정부 지도자들, 비영리단체 리더들을 돕는 컨설턴트로 일한다. 

드러커의 관심은 단 하나가 아니었다. 교수, 또는 학자, 저술가, 컨설턴트 등 다양한 칭호가 있었지만 드러커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회생태학자'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사회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 변화의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업을 생각한  드러커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을 넘나드는 39권의 책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드러커가 걸어온 삶을 보면서 어쩌면 드러커는 마지막 르네상스형 인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드러커는 인문, 경제, 철학, 역사, 사회,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관찰하고,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삶을 탁월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역을 달랐지만 결국 영역을 묶어 내는 중심은 '인간의 행복한 삶'에 두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드러커를 백 년 서생이라고 오해하는 분도 있을 듯하다. 학교에 평생 적을 두었고 책을 쓰면서 학자처럼 살아간 사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전적인 오해다. 드러커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교수로 모시겠다는 초청을 거절한 적이 있는데, 드러커가 이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컨설턴트로서 자유롭게 연구활동을 하지 못하리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에게 명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컨설팅하고 조언을 해준 기관과 사람은 정부, 군대, 기업, 교회, 대학, 병원 등 다채로우며 무료로 컨설팅한 경우도 많았다.  그런 드러커의 정신을 기려서 창립된 미국 드러커 재단은 지금도 비영리단체의 혁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드러커는 진실로 인간의 삶과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만의 방식-뛰어난 지적 통찰력-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만나고 기여한 것이다.


드러커의 삶은 쉬었을까? 그것은 내가 답하기에는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드러커는 어느 한 곳이 아니라 다차원의 영역에서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다양한 직업과 역할을 했고, 여러 나라와 도시들에서 살았으며, 무엇보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 드는 지적 노력을 했고, 기업, 비영리단체, 정부, 공공기관, 교회 등 다양한 단체, 사람들과 일했다. 다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 나는 드러커의 삶을 그렇게 이해한다. 드러커도 삶을 하나에 국한하기보다는 다차원에서 살아보라고 조언했다.   

           

인생의 맛과 멋은 어디에서 올까     


 드러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드러커가 마주했던 여러 번의 만만치 않은 상황을 알게 된다.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대국이었지만 몰락해서 소국이 되고 독일에 의해 침략당한 오스트리아, 10대 후반에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한 이국에서의 삶. 30대 초반에 모든 인간관계와 자산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 학자이자 저술가로 삶을 개척해야 했던 것. 기존 학계(정치학, 경제학 등)로부터 비웃음을 샀던 정체를 알 수 없던 경영학이라는 학문 영역을 발견하고 여기에 투신해서 사상의 체계를 홀로 세워간 평생의 작업들.  

 비엔나,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런던, 뉴욕, 캘리포니아……. 드러커가 살았고 삶을 만들었던 장소들이다.  당시에 태어난 사람들이 선택했던 삶에 비해서도 드러커는 다양한 공간, 다양한 문화에서 살았다. 그러나 드러커는 드러커다운 인생을 살았다. 비록 혼란스러운 전환기에 태어나고 전체주의가 강요한 이방인의 삶이었지만 드러커는 자신의 가치대로 자신의 자산을 최선으로 사용한 인생을 보여준다. 그는 아낌없이 공부하고, 후회 없이 가르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 바로 이것이 90을 넘어, 세기의 경계를 넘어서 살아갈 수 있었던 내면의 양분이 아니었을까?  

드러커는 95세로 삶을 마쳤지만, 그의 삶은 지금도 그가 쓴 책과 그가 영향을 미친 사람들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인생은 짧지 않다. 짧지 않은 인생은 멋있고 맛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인생의 재료를 다채롭게 구성해야 하지 않을까? 드러커의 삶은 낯선 환경에 대한 낙관, 가치대로 선택하는 용기,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망, 떠나고 정착하는 모험이라는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의 삶은 어떤 재료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가 충만한 인생을 위해 남긴 조언을 소개한다. 나는 자주 그의 조언을 읽으면서 시니어로서 내 인생의 맥락에 이 조언을 적용하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꼭 90을 넘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충만한 삶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의미와 재미로 삶을 채우고 싶다.   


<충만한 삶을 위한 드러커의 조언>
당신이 사는 인생의 CEO가 돼라
돈이 아니라 성취에 초점을 맞추라
체계적 폐기를 실행하라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라
시간과 재능을 자원봉사에 쏟아라.
멘토가 돼라
여유로운 휴식의 기술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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