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올해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오래 사신 편이고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재미있게 읽었었다. 줄거리는 기억 안 나지만 제목 자체부터 인상 깊었다. 이전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어떤 조상들이 이 지구에 계셨는지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이게 조금 확장되니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즉 고조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조선 시대를 사셨을텐데 어디서 어떤 생활을 하셨을까? 그러면 그 위의 할아버지는? 또 그 위의 할아버지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죽기 전에 타임머신이 개발되어, 한 번이라도 타고 과거를 여행할 수 있으면 좋겠단 마음이다.
다시 최근으로 돌아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요양 병원에 계실 때,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란 핑계로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나중에 할머니를 찾아 갔을 땐 할머니는 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눈을 껌뻑이면서 손주를 알아보고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건강 상태. 이럴 때 쓰는 말, 후회.
아버지의 죽음은 좀 갑작스럽긴 했다. 원래 지병이 있긴 했지만 그게 당장 올해 돌아가실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어딘가에서 상처를 입은 것이 큰 염증으로 번졌고, 이걸 치료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이 과정에서 다시 다른 병이 더 생기시고… 이후 의식을 못 찾으신 상태로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아… 난 아버지의 어린이 시절, 학창 시절도 궁금했는데! 이제는 그 이야기도 들을 수 없다. 이럴 때 또 쓰는 말, 회한.
작은 아버지가 기억하는 아버지 모습, 엄마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청년 모습이라도 건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여기서 멈추면 안 되고,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그 뒤 엄마가 기억하는 엄마의 엄니와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그 위의 외증조할아버지와 외증조할머니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