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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Oct 19. 2020

너와 나 사이의 거리, 말 한 마디의 힘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늦은 밤, 카톡이 울렸다. 대학 동기 H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알림이었다.

H는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소원한 관계도 아닌, 적당히(?) 가까운 친구였다. 그가 미국에 연수차 머물렀던 시기에 마침 나도 미국 여행을 가게 되어 미국에서 따로 만난 적도 있으니 어느 정도의 친밀감은 갖고 있었다.

당연히 조문을 갈 생각이었으나 다음 날 늦게까지 회의가 이어지는 바람에 조문을 가지 못하고 계좌로 조의금만 이체했다. 그리고는 미안한 마음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마음을 담은 긴 문자를 보냈다.

답신을 기대하고 보낸 문자는 아니었는데, 바로 답신이 왔다.


“어머나... 안 그래도 되는데 미안하네. 고마워”


문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훅 밀려왔다.

“어머나”와 그 뒤의 말줄임표에서 느껴지는 당황스러움, “안 그래도 되는데 미안하네”의 거리감에 마음이 상했다. 물론 H의 성향상 깊이 생각하고 쓴 표현은 아닐 테고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을 거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지만, 그래도 약간의 서운함은 감출 수 없었다. 부고 알림에 계좌 번호를 적어두었으면서 그 계좌로 조의금을 보낸 나에게 “안 그래도 되는데”라고 굳이 선을 긋는 H의 문자가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기분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겨도 되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의 못 말리는 예민함이 그 문자의 턱을 넘지 못한 채 끙끙대고 있었다.     




“시간이야 만드는 거지. 우리 언제 볼까?”



K의 그 말이 난 왜 그리 좋았을까.

누가 봐도 바쁠 수밖에 없는 친구였다. 명망 있는 학자에 인맥 또한 어마어마해서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어떻게 챙기나 놀라울 정도였다. 게다가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에 쏟는 정성도 사회적 명망 못지않았으니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sns에서 가끔 접하는 그녀의 바쁜 일상을 보면 어영부영 나와 연락이 끊어진다 해도 그럴 만하다고 납득이 갈 정도였다.

그러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녀와 연락이 닿았다. 시간 되면 한 번 보자는 나의 인사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약속을 잡았다. 시간이야 만드는 거라는 심쿵 멘트와 함께 말이다. 통화 끄트머리에 딱히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부록처럼 따라붙곤 하는, 조만간 한 번 보자는 영혼 없는 인사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의 화려한(?) 인맥의 비결이 여기에 있었던 걸까 싶었다.


바쁘지 않은 사람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바쁘다고 노래를 부르는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선뜻 시간을 내주기란 쉽지 않다. 밀린 업무가 있어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청소를 해야 해서, 운동을 가야 해서, 그도 아니면 몸이 피곤해서 그에게 내어줄 시간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냐에 따라서 시간의 우선순위는 달라질 수 있다.

비록 밀린 업무가 있지만, 그가 부른다면 기꺼이 제쳐놓고 나갈 수 있고 그와 만난다면 운동쯤은 하루 건너뛰어도 괜찮을 수 있다. 몸이 조금 피곤하거나 감기 기운이 있다 해도 그와 만날 생각에 에너지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 설령 다음 주에 중요한 시험이 있어도 어차피 밥은 먹을 테니 그와 잠깐 만나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 수도 있다.

결국 늘 바쁘다고 투덜대지만,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결국 시간이 마음인 셈이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여유가 없어도 어떻게든 그를 위해 시간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그만큼이 그에 대한 내 마음인 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바쁜 친구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시간은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준 게 그토록 감동일 수밖에.      




사실 알고 보면 나에 대한 H와 K의 마음 씀씀이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H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다소 서툰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한 마디 표현의 작은 차이가 사람의 마음을 얻기도, 놓치기도 하는 걸 보면 새삼 마음 표현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나의 다가간 한 걸음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한 걸음 물러난 친구 H와 나의 다가간 한 걸음에 “시간이 마음이니 만들면 된다”고 두 걸음 다가온 친구 K를 보며 나는 과연 어떤 친구인가 돌아보게 되었다.


대상관계이론에서도 현재의 ‘나’는 많은 인간관계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인간관계란 인생에서 꼭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그 '거리'는 내가 정하는 것이며 무엇이 마음인지에 대한 정의에도 정답은 없겠지만, 평생 살면서 마음을 주고 언제든 기꺼이 내 시간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 사이에 정확한 감정의 기브 앤 테이크가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만, 지나치게 선을 긋지도 않고 왜 너는 나만큼 마음을 주지 않느냐고 질척대지도 않는 건강한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 마음의 적절한 조절 능력도 있어야겠지만, 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지혜와 기술도 중요하다. 마음의 크기는 비슷해도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깊어지기도, 끊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관계란 살면서 별일 없이 소멸되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자연스럽게 회복되기도 한다. 이런 사이클 속에서 사소한 표현 한 마디가 관계의 소멸과 회복을 좌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음은 늘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무튼,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한 한 마디야말로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백만 배 가깝게 해줄 강력한 한 방임을 꼭 기억하자고 한 번 더 다짐해본다. 세상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마음이란 그리 많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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