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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Aug 10. 2020

눈치와 배려

넌 사람들 눈치를 보잖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나에게 농담처럼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넌 사람들 눈치를 보잖아."

당시의 분위기상 악의를 담은 말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농담도 아닌 것 같은, 돌직구 스타일의 농담이었다. 예상치 못한 친구의 말에 난 당황해서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그냥 어색하게 웃어넘기고 말았다. 워낙 농담처럼 가벼운 말투였고 이야기의 주된 흐름도 그게 아니었기에 다른 친구들 역시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금세 다른 화제로 옮겨갔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고 그 말은 비수가 되어 나에게 꽂혔다.


지금껏 난 내가 다른 사람 눈치를 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을 잘 배려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내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해왔다. 또한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나의 그런 면을 보면서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던 거였다. 어쩌면 언제나 당당하고 매사에 거침없는 그 친구의 눈에는 나의 행동들이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걸로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의 시선이 지나치게 비판적이거나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사람의 행동에는 늘 양면성이 있기에 같은 행동이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친구가 무심코 던진 그 말은 꽤 오랫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올라서 나를 멈칫하게 만들곤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눈치를 보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허재홍 등(2012)의 논문에서도 눈치란 상대방의 마음(감정, 기분 또는 생각)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엄밀히 말해서 ‘눈치가 있다’와 ‘눈치를 본다’는 비슷한 뜻이면서도 전혀 다른 의도성을 가지고 있으니 ‘눈치’는 말하는 사람의 뉘앙스에 따라 부정적 의미로도, 긍정적 의미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 의미에서 본다면 눈치와 배려는 닮은 면이 많다. 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까지 생각하면서 상대방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건 '눈치를 보는 것'과 '배려하는 것' 모두가 갖고 있는 모습이다. 단지 이 둘의 차이점은 자존감이 그 바탕에 깔려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만약 건강한 자존감이 바탕이 되어 이런 행동이 나온다면 그건 '배려'일 것이고 반대로 낮은 자존감, 즉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나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불안으로 인해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건 '눈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테니 말이다. 즉,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내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관찰해볼 일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결과적인 측면을 보았을 때, 그것이 눈치든 배려든 '적응'이라는 큰 틀 안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높은 자존감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거나,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문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나의 행동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상대방이 '눈치'인지 '배려'인지 섣불리 단정 짓거나 판단하지 않는 마음일 듯. 만약 배려가 아닌 눈치를 본 거라 할지라도 그를 ‘배려 잘 하는 사람’으로 지지해준다면 그런 지지와 인정 덕분에 자존감이 높아져서 결과적으로는 진정한 배려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문득 나는 배려하는 사람인지 눈치 보는 사람인지, 또 누군가를 ‘눈치 본다’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평가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곰곰이 되짚어 보면 나의 행동은 ‘배려’에 가깝긴 하지만, 기가 세거나 비판적인 사람 앞에서는 눈치를 볼 때도 적지 않은 듯. 상대에 따라 예민하게 배려하기도, 주눅 들어서 눈치를 살피게 되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뭐 어쩌랴, 이게 나인걸. 그저 오늘도 여전히 불완전한 나를 잘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조금씩 변화하면서 건강한 자아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ing 상태인 걸로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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