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내내 여행가기를 반복했던 우리 큰냠냠이(초2학년 때)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여행을 어떻게 얘기해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여행이란 말이지, 일상에서 힘들고 짜증났던 검은빛 스트레스를 초록빛 휴식과 핑크빛 즐거움으로 없애는거죠. 그리고 여행에서 알록달록한 상상을 하면서 보고 느낀 좋은 경험을 담으면 좋겠죠. 너는 무엇을 마음속에 담아 올까?"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모네의 정원에서>>란 책을 큰냠냠이와 함께 읽었습니다. 큰아이는 이 책의 주인공인 리네아를 금방 자신과 동일시했습니다. 왜냐면 리네아는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소녀였고, 그리고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책 속에 빠지면 금방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기 때문인 듯싶었습니다.
리네아는 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위층 할아버지네에서 꽃책을 보다가 위대한 화가 모네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모네의 수련꽃 그림에 흠뻑 반합니다.책에는 모네의 기념관 정원에 있는 초록색 다리 그림이 나옵니다. 큰냠냠이는 그 다리 위에 걸터 앉고 싶다 말했습니다. 신발을 벗은 다리를 연못에 늘어뜨리고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없이 빙긋 웃었습니다. 엄마가 읽어 주는 책읽기에 큰냠냠이의 눈은 점점 초롱초롱해졌습니다
우리는 방학 때, 아인스월드를 갔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물들을 돌아보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여행했습니다.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이고 데리고 갔었습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건물마다 참 사연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사람들의 철학과 사상과 꿈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책냠냠이들과 그곳에 또 갈 것입니다. 그리고 책냠냠이들과 함께 그 건물에 담겨진 희망, 그 건물 안에서 기도하며 우는 사람들의 희망이 무엇이었을지 상상해보고, 그리고 그 건물을 지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 무엇이었는지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건물을 지었는지? 그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는지도 얘기 해주고 싶습니다.
늘 거창한 모든 것도 아주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오늘 냠냠이들이 에펠탑을 색칠하고, 콜로세움을 도화지에 그려보는 것이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리네아가 모네의 집에 가서 수련을 한 장 스케치해서 왔듯이, 도화지에 그리고 싶은 건물을 스케치해보았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냠냠이들이 생소하게 느꼈을 그 건물의 이미지가, 시간이 갈수록 더 찬란한 금빛의 기억으로 새겨질 것입니다. 먼 훗날 그 기억의 공간이 따스한 추억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리네아 역시 여행지에 있는 파리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로비니아나무의 잎사귀, 비둘기 깃털, 만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책에 펼쳐 놓았습니다. 마르모탕 미술관에서는 멀리서 본 인상파들의 그림과, 가까이서 본 그림의 차이를 얘기했습니다. 시대를 앞서관 모네의 독보적인 화법인 햇빛의 반짝임에 따라 달라지는 인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리네아는 여행지마다 새로운 사실들을 눈으로 확인하곤 했습니다.
"리네아는 말이야.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말이야. 언제 도착하느냐고 재촉하고 짜증내지 않고, 창가에 비추는 모습을 즐기고 있죠? 여기봐. 네가 한 번 읽어 볼래? 강변가의 풍경, 작은배, 선착장, 축 늘어진 수양버들, 솟아 오른 포플러 나무들, 모두들 마음속에 담아두려고 열심히 보고, 적고 하네. 너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얘기해서일까요? 언제부턴가 큰냠냠이는 길을 나서면 수첩과 연필을 챙겼습니다.그리고는 차안에서 낙서도 하고 뭔가 적기도 했습니다. 아빠는 그런 큰냠냠이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기특해했습니다.
바게뜨빵과 간식을 준비해서 리네아가 책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분홍색 모네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상상했던 것 보다 정원의 꽃들은 크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모네의 집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모네 가족이 된 듯한 상상에 빠져보고 모네의 그림 속에서 보았던 다리와 정원과 연못, 초록색 배를 실제로 느껴보았습니다. 큰냠냠이도 자신이 그 여행지에 도착한 듯 조금 흥분하는 듯 했습니다.
책에는 똑같은 청록색 다리를 시간과 계절과 모네의 삶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비교해서 보여주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모네의 일대기를 들으면서 리네아는 그림 속에서 그것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큰냠냠이는 이제서야 현실에 놓여진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아도 되고, 똑같은 색깔을 칠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은 듯 했습니다. 그 동안 내내 크레파스 색깔과 자연과 다른 색깔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고 말하는 냠냠이를 내려다 보며, 저는 한참동안 웃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도 어린 시절 그것이 정말로 의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랑제니 미술관에서 수련의 걸작들에 에워 싸이는 황홀한 추억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아오는 날 새벽, 리네아를 일찍 깨웠습니다. 안개 자욱하고 물안개 가득한 새벽녘, 에펠탑 저 멀리로 햇살이 나타나는 센강의 해돋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큰냠냠이와 저 역시도 웬지 가슴 뿌듯하고 벅찬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리네아는 친구들에게 여행얘기를 해주고, 게시판을 만들어 파리의 그림엽서, 사진들, 입장권,차표, 비둘기 깃털 등을 핀으로 꽂고 감상하며 얘기하곤 했습니다.
우리도 여행을 돌아올 때마다 여러 여행의 소품이나 사진들을 게시해보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상이 더욱 활력에 넘쳐 나는 듯 했습니다.
큰냠냠이의 방학숙제에 여행일지적기가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기행문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얘기를 해줄 때는 시큰둥하여 듣는 것 같지도 않더니만,<<모네의 정원에서>>라는 책을 읽고는 저절로 기행문 쓰는 법을 터득한 듯 싶었습니다. 리네아를 따라다니며 읽었던 모든 것, 따라해 본 모든 것들을 적으면 기행문이 되었습니다. 큰냠냠이는 여행일지 쓰는 내내 종알종알 말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어찌나 신나게 여행일지를 쓰는지, 이 책에게 정말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 <<모네의 정원에서>>는 우리의 여름 여행 추억과 함께 기행문을 쓰는 법, 미술을 감상하는 법, 좋은 여행을 즐기는 과정을 보여준 소중한 책이 되었습니다. 우리 냠냠이는 말했습니다. "나도 리네아처럼 파리에 가봐야지. 에펠탑에 올라가 맛있는 것도 먹고, 박물관이랑 미술관이랑 다닐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