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우리 집은 제법 큰집이었다. 그래서인지 친인척들이 우리 집을 들려서 다른 도시로 가곤 했다. 게다가 이름자에 ‘봉’ 자가 들어간 우리 아빠는 ‘친척들의 봉’이었다고, 엄마와 부부싸움에 유독 목청 높은 '봉'의 악센트였다. 그래서 우리 집은 친인척 조카들의 하숙집이 되어 주었다. 글씨 잘 쓰던 *자 언니, 노래 잘하던 *현 언니, 잘 생겨서 자기가 영화배우 같다고 착깍했던 *진 오빠, 잘 웃던 *희 오빠 모두들 엄마가 밥을 해 먹이고 학교를 보내 주었던 친척들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그 부모님들과 다른 친척들은 우리 집을 들랑날랑했다. 그랬으니, 봄에 간장 양념에 취나물이나, 달래를 넣어 비비기 직전, 엄마는 참기름을 찔금,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손님도 많았던 우리 집에, 4남매의 손에 받든 비빔밥 그릇이 주르륵 있을 때 참기름은 그야말로 한 방울씩이었다. 어쩌다가 내 그릇에 참기름이 쭈르르륵 떨어지면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어이쿠’하는 소리를 내셨다. 그 소리에 아하! 참기름은 귀한 거구나 느꼈던 취나물 간장 비빔밥이었다. 고소한 향 가득, 나물을 간장 양념에 비벼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결혼해서 큰 아이를 5년 만에 임신을 했다. 임신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쑥을 달여 마셨는데, 달인 쑥물은 몸에 찬기운을 채워 주었다. 하지만 쑥으로 해 먹는 된장국이 나는 좋았다. 이상하게 쑥을 된장국에 넣으면 고소하고 구수한 땅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땅기운 때문이었는지, 자연의 순리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나물이었다. 그래서 쑥떡도 좋아했다. 엄마가 떡을 좋아하니, 우리 아이들도 모두 떡순이 떡돌이로 컸다.
당뇨에 좋다 해서 두릅은 애착을 가지고 먹는 나물이었다. 특히 5월의 두릅이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했다. 끓는 물에 살짝 익혀내어 초고추장에 곁들이면 그 쌉쌀한 봄 향기가 입안 가득 울려 퍼져, 향으로 치면 오케스트라 같은 진한 향을 냈다. 어쩌다 먹을 기회가 생기면 어떤 식으로 요리가 되어 있어도 반가운 나물이었다. 올해는 뭐가 그리 바쁜지 아직 두릅을 먹지 못했다.
봄 춘곤증을 깨우는 조금 자극적인 것으로는 더덕무침이나 봄동 겉절이를 떠올린다. 봄동은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달짝지근하면서 고소했다. 무침도 해 먹고 국에 넣어 먹기도 좋았다. 특히 어렸을 적에는 봄동 넣은 부침개에 홍고추가 눈에 쏙 들어왔다. 그 부침개의 홍고추는 외출하는 엄마의 립스틱처럼 눈에 띄었고 예뻤다. 그래서 엄마가 외출하고 난 후 엄마 몰래 내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 보기도 했다. 그래서 봄동 부침개에 넣을 홍고추가 없으면 괜시리 빨간 파프리카라도 넣고 싶었다.
봄나물 씻는 물에 두 손을 담그면 나물향이 어룽지며 손에 담겼다. 봄나물 냄새에 물들 때쯤이면
저절로 군침 돌며 입맛을 먼저 다시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봄철 텁텁한 입맛 때문인지, 새콤달콤 쫄면이 먹고 싶을 때도 있다.
고등학교 때 학교 앞 분식집 이름이 ‘전원’이었다. 분식집 애정으로 ‘전원 레스토랑’이라고 불렀는데, 저녁 자습시간 전에 조금 많이 걸어 나오는 이 분식집에서 엄청 허겁지겁 쫄면을 먹었다. 주문이 밀려 있거나 사람이 많아도 기어이 먹어야 직성이 풀렸는데, 시계를 계속 째려보면서도 마지막 한 줄기까지 놓쳐 본 적이 없었다. 저녁 자습시간 시작이 촉박하여, 매운 초장 입김 헉헉 대며 뛸 때에도 시뻘건 입술과 혓바닥은 친구들과 끝없이 수다를 떨었다.
“매운데도 맛있게 매워. 그쟈?”
“말하지 말고 얼른 뛰어!”
“말하는 내가 더 빠르거든. 니가 늦게 먹어 놓고. 방구 뀐 놈이 성내는 꼴 아님?”
시험 걱정, 숙제 걱정을 살짝 잊게 해 준 쫄면 맛의 새콤달콤함은 저녁 자습 전에 뛰었던 달음박질 소리와 함께 연상되는 입술 시뻘겋게 만드는 청춘의 맛이었다.
파도소리, 비릿한 바다향이 그리울 때는 바지락 칼국수를 찾게 된다.
바락바락 문질러 씻은 바지락과 야채 넣은 바지락조개 칼국수의 수증기에는,
뜨거운 칼국수를 후후 불어 제끼던 우리 냠냠이들 입술 모양도 어리고(뽀뽀 입모양),
캬~캬~ 한 국물 뜰 때마다 아니리를 하시던 아빠의 정겨운 소리도 생각난다.
쫄깃한 칼국수 면발을 위해 엄마는 나무굴렁으로, 나는 맥주병으로 힘주어 밀면서,
얼굴 마주 보며 생긋거리며 “이만큼? 이만큼?” 물어가며 얇게 반죽을 밀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육수에 칼칼하게 청양고추를 넣어서 시원해지면 마지막에 푸릇푸릇 쪽파를 흩뿌리셨다.
바지락들 사이에 꼽사리 끼어 있는 쪽파들을 깨물면 입안에 바다가 씹히는 기분이 들었다.
늘 칼국수는 푸짐한 양과 푸근한 마음이 연상되는 만족감이 있었다. 큰딸이라 동생들이 사고를 쳐도 늘 그 책임이 내게로 먼저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글썽글썽하게 울다가도 칼국수, 팥죽 같은 별미가 만들어지는 날은 팔 걷고 엄마를 도왔다. 그러다 보면 엄마를 향한 야속하면서도 억울한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씻겨졌다. 음식은 마음을 풀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알아왔다.
결혼 전에는 술을 먹다가 얼큰해지면 글썽이는 얘기들을 주섬주섬 혼자서 잘도 했다.
그러다가 잠깐 떠오르는 기억에 잠기기도 했는데, 그것은 어려서 맛본 술맛이었다.
아빠의 손님들이 왔을 때, 음식 준비에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나는 꼭 술 심부름을 했다.
그런데 심부름 오다 목이 말라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더니, 그 맛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카~,라는 감탄사는 시원하면서도 땡기는 술에 대한 감탄의 소리였다. 차마 양심상 두 모금은 마시지 못하고 안 먹은 척 내숭을 떨며 손님상에 올렸던 기억은 은밀했다. 그리고 급한 손님들 예비용으로 만들어 두었던 인삼주나 과실주들 특히 포도를 넣은 과실주는 엄마가 외출하면 꼭 한 번씩 맛보던 ‘귀 빨개지던 맛’이었다. 그때의 술맛 때문인지 대학 입학해서는 제법 술을 거리낌 없이 잘 마시곤 했다. 그래서 ‘은밀하게 마시는 술’은 ‘홀로 된다는 것’의 힘을 키우는 성숙의 맛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그밖에 봄이 되면 입맛 돋우는 음식 중에 쫀득쫀득 매콤한 쭈꾸미 양념 볶음도 있다. 불맛 들어간 쭈꾸미 맛이 좋다. 우리 아이들이 쭈꾸미를 좋아하지 않는 게 정말로 안타까울 뿐이다. 쭈꾸미나 낚지 같은 살아 있는 생물을 불에 달구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며 안 먹는다고 하니 그 상상하는 버릇을 키운 내 가슴을 내리칠 일이었다. 설득하는 엄마 앞에서 쭈꾸미나 낙지가 불에서 꼬이는 모습을 ‘온몸으로 흉내를 내며 화들짝’ 하는 모습에 너무 웃다가 먹이기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 냠냠이들 어려서는 내가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갈 때 맛있는 것을 사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약속을 하곤 했다. 그러면 냠냠이들이 내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귀하게 기다려 줄 것 같은 낭만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럴 때 반응이 좋은 것은 초콜릿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이나 빵이었다. 다음으로는 설탕 달달한 꽈배기 도넛이나, 도쿄 롤 등 빵이나 베이커리 디저트를 좋아했다. 이산가족 상봉같은 뜨거운 포옹을 하면서도 눈은 먹꺼리를 따라갔다. 지금도 이색 베이커리 디저트 점에 가면 꼭 가족밴드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을 보면 엄마의 입맛 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글을 쓰는 동안 떠올리는 머릿속 영상 속에서도 햇살은 빛이 나서 추억의 맛을 다독다독하고 있다. 역시 봄의 대향연은 눈앞에 떡하니 차려져 있는 봄나물 한상인 듯 싶다.
나이 들면, 푸른 벌판에 나물 캐면서 반들거리는 햇살 머리에 이고 있을 때도 있을까? 한꺼번에 터트려 놓은 먹거리 타령에 이번 주말에는 깔끔한 하우스 나물들이나 사러 가야 할 것 같다. 맛있는 봄 향연을 떠올리니 일은 안되고 입에 고이는 침 때문에 마음이 덜컹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