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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May 21. 2021

살랑살랑 실바람불어올 때면

어떤 마음으로 바깥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자신의 내면은 더 세련되게 성장할 수 있다. 매일 그 시간에 지나가는 기차와 버스들, 매일 만나는 가족들, 매일 만나는 나무의 그림자들, 매일 스치는 상점과 자전거들, 익숙한 길모퉁이 옆 간판 등이 동그라미 성장의 대상이다. 일감 없는 하루가 자신을 힘들게 했었을지라도 잠들기 전 최상의 긍정은  몇 배의 상쾌한 바깥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이강하 시인)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6개월 만에 집에 왔습니다.이번에 아들에게서 동그라미 성장을 실감 했습니다.


아들이 군화를 벗지도 못했는데 맨발로 현관에 뛰어내려 껴안았습니다.

“아들아!  어서 들어와서 손 씻고 밥 먹자꾸나. 엄마가 너 좋아하는 거 만들었당”

“와~군대 밥 지겨웠는데, 맛있겠다”

허겁지겁 한 그릇을 뚝딱 비웠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떠나 있었던 집안 구석구석을 정겨운 눈길로 뜯어보았습니다. 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저 사진들을 안 바꿨어요?”

“저 사진들 엄마가 좋아하는 사진들 이잖아”

 그렇게 사진에 대한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인터넷 사업 초기 남편은 일요일도 없이 회사를 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2년 동안 아빠 없이 셋이서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겨우 버티던 인터넷 회사를 정리하게 되어서 마침내 가족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간만에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어 온 가족이 즐거웠습니다. 저는 앞자리에 앉아 창가로 들어오는 모든 풍경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햇볕을 받아 눈부신 것들이 제 모양의 실루엣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차 창문을 열었더니 살랑살랑 실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민들레> 시 낭송을 했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저절로 부르는 노래 같은 시였습니다. 꼭 소풍 나온 기분이라 아이들의 기분과도 통했습니다. 큰아이가 먼저 손동작을 하며 시를 외우자, 둘째도 엉거주춤 몸을 비틀며 따라 했습니다.


민들레

살랑살랑 실바람 불어올 때면

민들레 아가씨 솜 모자 쓰고

어디론지 멀리멀리 소풍을 가요

 

 아들은 민들레 홀씨를 보면 훅~하고 불어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홀씨들에게,

내가 후~~ 불어 줬으니까, 너희는 이제 꽃이 될꺼야”라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홀씨들도 온 힘을 모아 불어 주고, 주문이라도 거는 듯이 열성으로,


너희도 꽃이 될꺼야~~” 그렇게 한없이 민들레 홀씨를 불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지쳤다는 듯이 다른 곳으로 가자고 졸랐습니다. 아들에게 떠나자고 하니,


이렇게 홀씨가 많은데 지금 떠나버리면 안돼요~엄마”라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희야!  너도 가기 싫은데 강제로 가라고 하면 싫잖아요. 저 홀씨들도 자기가 떠나고 싶을 때 날아갈 거야. 스스로 떠나야지 잘 갈 수 있는 거지.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민들레 홀씨는 홀씨가 하고 싶은데로 놔두고 가자꾸나” 그렇게 설득해서  데려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해수욕장에서 물장난을 치고 놀았습니다. 해변가 상점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한 상인들이 어제 다 치우지 못한 설거지 감들을 씻거나 옷을 말려서 널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영장에는 가끔 갔었지만, 아직 어려서 바다는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딸아이는 큰 튜브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헤엄을 쳤습니다.

 아들은 아빠하고 해변에서 주로 모래장난을 하거나, 게를 따라다니거나, 조개를 줍거나, 공놀이를 하다가, 물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파도가 덮칠 때마다 파도를 타며 온몸을 휘청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바닷가로 나와서 둥근 조약돌을 들고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매끌매끌해진 조약돌이 신기한 듯이 멀뚱 거리며 쳐다보았습니다.


엄마 : 오~바닷가 조약돌이 둥글둥글하네.


*희 :  어떻게 이렇게 둥그렇지?


엄마 : 파도가 부드럽게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서 둥그렇게 되었죠.


*희 : 원래는 뾰족뾰족했었는데  둥글게 된 거라고요?


엄마 : 그렇다니깐. 큰 바위들이 쪼개져서 뾰족했던 돌들을 파도가 매끌매끌하게 만들었다니깐. 그러니까 *희도 친구나 누나한테 날카롭게 대하지 말고 파도처럼 부드럽게 해야지, 서로서로 둥글둥글하게 잘 지내게 된다는 거죠.


*희 : 아하~ 친구를 때리면 뾰족해지고 사랑해주면 둥글둥글하게 되고?


엄마 : 와~그 어려운 말을 알아들었네. 우리 *희가. 대단한데~


 그렇게 이야기하며 수영복 입은 엉덩이를 뒤뚱거렸습니다. ‘동그라미 성장’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냠냠이들 대하는 태도가 저의 의도대로의 강제성이나, 억지로의 폭력성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쇳덩이 정이나 망치는  저렇듯 둥그렇게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요.  파도 같은 부드러움과 일관성이 '동그라미 성장'의 원리라고 여겼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은 높고 쾌청했습니다. 땡볕은 우리 차를 향해 숨차게 빗살을 쏟아냈습니다. 초록 들판은 피곤한 우리 눈을 싹 씻어주었습니다. 거칠 것이 없는 들판에 각양각색의 나무들도 일상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버티고 있는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야호! 우리 아빠가 드디어 휴가를 보냈어요!  우리 아빠가!"


그렇게 휴가 없이 일만 해왔던 핏대 세운 남편의 옆모습에 눈길을 줬습니다. 바쁘다는 남편은 우리가 잠깐의 여행을 다닐 때도 일중독이었습니다. 여름내내 회사에서 등짝과 엉덩이의 땀띠를 참아 내느라 안간힘을 쓰며 일을 했습니다. 워낙 땀이 많은 사람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속옷이 흥건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죽어 있는 남편에게 너무 뻔한 얘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일단 회사로부터 벗어나 가족여행부터 해요.방법은 다녀와서.네?"

인터넷 사업이 내리막길이라 직원들을 많이 내보냈습니다. 나중에는 일을 도맡아서 일요일도 없이 일했습니다. '미련 곰탱이 남편 때문에 독박 육아는 너무 괴로워'였지만, 마냥 불만을 쏟아낼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힘주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편의 손 위에 가만히 손을 얹었습니다. 남편이 씩 웃으며,


"어때! 이만하면 괜찮은 휴가였지?"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다,

"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차 안에서 맴돌던 음악 소리가 그 대답 소리에 눌려, 소리가 

작아졌다가 커졌습니다. 여행은 늘 제자리를 맴도는 지겨운 일상의 탈출과, 억압되었던 것으로부터의 해방감이 있었습니다.



사진: 자람이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자 아들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습니다. 홀씨들을 불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들과 얘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아들은 후임들이 많이 생겨서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키운다는 것을 실감했답니다. 터질듯한 볼 입김으로 민들레를 불던, 탱글 거리는 노란 수영복 엉덩이로 뒤뚱거렸던, 그 아이가 정말 많이 컸구나 싶었습니다. 이병, 일병에서 책임감 생기는 상병이 되니 자기도 모르게 후임들에게 이런 말들을 하게 되더랍니다.


“하나를 알고 둘을 실천해야지”


그렇게 엄마가 해주던 예전의 말들을 하고 있더랍니다. 제가 가끔 하던 말이었습니다. 하나를 알게 되면 모방을 해보다가 나중에는 자기 방식에 맞게 두번째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때 저는 귀머거리 청춘이었는데, 이제야 귀가 열리나봐요. 부하들에게 엄마하고 똑같은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크크크 웃다가) 내 안에 엄마가 있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덥석,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가해 꼬옥 쥐었습니다.


“엄마! 이번에 조기 승진시험으로 병장 되어서, 월급이 올랐어요. 모은 돈으로  PX에서 화장품이랑 홍삼이랑 사 왔어요. 다음에도 홍삼 사 드릴게요. 꾸준히 드세요. 네?”


어버이날 기념, 립서비스라 할지라도 어찌나 어른스러워졌는지, 남자가 군대를 다녀오면 정말로 철든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군대에 있더니 아들이 철이 들었네.'  흥분되고 좋아서 속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든든하게 말하는지  저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렸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동그라미 성장은 파장 같은 동력을 일으키나 봅니다. 무엇보다도 아들은 부조리할 수 있는 군대나 단체 생활 속에서, 감정에 대응하는 마음 챙김이 성숙해졌습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자신을 일단 믿고 해결해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챙기는 행동의 선택'을 강조하는 아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도 별명이 ‘동그리’였지만, 더욱 관계의 조화로움과 균형을 중요시하는 삶의 태도가 엿보였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동그라미 성장'에 대해 얘기하는 엄마가 될 것입니다. 홀씨를 불어주며 해 주었던 말처럼, 스스로 잘 날아갈 수 있게, 때를 기다려주는 동그라미 성장을 기다릴 것입니다.



사진 : 자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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