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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Jul 29. 2021

미역국은 먹었나?


미역국은 먹었나?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듣는 엄마의 전화 목소리가

발등의 불끄기식의 바쁜 일상을 식힌다.

식힌 발등의  구멍에

엄마의 지난 모습이 고인다.


매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던 4형제 양말 바닥 비벼대는 불뚝 힘줄,

“징하다 징해. 매일 벗어 제끼니…”

털퍼덕 주저앉으며 한숨 쉬던 모습.

자식들 뒤치닥꺼리를 한도 끝도 없이 하시는 엄마.


무릎 꿇고 바닥을 닦던 더러운 걸레를 뒤집는 순간,

목을 뒤로 젖혀 허리 잠깐 펴시며

“이 놈의 몸뚱아리는 눈치도 없이 쑤시네.

손님 공양 잘하는 것도 다 너희 복 태우는 일이라 해야 하는데…”

하시며 쓴웃음 짓다가도 나와 눈 마주치면 환히 웃어 주시던 엄마.


찌든 때의 걸레를 철퍼덕거리며

혼잣말 덕지덕지 달라붙는 세상사 설움 내리치고,

걸레 헹구던 물살로 러운 마음 씻어냈던 분이,

물걸레 청소기 고맙다며 세상 참 살기 좋아지셨다는 엄마.


 행상에 두고 파는 볼품없는 푸성귀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옆집 할머니인 듯,

“손질을 잘하셨네. 많이 사지는 못하고 쫌만 주소” 웃음 담아 주시는 엄마.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했던 지난 시절을 자랑삼아 내놓을 만도 하건만,

어디서고 늘 겸손하게 우리를 추켜 올려 주시는 엄마.


농사꾼도 아니면서 먹거리 욕심으로 텃밭을 가꾸셔서, 여름 폭염에  태양고추

진딧물과 전쟁을 치르고, 돗자리 펴고 고추들 널어 말리고 걷고를 반복하시느라 요즘 힘드시죠?

텃밭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그만 하셨으면 좋겠다 해도 기어이,

손수 지은 고추를 곱게 빻아 다른 양념과 함께 보내 주시는 억척스러운 엄마.


내 자식과 세대 차이 나는 대화 끝에 야무진 목소리로, 뉴스에 휘둘리지 말라는 걱정을 듣는 순간에도 엄마 생각이 났다. 피를 못 속인다고 내 자식의 모습 속에 젊었을 때 내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말로 하지 말고 말없이 옆에 있어 주면 되었을 것을, 왜 그리 말로 생색을 냈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안 해도 일상 곳곳에서 엄마를 만난다.


하루 종일 담은 김치를 김치통에 잘 재고 난 후,

남은 양념이 아까울세라 싹싹 쓸어 담는 마지막 손길의 순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문단속을 확인하며 뒤돌아서는 순간,

백화점 세일 코너에서 만지작거리다가 끝내  옷을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내 주려 웃음 건네주시는  엄마의 아름다운 얼굴을

꽃 속 그리움으로 그려 볼 때,

커피 다 마시고  빈 얼음잔 뒤흔드는 소리 끝, 일을 향해 달려들어야 하는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려 지기도 한다.


생일 축하한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지나온 세월을 관통한다. 명치끝이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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