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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Nov 23. 2020

서울역 단상(2)

 

르네상스풍의 구 서울역 역사는 낭만적인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붉은 벽돌과 청동색 돔이 인상적이었다.

구역사는 파발 마라 대형 시계와 문화역서울 284를 달고 있었다. 옛 서울역 사적번호인 제284에 붙인 이름이란다. 그곳은 문화예술 행사로 시민들의 발걸음을 유인했다. 전시장 앞에는 3등 가로등이 길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가로등에 달린 포스터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전시장에 들어오라고 호객행위를 했다.

 유리로 마감된 새 서울역 역사는 구 서울역과 조화롭지 못했다.

서울역 환승센터의 모습은 복잡했다.

도로 건너편에는 드라마 미생으로 유명했던 대우빌딩이 있었다. 이름은 서울 스퀘어 빌딩으로 바뀌었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의 대우 회장의 책 제목이 생각났다. 여전히 그 건물은 할 일 많은 미생들의 삶이 고달플 것이라는 듯, 위협적인 모습으로 서울역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서울역 앞에는 여행 가방을 들고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이 눈에 띄었다. 내일이 추석인지라 손에 선물을 들고 있는 광경도 보였다. 하지만 요즘은 상품권이나, 홈쇼핑이 발달해서 예전처럼 손 꾸러미의 정겨운 물건을 들고 가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모두가 마음이 바쁜지라 민첩한 몸놀림으로 걸어가는 듯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주변 광장을 곁눈질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둘째는 아빠가 안고, 큰냠냠이는 내 손을 잡았다. 갑자기 귀에 꽂히는 소리가 나니까 아이들은 그곳을 구경이나 난 듯이 쳐다보았다. 제일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역시 붉은 띠 두르고, 대형 십자가를 들고, 쇳소리로 목 타게 소리 지르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외침이었다. 목에 핏대를 세워 너무나 열정적인 그들은 성경말씀을 거창하게 사람들의 귀에 호소했다. 마이크를 든 종교인을 뒤로 하니, 한쪽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무리도 있었다. 몇몇이 노래가 끝나면 박수를 치니까 우리 아이들도 덩달아서 신을 내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런 소리가 일상이 된 부랑자들과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이 정말 많았다. 대낮에도 쓰러지듯 누워 신문을 덮고 잠을 자거나, 삼삼오오 짝지어 입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니면 무슨 생각에 잠겨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런데 낮술을 먹는 노숙자들이 있어서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괜히 잘 걸어가는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그곳을 지나왔다.


  다른 한쪽에는 손님을 태우기 위해 줄지어선 긴 택시들이 있었다. 그 앞에서 농을 주고받거나 정치, 사회를, 욕하는 택시 기사들이 있었다. 꿈을 안고 서울이라는 곳을 찾는 이들에게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서울 사람의 모습으로 비치고 있었다.


  너무 빠르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드라마에서 봤던 '곁눈질을 하며 매섭게 뭔가를 훔쳐보고 있을 앵벌이 꾼들'이 조직적인 활동을 하는 곳도 서울역 지하에는 있을 듯했다.


  생기롭고 활기차게 걷는 사람들의 동선을 따라서 각종 음식 수레 앞에서는 구운밤이나, 오징어, 김밥 등을 파는 아줌마들이 치열하게 먹거리를 준비하며 팔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선이 멈춘 곳은, 말없이 나물 거리를 쓰다듬는 어떤 노인의 손길이었다. 허드레 나물을 좌판에 정리도 없이 늘어놓고선, 사든 지 말든지 지나가는 행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묵묵히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무표정했지만 금방이라도 고개를 떨어뜨리면 꼬꾸라질 듯 나약해 보였다. 누가 정겹게 말이라도 걸면 눈물을 와락 쏟아낼 듯 서글픈 눈망울과, 지나온 세월이 검버섯 돋은 얼굴 뒤에 묻혀 가는 얼굴이었다. 얇게 입은 옷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어서인지 잠깐씩 움츠려 들다가 이내 곳 파르르 떨던 손으로 땅에 널브러진 나물을 집어 들어 손질을 하곤 했다. 뭐라도 사드리고 싶어서 다가가려는 순간,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빨리 오라는 남편의 전화였다. 서울역 안으로 향하여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야 말았다.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터였기 때문이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시어머님 전화가 왔다. 우리가 기차를 제시간에 탔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하셨다. 서울역은 늘 우리의 어머니들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벌써부터 음식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하셨다. 아이들 옷은 단단히 입혔는지, 기차에서 먹을 꺼리는 있는지, 늘 그런 저런 걱정을 늘어놓으시는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차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이 조급 해지며 한 시간이라도 빨리 고향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짙푸른 녹음들이 창가를 스쳐가고, 산자락 그늘 밑에 옹기종기 집들은 안식이 깃들었다. 창 밖의 풍경은 모두 그리운 사람들을 기다리는 풍경이었다. 고향 가는 길가에 스치는 나무들 잎사귀 색깔들이나 높푸른 하늘은 포근하게 느껴졌다. 어룽지며 반짝이는 햇살이 가득 쏟아져 내렸다. 새롭게 보이는 경치마다에 짧은 감탄사를 내며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길에다 그 풍경을 담아주기도 했다. 물결치는 벼들이나, 들녘에 쪼그리고 앉은 일꾼들이나, 뛰노는 아지랑이 같은 아이들은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그 속을 새떼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내 안에 잠들었던 새들이 깨어났다. 학교 다닐 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선후배, 친구들이 생각났다. 말없이 고향을 떠나온 게 미안해서 정겹게 소식도 주고받지 못한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림 같은 풍경에 친구들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차츰 지쳐가는 여행의 피곤함 속에 갑자기 낯익은 고향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사람 냄새 가득한 바깥 풍경에 짐 챙기는 손길이 어수선해졌다. 선반에 얹어 두었던 여행 짐들을 서둘러서 내렸다.

아이들의 옷을 다듬어 주고,

"집에서 절 연습했죠?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면 큰 절 하도록 하자꾸나. 알겠죠?"

그리 당부를 하면서 우리는 기차를 내렸다.


  따뜻한 이들과 정겨운 추억이 묻어 있던 그리운 고향이다. 갑자기 가슴으로 스쳐오는 바다 내음과, 확 귀에 들어오는 정겨운 사투리가 먼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이제 올라가는 곳에는 다시, 서울역이 나를 반길 것이다.

 새롭게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몸짓으로 내 등을 떠밀어 줄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다시 고향 가는 길에는 자신을 찾아오라고,

그때는 큰 품을 벌려 너를 맞이해 주겠노라고,

그렇게 나지막하게 내 귀에 대고 속삭여 줄 것이다.



사진: 자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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