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짜리짜리 Feb 27. 2021

부러움 총량의 법칙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광고 카피가 한때 유행이었다. 부러워도 절대 내색하지 않고 마음의 동요 없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루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누군가의 성공이나 성취를 인정하자는 느낌보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의 부정적인 느낌이 크다.


남의 떡이 항상 커 보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어디 사촌뿐일까. 옆에 직장동료가 잘 나가도, 친구가 집을 사도 부럽다. 왜 저 친구는 잘 되지? 왜 저 사람은 운이 따르지?라고 생각한다.


처음 주식을 시작할 때 마음은 소박했다. ‘마이너스만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로 시작했다. 그리고 은행에서 주는 이자보다 높았으면 좋겠다로 마음이 바뀐다. 누가 무슨 종목을 사든 수익을 본다는 시장과 높은 수익률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수익률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욕심이 자리 잡았다.

집 값이 천정부지 치솟는 시장에 집을 사는 동료를 보며 상투 아닐까? 이렇게 비싼데 어떻게 집을 사지?라고 생각했고, 상투라고 생각했던 집값은 천장이 뚫린 듯 올랐고 지금도 오르고 있다. 과감한 실행력의 동료가 부러운데 나는 같이 사는 남편조차 설득이 안된다.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하면 반대로 타인도 나를 부러워할 수 있다.


 우리는 비교를 통해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부러움을 느낀다고 스스로에게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다. 만족을 느껴도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다. 부러우면 그냥 부럽다는 감정을 인정하면 된다.


살면서 어찌 부러움을 못 느끼고 살겠는가. 온통 부러움 투성이다. 나보다 키 큰 사람, 얼굴 예쁜 사람, 집 배경 좋은 사람, 직업 좋은 사람, 성격 좋은 사람, 운 좋은 사람, 많이 가진 사람 등등등.


부러움의 감정이 항상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존재할까.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은 질투와는 다르다. [부러워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이 잘되는 것이나 좋은 것을 보고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 하다.’의 뜻이고 [질투]는 ‘다른 사람이 잘 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깍아내리려 함’의 뜻이다.  


부러움은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어어 질 수 있는 긍정의 감정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까지 부러움과 욕심이라는 감정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동기를 부여해 나를 변화시키려 노력했고, 지금도 그 노력을 하고 있다.  


오르막길 내림 막길처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항상 잘 나갈 것 같은 사람도 벽을 만나고, 끝없이 오를 것 같은 가격도 조정을 받고 영원할 것 같은 일도 끝이 있다. 우리는 수없이 이를 보고 느끼고 경험한다. 그럼에도 막상 그 터널에 갇혀 있으면 1년이 10년 같이 길게 느껴진다. 영원히 누릴 것 같은 모든 조건들도 변하고 내어줘야 할 시간이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부러움 총량의 법칙도 있을까?


인생 총량의 법칙에서 음주 총량의 법칙, 흡연 총량의 법칙, 지랄 총량의 법칙, 행복 총량의 법칙 등 다양한 법칙이 있다. 부러움 총량의 법칙이 있으면 어떨까. 부러움을 느끼는 분야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부러움도 자주 느끼다 보면 총량의 법칙처럼 한계의 지점에 다다르지 않을까. 행복 총량처럼 말이다. 지금 어려움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인생 총량 법칙으로 위안 삼자.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포기한 인생의 중고품이나 다름이 없다.
 그의 혼은 이미 빛을 잃고 무디어진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끝없는 탐구이고, 시도이고 실험이다. 탐구와 시도와 실험이 따르지 않는 삶은 이미 끝나버린 삶이나 다름이 없다.
 - 법정 스님-

작가의 이전글 공짜 싫다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