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지금이 될 줄이야
다들 살면서 본인이 빛난다고 느끼는 시기 하나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듯이 나 또한 그랬다. 가장 나답고, 자부심에 가득 차있고, 활력이 느껴질 때 나는 사람이 빛난다고 느낀다. 내게는 대학교 3~4학년 때가 그랬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여성주의 기반의 학생회 활동을 참 열심히, 재밌게 했다. 그때의 추억은 사회생활을 하는 내게 종종 꺼내먹는 사탕과 같은 역할을 해오곤 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다시는 그때처럼 내가 빛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빛난다고 느낀다. (갑자기?) 여전히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무기력한 직장인이지만, 뉴스레터에 관해서는 욕심이 아주 많아지고, 계속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눈을 빛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허한 동태 눈깔을 장착한 지 오래되어서 눈을 빛내는 이 감각이 낯설지만 말이다. 사실 뉴스레터를 기획할 때 '빛나는 사람이 되자'는 목표는 없었지만, 지난날의 내가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활동했을 때처럼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회사 밖에서 뉴스레터 에디터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경험과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글로 써 내려가고 싶다. 내가 뉴스레터를 할까, 말까 고민했을 때 용기를 주고, 훌륭한 참고점이 되어주었던 분들처럼 내 글 역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본다.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이야기하기에 앞서, 갑자기 어떤 필요로 인해서 뉴스레터를 만들게 되었는가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3년 내내 나는 나를 부유하는 먼지라고 생각했다. 성향과 맞지 않는 직무에서 오는 고통이 컸고, 일을 할 때마다 나를 좀먹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지키고자 나다운 행동을 자꾸 찾아서 하곤 했는데,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에 관련된 강의를 듣는 정도였고, 혼자 끄적끄적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곤 했다. 그런 행위들은 내가 우울한 생각을 하지 않게 막아주는 브레이크까지의 역할을 했지만, 내게 필요한 건 그 이상이었다.
목적과 수신자가 없는 창작물을 만드는 것에 재미를 잃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를 새로운 영역에 던져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영역에 나를 던져보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이렇게 시시한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분명 꽤나 열정적이었던 사람 같은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변해가는 게 참 싫었고, 혼란스러웠다. 더 이상 성취를 바라지 않고, 그저 고여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현재의 그저 그런 내가 나인가? 아니면 내가 바라는 내가 나인가? 그 둘이 너무 다른데 어떡하지?'라는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 그 혼란스러움에 답하기 위해 그 둘을 일치시켜보는 시도나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실험이었다. '나는 지금 나의 틀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와 '회사가 아닌 곳에서의 내 쓸모가 있으면 좋겠다.'는 가설에 대한 실험. 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그 가설은 '참'으로 판명 났다.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옴잡이인 백혜민 캐릭터는 학교 반경 5.38km를 넘어가면 안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수술을 통해 사람이 되고 나서 퇴원하는 백혜민을 데리러 온 은영과 인표에게 이런 말을 한다.
5.38km 밖으로 나가보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하던 백혜민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내가 갇혀있던 선을 넘어도 되는지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저 선 너머에서 새롭게 경험할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였을 거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근데 하면 재밌을 것 같아!' 하는 생각. 다시 드라마로 돌아와서 백혜민은 마침내 5.38km를 넘었을 때, 울음을 터트린다. 나도 얼마 전 밤에 혼자 갑자기 벅차올라서 운 적이 있는데,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참 많이 변화한 내 모습들이 기특하다고 느껴서 눈물이 났다. 스스로가 미워서 눈물 난 적은 많아도, 스스로가 기특해서 눈물 난 적은 또 드물어서 참 신기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는지, 그리고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뭘 경험했길래 그러는지는 하나씩 보따리에서 꺼내 풀어볼 예정이다✒️
+ 발행하고 있는 뉴스레터 <슬점>의 링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