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긍정까지 해버렸다.
뉴스레터를 할까 말까 주저했던 건 자신이 없어서였다.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케터,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분, 무언가의 덕후와 같은 분들이 하는 것 같았고, 나는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이라 그들과 달리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하며 선을 그었다. 나는 뭘 알리는 걸 잘하는 사람도, 한 분야를 깊게 들이 파는 사람도 아니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할 얘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동료와 뉴스레터의 주제를 잡을 때, "직장인들 점심 메뉴 골라주기"까지는 나왔지만 그걸 어떻게 콘텐츠화시킬지는 구상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빌라선샤인의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콘텐츠 기획>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기획의 과정을 배웠다. 황효진 콘텐츠 디렉터님의 책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에도 나오지만, 처음 내 안의 콘텐츠 씨앗을 찾을 때 관심사나 취향 등 내가 가진 것을 탈탈 터는 것을 추천하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점심시간에 동료와 할 말 없을 때 하기 좋은 대화 소재"라는 키워드가 나왔는데, 사실 이 키워드는 나의 콤플렉스로부터 뽑아낸 거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말은 내뱉은 순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온갖 걱정을 하다가 결국엔 말이 이상하게 꼬여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냥 맘 편히 침묵을 지켜도 될 텐데, 또 주위 눈치는 많이 봐서 대화가 끊겨 조용해지는 순간에("가자! 디지몬의 세계로!"라도 외쳐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특히 일터에서... 그래서 신입 때는 출퇴근 길에 일부러 대화 소재로 삼을만한 정보를 찾아놓고, 점심시간에 뿅! 하고 대화 소재를 꺼내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동료들은 어디서 자꾸 그런 정보를 보고 오냐는 반응을 했었고, 무사히 점심시간을 넘기곤 했다. 꽤 피곤했지만, 나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던 것이다.
나의 이런 경험에서 흘러나온 생각은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이었다. 대한민국에 말주변 없는 직장인이 어디 나뿐이랴. 그리고 지금까지 이 주제로 만들어진 콘텐츠도 없었고, 이 주제라면 "대화를 어려워하는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대화 소재로 삼기 좋은 정보를 잘 골라올 자신도 있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자신감이 좀 차올라서 신나게 기획을 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콤플렉스를 통해 자신감을 찾은 것이다. 내가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으니까.
나는 콘텐츠를 기획하기 위해 나라는 사람을 탐색한 것뿐인데, 자기 긍정까지 해버린 기분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내향인이라는 정체성은 아주 신물 나는 녀석이었다. 특히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시기(신입생이나 신입사원)마다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못 하나...'라는 자책을 하곤 했다. 그때는 나름 변해보려고 일부러 활발하거나 사교적인 척을 하기도 했는데, 대실패였고 오히려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응, 나는 말을 잘 못해.'라고 인정해버렸고, 그리고 콘텐츠 기획을 하면서 '그런 나라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나를 부정하는 변화와 달리 나를 긍정하는 변화를 경험하며,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이런 나라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랫동안 날 힘들게 한 내향인으로서의 정체성 덕분에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어 고맙기도 하고!
나만의 콘텐츠를 기획한다는 건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꼭 나의 멋진 모습만 드러내야 콘텐츠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과 그래도 그걸 안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내 시도가 누군가에게는 분명 도움이 된다. 정말이지, 사연 없는 사람은 없고, 그 사연 역시 좋은 소스가 된다✒️
+ 발행하고 있는 뉴스레터 <슬점>의 링크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점심메뉴와 동료와 가볍게 대화하기 좋은 대화 주제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