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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Jan 06. 2021

나를 에디터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호칭 찾기의 여정


나는 요즘 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일이 있을 때마다 "뉴스레터 슬점의 잼인(실제로는 실명을 쓴다) 에디터입니다."라고 한다. 여전히 낯선 호칭이긴 하지만, 자연스러워지고자 노력하고 있다. 왜 나는 이 호칭을 부담스러워했고, 왜 이 호칭을 쓰려고 하는지를 한 번 이야기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내게 에디터란 판타지의 영역이었다. 기가 막힌 글을 기획해서 취재하고, 글로 멋지게 풀어내는 사람들... 뭐랄까,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누군가를 동경하면, 선을 긋게 되듯 나 또한 그랬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와, 멋지다... 정말 멋진데... 나는 저렇게 못해.'라고 구분해버리는 것과 같달까.


창작자...? 에디터...? 내가...?

그러다가 구독자로부터 온 피드백 중에 "재밌게 보고 있어요! 창작자님들 응원합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눈을 껌뻑였다. 누군가에게 그런 호칭으로 불려본 적이 없었고,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도 스스로를 창작자라고 정체화하지는 않았기에 그 호칭이 낯설었다. 낯설면서도 사실 좋았는데, 에디터와 마찬가지로 창작자라는 호칭에도 동경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갸우뚱하면서도 미소를 짓게 되고, 또 그러다가 '잠깐, 근데 나를 창작자나 에디터라고 불러도 되나?' 하고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의구심이 들면서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는데, 첫 번째로 들었던 질문은 "원래 있던 정보를 2차 가공해서 내보이는 것뿐인데, 이것도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였다. "것뿐인데"라는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나는 지나치게 나를 낮추고 있었다. 내가 어떤 대단하고, 의미 있는 행위를 하리라는 기대를 스스로 갖고 있지 않은지가 오래돼서 그랬다. 2차 가공이라는 것도 결국 내가 2차 가공의 틀을 창작해서 새로운 옷을 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창작에 해당이 됨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낮추려고 했던 거다.


두 번째로 들었던 질문은 "나를 감히 에디터나 창작자라고 칭해도 되는 걸까?"였다. 자, 여기서는 "히"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앞서 말했듯이 동경을 갖고 있는 직업군이었기에 불가침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내가 비빌 수도 없고, 그랬다가는 실제로 그 호칭을 달고 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께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그들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마음은 아니고, 나의 낮은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이 만나 이런 어둠의 콜라보를 한 것이다.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스스로를 긍정하고, 응원하게 됐지만, 마음 한 켠에는 오랜 시간 쌓여온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다. 그리고 이런 불안한 마음에게는 의구심은 아주 좋은 먹이라서 그 부피가 커지기 쉽다.



책 속에 있는 답

그러다가 매거진 B의 책인 JOBS EDITOR 편을 읽었고, 그 질문들과 관련한 좋은 레퍼런스를 배웠다. 도움이 되는 문장들이 더 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아래의 3가지이다.

조수용 매거진 <B> 발행인 : 전 에디팅이 곧 크리에이티브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보통 창조한다는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걸로 많이 생각하는데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에디팅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오거든요.(...) 최종적으로 구현할 상을 통해 에디팅을 통해 그 상을 구현해내는 사람? 크리에이터라고 부르기는 모호하니 에디터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죠.

최종적으로 구현할 상을 만드는가? → Yes. 최종적으로 뉴스레터의 포맷으로 만들어낸다.

재러미 랭미드 : 기본적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모아 큐레이팅 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고요. 정보를 알리고, 마음을 움직이고,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정보를 알리고, 마음을 움직이고,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이야기꾼인가? → Yes.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대화 소재를 알리고, 인사멘트나 메뉴 추천으로 마음을 전하고, 구독자가 읽기 쉽게 편집과 디자인을 한다!

니시다 젠타 : 에디터란 다양한 것을 모으고 또 모아서, 그 안에서 좋은 정보를 골라 정리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직업입니다.

다양한 것 중에 좋은 정보를 골라 알기 쉽게 전달하는가? → Yes. 정보의 바닷속에서 우리 콘텐츠 성격에 맞는 걸 골라와서 짧고, 재밌게 쓰려고 한다.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놀랍게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에디터나 창작자로 불려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책을 읽고 답을 찾는다는 게 뻔한 클리셰 같지만... 깨달은 걸 어떡하나..! 그래서 이때부터는 에디터, 창작자, 발행인의 정체성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호칭을 받아들이고 나니 또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이 전에는 취미활동 차원으로 재밌게 하는 걸 목적으로 했다면, 이 후로는 이 일과 호칭에 책임감이 생겨서 뉴스레터 발행을 잘하는 것과 이 경험을 통해 내 능력을 확장시키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외부에서 날 "잼인 에디터님"이라고 불러줄 때마다 설렌다. 내가 동경하던 직업군의 호칭을 들으니까 더더욱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가슴이 뛰곤 한다.

내 최애 트로트...

내가 하는 일에 이름을 붙이는 건 스스로에게도 큰 동력이 된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레러"라는 호칭도 밀고 싶다. 뉴스레터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내 맘대로 만든 단어인데, Newsletter + er(~하는 사람)을 합치면 "뉴스레러러" 또는 "뉴스레터러"이지만, 발음이 어려우니 줄여서 "뉴스레러"라고 부르려고 한다. 뉴스레터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더 좋은 호칭 같아서 마음이 자꾸 간다. 뉴스레러. 그래서 이 매거진의 이름도 <뉴스레러의 생각>이다. 뉴스레터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니까.




+ 발행하고 있는 뉴스레터 <슬점>의 링크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점심메뉴와 동료와 가볍게 대화하기 좋은 대화 주제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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