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내고 있다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5년 동안 다니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지 4주가 됐다. 전 직장에 스타트업으로 간다고 말했을 때 반응이 두 가지였다.
"아~ 친구가 창업 뭐 그런 거 한 거예요?"
"멋있다. 꿈을 찾아가는구나."
음... 둘 다 아닙니다만... 원대한 꿈이나 목표가 있어서 이직했다기보다는 지금 그 일이 하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해온 일과 사이드의 경험을 봤을 때, 콘텐츠 기획 일을 할 때 눈을 빛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을 빛낸다는 건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는 것과도 같다. 욕심이 생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커리어 전환의 이유 치고 너무 단순한가 싶긴 한데, 평소에 생각이 많다가도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오히려 단순해지는 게 내 특징이다.
4주가 지난 지금, 난 내 눈빛이 꽤나 맘에 든다. 첫 주에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스타트업의 세계가 빡세 보여서 '내가 경험한 일터와 정반대 성격의 조직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못해서 잘리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하며 부대찌개에 소주를 마셨다. 하지만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으로서 다행인 건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조금만 해내도 쉽게 뿌듯해한다는 거다. 그래서 작은 일을 하나씩 할수록 다른 종류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물론, 어려운 순간도 있다. 일이 내 마음대로 안 풀리거나 내 약점을 깨달을 때 속상하고,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좌절도 지금은 좋다. 조금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일 때문에 좌절하는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좌절한다는 건 내가 일에 기대하는 게 있고, 그만큼 욕심내고 있다는 뜻과도 같기 때문에.
(전 직장에서 맡은 사업에 이슈가 생겼을 때 사무실에서 혼자 OTL 자세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동료가 찍어줬는데, 그 사진을 굉장히 좋아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하지만, 해내는 사람"이라는 내 포트폴리오 소개 문구처럼 해내고 싶다. 나중에 눈에 빛을 잃었을 때 꺼내 보면 '녀석, 순진했구나'하고 피식 웃을 수도 있고, '열정이 넘쳤네...' 하며 씁쓸해 할 수도 있겠다. 아직 초반이라 현실을 모르고 의욕이 넘쳐 이렇게 희망적인 글을 쓴다는 걸 인정한다. 그냥 이때의 마음을 남겨 놓으려고 이 글을 썼다. 현타가 올 때 꺼내 볼만큼 스스로를 좋게 생각하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이럴 때 부지런히 기록해야 한다. 욕심만큼 잘 해내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