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토크에 쓰기 좋은 대화 소재를 담은 뉴스레터를 매주 보내지만, 사실 나는 스몰토크를 아주 못한다. 얼마 전, 책<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에서 김신회 작가의 <스몰토크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뜨끔한 문장이 있었다.
스몰토크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고 길게 떠들어대는 사람일수록 스몰토크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동시에 이 문장을 읽고 ‘나도 스몰토크에 대해 진지하고 길게 떠들어보고 싶다.’는 이상한 질투심도 들었다. 스몰토크 소재를 추천하는 사람으로서의 알량한 자존심이랄까… 스몰토크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열렬히 증명하기 위해 글을 써본다.
스몰토크의 아이러니는 스몰토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헤비한 마인드로 스몰토크를 한다는 거다. 상대와의 적막을 깨야할 것 같다는 무언의,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느끼는 압박감에 입을 연다. 그렇게 입으로부터 발화된 말들은 잠시 적막을 메워주고는 곧 휘발된다.
왜 이런 압박감을 느끼는 걸까?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마주한 상대의 반응이 그렇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이들은 정말 할 말이 없을 뿐인데,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화났어요?”라는 무례함 한 스푼 섞인 질문을 받는다. 또는 뒤에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씹히기도 한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입을 열지 않아서 겪은 경험들로 인해 입을 어떻게든 열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을 테다.
분명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어쩌라고.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는 굳센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타인의 시선에 좀 더 민감한 이들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스몰토크를 시작한다. 스몰토크를 위한 대화소재를 항상 고민하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좋은 스몰토크를 이끌지는 못한다. 가끔 말하기를 좋아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만, 내가 던진 소재에 신나서 열심히 말하기 시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적막의 순간을 지나온다.
그래서 사회초년생이 타인의 평가를 적나라하게 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스몰토크에 대한 부담이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무표정이어도, 웃어도 까 내리기 바쁜 선임들로 둘러싸여있는 이들은 사회성 좋은 신입사원으로 보이기 위해 열심히 스몰토크를 시작한다. 이때만 해도 이들에게는 짱짱한 체력이 있어서 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물리적 체력이기도 하고, 시작하는 사람 특유의 심리적 체력도 높기 때문에 스몰토크를 열심히 할 수 있다. 그 말은 즉 슨,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스몰토크도 안 하게 된다는 거다.
스몰토크 소재를 매주 추천하는 뉴스레터 발행인으로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슬점에서 추천하는 소재를 진짜 스몰토크용으로 쓰세요?”
그때마다 난감한 표정으로 아주 가끔, 아아아주 가끔만 쓴다고 답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제 스몰토크에 열과 성을 다하지 못한다.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기에는 일상이 너무 바쁘고, 피곤하다. 기분 좋을 때 저절로 나오는 스몰토크는 물론 하지만, 억지로 침묵을 깨려는 스몰토크를 하기에는 체력이 받쳐주질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있기도 피곤한데, 대화까지 억지로 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어색한 적막을 깨는 것보다 나의 체력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이기도 하다.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보다 나를 우선시하기 시작하면서 스몰토크 소재를 출근길에 검색하지 않게 되었다(신입사원 때는 출근길에 스몰토크용 소재를 찾아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위한 스몰토크 소재는 찾지 않지만, 혹시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재를 찾는다.
“그래요, 저 스몰토크엔 여전히 젬병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랍니다.”라는 말을 무려 1,738자로 스몰토크에 대해 “진지하고 길게” 떠들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