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첫 글쓰기는 일기였을 거다.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는 사실 굉장히 치졸한 목적을 갖고 썼다. “OO이가 떠들었다.”처럼 누군가의 잘못을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는 내용을 자주 썼고, 선생님이 눈치채고 이런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다른 아이들 이야기는 그만하고, 네 이야기를 해보자^^
내 불순한 의도를 들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자, 여기까지가 내 첫 글쓰기의 기억이자 흑역사이다. 기억을 떠올린 김에 글쓰기에 대한 나의 역사를 톺아보려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글을 썼고, 글을 쓰며 어떤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는지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다.
16세~18세 : 버티기
모든 면에서 암흑기였던 중학생 시기는 기억도 잘 나지 않으니 뛰어넘고, 고등학생 때는 버티기 위한 글쓰기를 주로 했다. 다이어리에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다짐은 물론이고, 환멸 나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줄줄 적으며 어른이 되면 이 더러운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벽을 문으로 만들자! 끝없이 힘내자!”처럼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게 빡센 문구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글로 적어야만 수험생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20세 : 생각한 대로 맘껏 표현하기
그 생활을 견뎌내고 대학에 와서는 잠시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가장 글을 많이 썼다. 캠퍼스 기념품 샵에서 산 일기장에 처음 해보는 타지 생활에서 오는 두려움과 당시 장거리 연애를 하던 데서 오던 불안감을 적어 내려갔다. 지금 보면 ‘얘는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불안감을 느낄 만큼 그놈은 좋은 놈이 아니란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왜 이때 글을 썼을까 생각해 보면, 일기를 적는 시간이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알맞은 영어 단어를 생각하느라 늘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니까.
21세~22세 : 내 언어로 소화하기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에는 약간 다른 결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여성학 수업을 하나 듣고 흥미가 생겨 귀국 후 여성주의 활동을 시작했는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는 온갖 개념과 이슈를 내 언어로 소화하는 글을 썼다. 아마 이때 내 뇌가 가장 말랑하지 않았을까… 부정적인 감정을 한 번에 쭉 적어 내려갈 때와는 달리 중간중간 멈춰 고민하며 신중하게 적었고,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글을 쓰는 내 모습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부류의 글쓰기는 여성주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끝났다.
23세~26세 : 우울함을 분출하기
한참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첫 회사의 퇴사를 결정한 날, 1년 만에 일기장을 폈다.
“땡볕에서, 강남 한복판에 서 있었다. 사람이 추울 때 뿐만 아니라 너무 뜨거워도 팔에 소름이 돋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첫 사회생활이었고, 많은 의미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에 의미를 두진 않겠다. 처음은 덧없고 허망할 뿐이다. 언제나 기대한 것보다 처음은 별로이다.”
첫 사회생활에서 느낀 것과 내 인생에 있어서 이 사회생활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나의 챕터가 끝날 때마다 있는 요약 박스처럼 마무리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 이후 재취업을 한 나는 힘든 순간마다 내 힘듦을 어딘가 분출하고 싶어서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하고, 우울한 텍스트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러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의 버티기 위한 글쓰기와는 살짝 결이 다른데,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가면 뭔가 해결된다”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고, 이때는 아무런 희망이 없고 오로지 절망만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절망의 마음을 블로그 비공개 글이나 휴대폰 메모장에 적으며 힘든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27세 ~ : 존재감 알리기
그러다가 뉴스레터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 꽁꽁 숨겨놓던 글쓰기를 하던 때와는 발화하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져야 했고, 보여주는 글을 쓰는 재미를 슬슬 느꼈다. 내 생각을 오롯이 담은 에세이 같은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타이핑한 것을 사람들이 읽어주고 있다는 감각은 꽤 짜릿했다. 그 짜릿함은 아마도 글로 세상 사람들에게 내 존재감을 알렸다는 데서 왔을 것이다.
동시에 빌라선샤인의 글쓰기 모임이었던 “글쓰페”에서 누군가와 본격적으로 글을 공유하며, 감상을 주고받는 경험을 처음 했다. 그전까지는 익명의 뉴스레터 구독자로부터 피드백을 텍스트 형태로 받기만 했다. 얼굴을 보며 감상을 나누는 건 생각보다 부끄러운 동시에 글이 읽히는 재미를 느끼게 해줬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내 생각을 글로 옮기며 머릿 속 생각을 끄집어내는 연습을 한 거다. 뇌 어딘가에 잠들어있던 기억이나 둥둥 떠다니던 생각을 텍스트로 번역시켰고, ‘뭘 글로 쓸까?’를 항상 고민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지금은 “와글교”라는 모임에서 글쓰기 친구들과 매주 글을 공유하며 글을 공유하고, 소재를 고민하는 재미를 지속해오고 있다.
그렇게 써낸 글에 누군가 피드백을 해줄 때마다 자신감이 채워졌고,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여 완전히 오픈된 공간인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만 읽다가, 그리고 소수의 사람끼리만 읽다가,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광장에 내 글을 내걸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면 어떡하지?’, ‘혹시 직장 사람들이 내 내밀한 생각이 담긴 글을 보게 되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을 해야 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재미가 그 걱정보다 컸기에 가능했다.
물론, 가끔은 예전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쭉 풀어내고 혼자만 볼 때도 있다. 솔직히 독자가 있는 글을 쓰며 생긴 부작용인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아무 관심 없을 수도 있지만, 내 암울하고 찌질한 생각은 광장에 걸기가 부담스럽다.
그런데 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쨌든 내 삶에 글쓰기는 계속 있었고, 어떤 형태와 목적으로든 계속 글을 쓸 것 같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