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을 처음 맛본 건 5-6년 전쯤인 것 같다. 여기저기서 맛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궁금하긴 했으나, 시뻘건 비주얼에 겁먹어 선뜻 시도해 보지 못하다가 동네에 마라탕집이 생겨서 먹었다. 첫입을 먹는 순간 그 특유의 마라향과 강렬한 맛에 눈을 떴다. 기침하거나 땀을 흘리고 코를 풀면서 먹어야 하지만, 마라 맛을 대체할 맛은 없기에 자주 찾았다. 한 번 맛보면 그 맛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맛!
갑자기 마라탕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 마라탕이 페미니즘과 퍽 닮아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왜 저렇게까지 하지?’ 생각이 들 수 있는, 과격해 보이는 언행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한 번 사회를 젠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새로운 관점에 희열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계속 파게 되는 점. 그리고 한 번 접하면 이 관점이 없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도.
하지만 마라탕을 막 먹다가도 권태기가 오는 것처럼 페미니즘 역시 그렇다. 한동안은 마라탕이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찾아 먹지 않았다. 페미니즘은 신체적 건강에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정신 건강에는 안 좋아서 피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며 분노했던 각종 젠더 관련 이슈들도 더 이상 찾아보지 않았고, 헤드라인이 보여도 클릭하지 않았다. 어차피 열어봐도 화만 날 거니까. 현장에서 학계에서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내는 분들께 ‘프리라이더'로서의 부채감을 가진 채, 관련 단체에 정기 후원만 하고 있었다.
이런 소극적인 소시민이 된 것은 분노와 절망의 반복이 주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특정 이슈가 터지면 우리끼리 열 올리며 분노하고, 시위 참여, 기사 공유하기 등 각자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액션들을 취하지만, 가해자와 공범들은 되려 조롱했으며, 정부나 사법 체계는 못 들은 척했고 때로는 그들도 우아한 조롱을 했다. 나는 현생의 크고 작은 비극들로 이미 지쳐 있었다. 그 가운데 무력감을 계속 마주하려니, 내 정신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의도적으로 각종 이슈에 대해 깊이 알기를 피했다.
의도적인 권태기가 길어지며 나는 별로 안 멋진 시민이 되었다. 어디든 배제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을 것이고, 묵직한 목소리를 내는 법도 까먹어서 가해자와 공범들에게는 조롱 정도의 깃털같이 가벼운 분노를 공중에 던지곤 했다. 무엇보다도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다 같이 지옥으로 가자'의 마인드로 점점 변해갔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다.
그러다 요즘은 다시 페미니즘에 조금씩 천천히 돌아오고 있다. 사실 권태기를 극복할 생각도 의지도 없었는데, 손에 손을 잡고 지옥으로 달려가다가 이미 지옥인 세상에 대한 환멸이 지겨워서 자연스레… 돌아왔다. 사실 돌아왔다는 말도 거창하다. 단순히 다시 관심을 갖고 불평등이라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 하다. 다만, 밥을 굶다가 다시 식사할 때면 순한 미음을 먹는 것처럼 천천히 천천히.
한창 페미니즘에 몰두해 있을 때의 차이점은 그때는 ‘여성' 의제에만 열을 냈다면, 지금은 여성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사회구조에 관해 공부한다는 점이다. 계급, 노동, 자본주의 등 전에는 안 읽던 책을 씹어 먹으며 굳어있던 머리를 작동시키고 있다.
당장 내 앞의 불평등에는 감정 소모가 너무 많이 돼서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여성에 대해서만 아는 걸로는 뾰족한 대안을 떠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껴서일지도 모른다. 가부장제와 결합해 여성을 계속해서 고립시키고 무력화하는 거대한 구조를 보며 아무리 몸부림쳐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자기 위로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단순한 지적 허영심일 수도 있지만, 전에 장착해보지 않았던 여러 관점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며 시야를 확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마라탕이야 오랜만에 먹어도 원래 먹던 신라면 맵기 정도의 3단계도 잘 먹지만, 페미니즘은 밍밍한 1단계부터 먹으며 간을 보고 있다. 사이드메뉴 격인 꿔바로우나 미니전을 주워 먹고, 마라샹궈를 먹어보는 것과 비슷한가. 지금 천천히 먹고 있는 것들이 쌓여서 나를 어떤 시민으로 만들지는 모르겠다. 바람이라면, 똑바로 눈을 뜨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고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시민 정도는 되고 싶다.
결론이 다소 밍밍하다는 것을 안다. “페미니즘을 한창 멀리하다가 다시 열혈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속 시원했겠지만, 천천히 이것저것 맛보며 돌아가는 접근법도 꽤 괜찮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