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 Oct 25. 2021

꾸준히 하고 있나요?

letter no.5

공부나 일을 할 때 저는 각을 딱 잡고 하는 스타일입니다.

우선 마음의 준비가 되면 앉아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죠. 계획을 다 지키기 위해서 짠다기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하는 절차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카테고리를 나누고,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 배분을 하면서 내 나름의 목차를 만들어 파악하는 과정인 거죠.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 손에 닿게끔 준비되어 있는 정해진 공간에서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시동이 잘 걸리지 않을 때는 산만한 생각을 글로 다 쏟아내놓기도 하죠. 그렇게 일상처럼 반복해왔던 습관이 그새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나 봅니다. 왕복 3시간 출퇴근하는 한 달 동안만 스스로 봐주기로 한 건데 말이죠. 나쁜 습관은 노력하지 않아도 생기는데 좋은 습관은 고행과도 같은지 모르겠어요.


꾸준히 하고 있나요?


저는 직장을 다니면서 업무 관련 공부를 하는 것은 물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힘에 부칠 때가 많습니다. 저녁 9시만 되면 눈이 감기기 시작해요. 정신이 맑은 아침에 하루 계획을 세우는 나는 활기찬 퇴근 후를 기대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죠. 아마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자기가 할 일을 먼저 하는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었을까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에도 욕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습관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칭찬을 받기 위해 외출 후 씻고, 나올 땐 욕실을 정리하고 나오는 거 아니잖아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게 되는 게 습관이거든요. 어쩌면 무리한다는 것 자체가 습관이 생기기 불가능한 요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매일 할 수 있는 것. 그 정도면 가능할 텐데요. 저는 처음부터 퇴근 후에 두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처럼 굴었고, 그 일을 하면서 늘 즐겁길 바랐지만 결과물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서도, 외부의 피드백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하자 재미가 없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꾸준히 하기는커녕 띄엄. 띄엄하다가 그만둬버리는 거예요. 포기는 아닌데 다시 각 잡고 시작하고 시동을 걸 때까지 또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죠. 그때는 시작부터 지겨워져요. 그동안 훈련된 정신과 몸은 근육 빠지듯 이미 쪼그라들어 있고요. 그럼 자괴감이 몰려오죠.


결국 꾸준히 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무리하지 않는 선의 정해진 시간 동안 집중해서, 결과와 상관없이 내가 정말로 순수하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런데 요즘의 고민은 그래서 퇴근 후 과연 무엇을 꾸준히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운동은 별개입니다)


왜 이렇게 꾸준함과 습관에 대해 집착을 하느냐 하면 저는 꾸준함이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감은 어느 날 번뜩 떠오르는 계시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번뜩 떠오르는 순간은 있더라도, 아마 꾸준히 인풋을 하고, 고민하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무의식에 있다가 터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떤 분야든 꾸준히 결과물을 내고 피드백을 받는 훈련의 과정이 있어야만 작업이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게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착실하고 단단하게 쌓아가는 사람만이 남들과 다른 개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치열하게 하고 있나요?


앞으로의 세상이 오랜 경험치나 전문성이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문학보다, 핸드폰 크기에 맞춰 쓰는 웹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텔레비전이 하던 역할을 유튜브가 하고 있죠. 트렌드를 빨리 읽고 반영하는 아마추어의 신선함이 고리타분하고 느린 프로들의 세계를 뚫고 나온 지 오래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앞으로의 트렌드가 어떠할 것이다를 예측해 확신하며 말할 자신은 없어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구시대의 사람도, 새 시대의 사람도, 중간에 낀 세대의 사람도 모두 여전히 치열할 거예요. (아니 이제 열심히 안 하고, 할 만큼 해 드신 분들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좀 내어주시길 바라고요) 잘되는 사람은 이유가 있더라고요. 모두 열심히 해요. 각자 자기만의 콘텐츠를 최선을 다해서 만듭니다.


점점 주관이나 의식이 중요해져 가는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창작자의 ‘개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이야기는 다 비슷하고, 카메라는 갖다 대면 데이터는 썼다 지웠다 무한대로 쓸 수 있으니 결국 한계가 없는 상황에서 본인이 어떻게 경계선을 쳐서 어떤 세상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같은 것을 어떻게 다르게 보고 있는가. 그것이 관건 아닐까요. 그건 어디 가서 배울 수도 없고, 훔쳐올 수도 없어서 그 사람을 대체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겠죠. 저는 당신이 꼭 그렇게 되길 바라요. 그런 것들을 공유하며 함께 일할 동료들이 필요한 거고요.


이슈가 있어서 11월 보름 동안 재택근무에 돌입합니다. 그동안 사무실을 출근했다가, 미팅하느라 못 나갔다가 불규칙적으로 오가다 보니 집중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습니다. 적응 기간이기도 했지만요. 예열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이제 다시 꾸준히 회사 업무도, 나의 일도 꾸준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치열함은 꾸준함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아 그나저나 정말 무엇을 어떻게 해야 꾸준할 수 있을까요? 일기 쓰기보다는 좀 더 나은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우리에게 시간은 무한정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신도 이번 생애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죠?

꾸준히 치열하게, 치열하게 꾸준히 한번 해보자고요.





- 당신을 기다리는 미래의 세상으로부터





매거진의 이전글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