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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Dec 11. 2021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work log no.1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들 기 전에 핸드폰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별을 보거나 별을 좇는다는 것을.


웬 별이냐고?


한참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을 때 팝업이 뜬다. '어플이 어땠는지 평가를 남겨주세요.'

물건을 사고 구매확정을 눌렀더니 '리뷰와 별점을 남겨주세요.'

택시를 타고 미팅 장소에 도착했더니 '기사님을 평가해주세요.'

영화롤 보고 났더니 '별점을 매겨주세요.'


또는

물건을 사고 배달 음식을 살 때 별점 위주로 평을 나열해 검토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별 몇 점짜리 영화인지 확인한다. 내 취향과 비슷한 평론가 높은 별을 줬다면 믿고 본다.

믿고 사고 믿고 보더라도, 별이 낮으면 의문을 품는다.


별은 처음엔 내 의견의 표현이었다가 곧 다른 사람이 판단을 내리기 전의 소스로 쓰이고, 별들이 모이고 모이면 데이터가 되어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게도 된다. 동시에 별을 매기는 것에도 큰 고민이나 부담이 필요 없다. 단순한 평가는 직관적으로 손가락만 까딱하면 끝인 일이다.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이용을 해주었기 때문에 즉 고객이라는 우위의 입장이므로

평가하고 별을 매기는 데에도 복잡한 생각이 필요 없고 의견에 거침없을 수 있다.

거기에서 머물렀다면 쉬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최종적으로는 시청자나 관객이 말 그대로의 '별점'을 남기게 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업무의 상당 부분이 별을 매기는 동시에 별이 매겨지는 일의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 상의 '별점 시스템'은 손가락 까딱하는 정도로 돌아갈 만큼 단순하지 않다.



함께 해볼 의향이 있냐는 제안이나, 어떻게 개발해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의견이 필요한 각종 결과물들 (기획안, 제안서, 시나리오, 대본)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당연하게도 작품을 만드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려 하는 친절하고 단순한 평점 시스템의 '재미있어요', '재미없어요'는 통하지 않는다.


왜 이런 의견을 가졌는지에 대해 세분화한 카테고리에 따른 논리적인 이유와 뒷받침할 근거와 예를 총동원하게 된다. 이를테면 영화와 드라마, 스릴러와 로맨틱 코미디, 특정 플롯과 같이 장르와 매체에 대한 지식과 이해, 본인의 경험, 비교설명할 수 있는 유사한 작품들의 데이터가 있어야 가능하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보고 읽은 것에 대해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업계 실무자들의 분석은 평론가의 분석과도 차별점이 있다.

'작품'인 동시에 '상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객과 시청자의 시간을 치열하게 훔쳐내야 한다.



흠을 잡아내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완벽한 미술 작품을 눈앞에 두더라도 흠을 잡으려면 온갖 핑계를 대어 흠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이라면, 또 이렇게 제안으로 도달한 작품이라면 사람들에게 설득하거나 증명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쉽게 단 한마디의 '재미없다' 또는 수백 가지 표현의 '재미없다'는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다. 모두가 해야 할 일도 많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바쁜 사람들이므로 평가는 더더욱 생략되고 가차 없다.


그날도 나는 제안받은 작품을 검토했으나 거절하는 이유에 대해서 메일을 쓰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제안을 거절하거나 문제점을 쓸 때 의견을 뒷받침하는 이유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저희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는 관심이 없어요.'라고 의사표현만 해도 상관없는데 말이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준비하는 프로젝트도 누군가에게 제안해야 하고 검토를 요청해야만 한다. 그때 나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재미없다'는 한 마디만을 듣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공손하지만 논리적이고 신랄하게, 잘된 작품의 레퍼런스의 간단한 분석까지 곁들여 메일을 전송했다. 자 이제 검토 업무 끝! 보통은 그러고 넘어갔을 텐데 이번엔 전과 다르게 생각이 길게 이어졌고 조금 침울해졌다.


'신명 나게 키보드를 두드려가며 구구절절 별로라고 써 보내는 너. 그럼 너는 뭐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잘할 수 있어? 뭐 네 작품은 완전무결 해?'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남에 것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기 쉽지만, 정작 자기 일이 되면 깜깜 해지는 일이 많다. 그렇게 거꾸로 돌아보니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차갑고 무심한 거절과 뼈를 치는 신랄한 평가와 절대로 받고 싶지 않은 고배를 들이켜야 할까. 손가락 까딱으로 정리가 끝나버리는 무시무시한 대중들 앞에서 얼마큼 버텨낼 수 있을까.



일해온 만큼 경험을 쌓고, 프로듀서라는 직함을 받고, 프로젝트 진행과 성공이라는 직책을 갖게 되었다. 많은 권한을 부여받을수록  직접적인 평가를 받게 되고  빈도도 증가하게 된다.  무게를 아직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경험이 쌓이지 않았기에 부쩍 이런 류의 생각을 하면서 침울해지는 것이다. 장수는 되었지만  자주 전쟁터에 불려 나가게 되고,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 동시에  목숨 말고 병사들의 목숨을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 신참내기 장수가  출정을 앞둔 밤에  한숨 자지 못하는 것처럼.


위축이 되었다. 그런데 때론 그렇게 스스로를 한없이 작게 생각해 위축이 되면 오히려 전체의 그림을   있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 내가 프로듀서로써 넘어야  산이 무엇인지 보았다. '어떻게' 대해서는 아직 길을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부딪혀서 깨지는 것 밖엔 길이 없는 것 같지만)


이상향과 최대한 닮아있는 결과물을 내기 위한 요소를 갖추어 나가야만 한다. 배경, 사람, 자본, 경험과 같은 요소들을. 무엇이 최고인지는 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아는 만큼 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부분에 있어서 아직 나는 '젊은' 프로듀서이고 앞으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물론 결과물을 위한 모든 공력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나의 30대 후반부터의 과제인 것이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 그것은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만이 이루어낸 궁극의 경지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이 평생에 걸쳐서 도달한 경지를 벌써부터 욕심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에게 무어라고 말할 수 정도로 제 머리를 잘 깎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하루빨리 갖추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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