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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Feb 07. 2022

오랜만의 단잠

work log no.3

설날 직전까지 일이 엄청 바빴다. 그래서 어서 명절 연휴가 오길 고대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므로.


나는 '챌린지' 중이었다. 난 전부터 대기업에서 쓰는 단어 '챌린지'가 싫었다.

말이 좋아 '챌린지'지 사실은 버거운 일을 떠안길 때 하는 말이거나, '경고'의 다른 말로 쓰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묘하게 신이 인간을 내려다보는 듯한 무게의 말을 감히 인간이 인간들끼리 쓰고 있다니? 란

다소 엉뚱한 반발 심리를 가진 적도 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스트러글'일뿐이니까.


그런 나의 심리 상태를 가장 잘 파악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같이 사는 언니, 친한 친구, 그리고 각별히 친한 동료.

그날도 나는 오전부터 회사에 연락을 받고 동료에게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

불만을 터뜨리며 계약서의 특정 조항에 대해 상의를 마쳤지만 일은 생각보다 더 쉽게 해결이 되었다.

그러고 나니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했는지 스스로 바보 같아졌다. 특히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차분한 성격에 별일이 아닌 것처럼 일을 처리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를 더 싫어지게 만들었다.


아 정말 갖다 버리고 싶다. 이 지랄 맞은 성격.

드디어 명절을 한 주 앞두고 얼추 바쁜 스케줄은 정리가 될 무렵이었다.

그날은 동료와 점심 약속을 잡은 날이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일과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문제의 내 메일이 모두 공유된 사건을 바로 그날 듣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건으로 주말에 화가 난 일은 뒤로하고...


동료는 내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냥 하는 말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모두 자기 일인 양 끌어안는다 했다. 그렇게 하다가는 내가 버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는 아마도 1월에 내가 겪었던 일련의 일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하나의 생각으로 엮이자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정곡이었던 것이다. 할 말이 없고 머쓱했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하나라도 틀리고 싶지 않았다. 제때 완벽히 마무리하고 싶었다.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다. 잘하고 싶었다. 아직 손발이 안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하니 자잘한 문제들이 생겼다.

그래. 그냥 이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는 내가 다 빨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금요일 오후를 보내고 맞이한 주말, 나는 이 지긋지긋한 성격과 작별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빠르게 필요한 책을 써치 해 사서 읽고, 브런치 글도 썼고, 길고 긴 일기도 썼다.

지긋지긋한 성격과 작별하기 위해 하는 짓도 지긋지긋한 성격 고대 로긴 했지만.


명절 직전 주는 기획안 결과물들이 나오는 날이라 더욱 바빴다.

생리까지 겹쳐 나는 스트레스를 모두 빨아들이고, 내 기력은 모두 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결과물들은 모두 다음 스텝으로 잘 넘어갔고 바라고 바랐던 명절 연휴가 찾아왔다.


내 안에서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굶는 다이어트 대신 매 끼니를 챙겨 먹기로 했다.

꼭 함께 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했던 크리에이터를 내 마음에서 놓아주기로 했다. 다 때가 있는 법이라 생각했다. 용의 꼬리가 아닌 뱀의 머리가 되고 싶은 사람 아니냐? 는 말을 들었고 그 말에 수긍했다. 내가 원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내가 하는 일이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실패가 지금 나의 일임을 깨달았다.


다른 변화도 있었다. 그렇게 내 곁에 있던 동료가 갑자기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직을 도와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당황스럽고 서운하긴 했지만 사정을 알기에.

그리고 어쩐지.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용기를 주었다.


고대했던 명절 연휴를 보낸 후였지만 제대로 쉬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몸이 피로한 것뿐만 아니라 두통이 가시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느 순간부터 쉬는 날 낮잠을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잠은 게으름의 상징이며 가장 사치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 아니었던가?

그걸 의식한 것은 아닌데 근래 집에 와서도, 휴일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했던 기억이 났다.


이번 주말에는 마음먹고 낮잠을 잤다. 씻고 적당한 조도의 방에서 적당한 온도의 침대에 눕는 순간 기분 좋게 잠결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모든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는 '휴식'이 곧 낮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면서 기억을 조금씩 망각하기도 한다니까.


오랜만에 달디 단 낮잠을 잤다. 그대로 이어서 월요일까지 잘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제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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